유가철학 중간고사 대체 과제_2016101252 철학과 박수호.hwp
논어 학이편 제7장을 보고 떠오른 생각들
공자는 그 존재만으로도 중화문화에 있어서 아버지라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문화의 '근본'인 인물이다. 중국의 개혁당시 손문과 진독수를 비롯한 여러 개혁가들이 중국에 뿌리깊이 각인된 이른 바 '공자 문화'를 넘어서야 할 가장 큰 벽이자 변화시켜 개혁의 자양분으로 삼을 것으로 여겼던 것을 보면 그들이 이뤄내고 싶었던 것은 진정한 근본을 가린 채 전통이라는 이름들로 서로를 가두고 있는 사회를 깨끗하게 털어버리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시간을 관통하는 의미가 어떻게 보면 우리들을 그대로 비판하고 있는 모양새가 되지 않을까 라는 질문이 문득 생겨났다. 공자가 부족한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꾸짖듯, 우리들 또한 우리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스스로를 꾸짖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나서거나 자신감을 가지고 누구든 비판하는 일이 거의 없다. 어느샌가 비판은 비난이 되어버렸고, 비판하는 사람은 무리에서 동떨어진 사람, 즉 부적응자가 되어 버렸다. 우리들은 서로를 어느정도의 편견의 자로 재어 보며, 욕구를 채우려는 대상으로 밖에 보지 않는 것 같다. 누군가는 남을 스스로의 화풀이 대상으로 대하고, 누군가는 남을 승리의 발판으로 대하고만 있는 이 상황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사랑이 부족한' 시대라고 말할 수 있겠다.
<子夏曰賢賢하되, 易色하며, 事父母하되 能竭其力하며 事君하되 能致其身하며 與朋友交하되
言而有信이면 雖曰未學이라도 吾必謂之學矣라 하리라>
-자하가 말했다. "어진 이를 어질게 여겨서 좋아할 때는 색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꾸며, 부모를 섬길 때는 있는 힘을 다할 수 있으며, 임금을 섬길 때는 자기 몸을 바칠 수 있으며, 친구와 사귈 때는 말할 때마다 믿음이 있으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운 사람이라고도 말하겠다.
비록 자하의 말에는 부모를 섬김과 임금을 사랑함에 있어서 맹목적이라는 비판이 따르겠지만 어진 이를 볼때 기꺼이 색을 좋아하는 마음과 그를 좋아하는 마음을 바꾸겠다는 생각 하나 만큼은 이 시대에 필요한 일침이 될 것이라 본다.
여기서 참으로 어질다고 하는 사람은 단순히 많이 알고, 말을 잘하며 행동거지가 굼뜬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비일비재한 늑장대응, 뒤늦은 사죄같은 "정말 왜 저렇게 쓸데없이 비난받을 짓만 할까?" 라고 말할 만한 사건들 속 사람들은 결코 어진 이가 아니다. 그 속에서 그들은 '적절한 대응'같은 것은 생각치도 않았다는 것을 그들의 발언과 행동거지에서 추측할 수 있다. 여기서 이기동의 논어강설의 내용을 빌려 말해보자면 진정한 어진 자는 현명한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을 그 어떠한 욕심 없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까?'라는 자기안위의 욕심에 눈이 먼 어리석은 사람들일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대부분 이런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바로 우리 자신일 수도 있는 평범한 사람들인 것이다. 어서 정신을 차리고 곰곰히 생각해 보면 거기에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했는가를 나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이것이 현대 사회에 던져야할 인간적인 물음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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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호밀밭파수꾼™ 작성시간 19.05.31 비판과 비난은 그 대상이 사람을 향하느냐를 기준으로 합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비판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은 개인의 권리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면도 없지 않습니다. 적절한 대응에 굼뜬 것도 누구로부터도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고 싶지 않다는 욕구가 우선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낯빛을 바꾸고, 힘을 다하고, 몸을 바치고, 미덥게 한다면 학문적 지식이 부족하다 해도 사람답게 산다는 것에서는 충분한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공자의 생각이 들어 있는 문장이지요. "색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꾸며"로 볼 수도 있지만, "낯빛을 바꾸어서", 곧 정색해서라고 번역하는 것도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