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는 모두에게 똑같은 것이 아니다. 각자가 인식하는 것에 따라 다르게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의 내면에서 인식한 세계를 파악하기 때문에 각자의 내면에 따라 세계는 다르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익숙한 낯설음이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세계가 우리의 인식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때 마주하게 된다. 세계만 놓고 본다면 이 세계는 하나이며, 우리에게 보여지는 세계는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인식의 차이에 따라 세계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지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익숙한 낯설음은 외부의 자극으로 인해 자신의 인식과는 다른 것을 마주하는 순간에 찾아온다.
나는 익숙한 낯설음을 경험해본 적의 거의 없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종종 익숙한 낯설음을 경험했다. 우선 장례식장에서 익숙한 낯설음을 느꼈다. 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기에 할머니의 부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며 할머니를 걱정하기보다는 할머니 없이 살아갈 나를 걱정할 정도로 할머니는 내 삶에 있어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달라진 것이 없는 세상이 낯설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내 시선으로만 봐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두 번째로 익숙한 낯설음을 느낀 것은 장례식이 끝나고 할머니의 집에 모였을 때이다. 할머니가 아프신 뒤로 우리 가족은 일주일에 2번은 무조건 할머니 집에 모였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장지까지 다녀오고 나서도 우리 가족은 늘 그랬듯 할머니 집으로 모여서 대화를 나눴다. 할머니의 부재에 대해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고 실감이 나지 않다가 문득 할머니가 늘 앉아 계시던 자리가 비어 있음을 느꼈을 때 두 번째 익숙한 낯설음이 찾아왔다. 마지막으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두 달 뒤쯤, 가족들 모두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슬렀을 때 세 번째 익숙한 낯설음이 찾아왔다. 여전히 슬펐지만, 할머니의 부재가 익숙해진 듯이 생활하다가 문득 그 익숙함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이게 익숙해질 일인가?하는 생각도 들었고 익숙하게 생활했던 내 모습이 염증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총 세 번의 익숙한 낯설음을 느끼는 순간은 새로우면서도 당황스러웠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실제와는 다르다는 것, 이 세계는 각자에게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 무서우면서도 흥미로운 느낌이었다. 익숙한 낯설음을 마주하는 것은 세계를 다르게 인식할 기회를 제공해준다고 생각된다. 매일 익숙한 낯설음을 발견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삶을 무겁게 하겠지만 가끔 익숙한 낯설음에 대해 깨닫게 된다면 새로운 방향 제시처럼 느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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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호밀밭파수꾼™ 작성시간 22.06.05 물리적 세계, 우리가 목격하는 사실로서의 세계는 모두에게 똑같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근대 이후 추구되었던 자연과학적 사실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서술한대로 그러한 세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계는 일체유심조라는 불교 용어에서도 확인되듯이 사람들마다 다른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춥다고 느끼는가 하면 누군가는 덥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십인십색 백인백색... 사람들의 숫자만큼 멀티버스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므로 나에게 익숙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러리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면 우선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아야 합니다. 이 과제가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할머니의 부재가 문득 낯설게 느껴지게 되면서 할머니의 존재와 가치를 새롭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