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쓰기 메모 입력 폼 내용 입력된 글자수 0/600 + 비밀 등록 상세 리스트 공지 철학이란 모든 것을 몇 푼의 돈을 통해 손쉽게 얻으려는 속물들이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도 진지한 학문이다. 철학적 사색의 길이 비록 고통스런 정신의 노동과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다른 곳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아름다움과 기쁨이 있다. (소피의 세계 - 감수자 김상봉 교수의 말) 작성자 하늘바다 작성시간 10.05.10 답글 0 공지 인간은 우리가 <우주>라고 부르는 전체의 일부이며,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 갇혀 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와 생각과 감각이 우주의 나머지 부분과 분리된 것이라고 느끼는데, 사실 이것은 우리 의식이 일으킨 일종의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 이러한 환상은 우리에게는 하나의 감옥이며, 이 때문에 우리는 개인적 욕망만을 추구하며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만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물론 이 감옥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 공감의 범위를 확장함으로써 모든 생명체와 찬연한 자연 전체를 끌어안아야 한다. 아인슈타인 (신 -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 작성자 하늘바다 작성시간 10.04.23 답글 1 - 다름과 틀림 -다름은 자연의 다양성이고 틀림은 도덕적 특수성이다.다름은 객관적 요소이고 틀림은 주관적 요소이다.다름은 긍정적 요소이며 틀림은 부정적 요소이다.다름과 틀림은 이처럼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차원의 내용이지만우리는 흔히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한다.나와 다른 것은 틀린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우리가 이 둘만 구분할 줄 알아도 현명하며 이해심이 넓고 대범하며 멋진 사람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작성자 하늘바다 작성시간 11.03.15 답글 0 성경에서 예수는 부자들에게 유난히 혹독하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밧줄(혹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빠져나가는 것보다 힘들다느니.. 부자들에게는 걸핏하면 가진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명령한다. 몇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예수는 자본의 유한성을 깨닫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즉, 어떤 사람이 너무 많이 가지고있다는 뜻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 적게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된다. 하느님은 모든 자연물에게 같은 햇빛을 주시고 비를 내려주신다. 들판의 꽃이 길쌈을 하지 않아도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었듯이 사람들도 하느님의 뜻을 안다면 모두가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작성자 하늘바다 작성시간 11.03.12 답글 0 어떤 상황을 유한하다고 믿는 것과 무한한다고 생각하는 것의 차이는 극명하다. 우리는 유한한 것을 무한한 것으로 착각하여 왔다. 우주, 시간, 생명 등과 같은 상상적 요소들뿐 아니라 자원, 자본의 경우도 그렇다. 한 사회가 만들에 낼 수 있는 부가가치 즉 자본의 양은 유한하다. 우리는 이것을 무한한 것으로 착각한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분배에서 문제가 생긴다. 무한의 입장에서는 부자가 가난한 이들에게 열심히 노력해서 너희의 자본을 늘리라는 말이 성립한다. 무한하므로... 그러나 유한의 입장에서 보면 부자는 가난한 자의 몫을 지나치게 많이 가지고 있는 자를 의미한다. 작성자 하늘바다 작성시간 11.03.12 답글 0 '사실'을 의심하라. 우리는 우리의 감각을 이용해 지각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의 감각은 얼마나 협소한가? 우리가 볼수 있는 시각,들을 수 있는 청각, 맡을 수 있는 후각, 만질수 있는 촉각, 맛볼 수 있는 미각의 범위를 생각해보라. 우리는 어설픈 마법사의 속임수에도 너무나 쉽게 속아넘어가지 않는가?철학이나 과학의 시작은 의심이다. 우리가 당연히 그렇다고 즉 자명하다고 인정된 모든 사실을 의심하는 것에서 이 학문은 시작된다. 뉴턴의 사과와 프로이드의 무의식을 생각하라. 그들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함으로서 인류 역사에 위대한 진보를 이루었다. 작성자 하늘바다 작성시간 11.03.11 답글 0 과학적이란 말에 속아서는 안된다. 과학적 증명 논리는 인간의 논리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식과 논리가 바뀌는 순간 과학적 사실도 바뀐다. 3천년전 사람들에게 하늘은 물로 가득차 있었다. 창세기에 하늘을 윗물 바다를 아랫물이라 하였다.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있고 가끔 하늘에서 물이 쏟아지니 하늘은 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 얼마나 과학적 논증인가? 불과 반세기전 우주는 무한하였고 유일하였다.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렇다. 그러나 우주가 유한하고 수없이 많이 있다는 것은 우주 물리학자들에겐 정설이다. 과학은 인간의 지식에 따라 진화한다. 작성자 하늘바다 작성시간 11.03.10 답글 0 사실은 주관적 믿음이다. 즉 어떤 사건에 대해서 확실한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확고한 사실인 것이다. 예를들어 처녀가 임신을 한다든가, 죽은 사람이 부활한다든가 하는 것은 그것을 신뢰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터무니없는 사기에 지나지 않지만, 종교적 신앙이 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신의 위대한 섭리인 것이다. 그러면 이 사건의 객관적 사실 즉 Real Fact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알 수가 없다. 그것은 우리가 거대한 우주 메커니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실로 미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생명이 어떻게 형성되어서 어떻게 소멸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을 하여야 한다. 그 선택이 나에겐사실이다 작성자 하늘바다 작성시간 11.03.09 답글 0 우리가 어떤 것을 "사실"이라는 말을 썼을 때, 그 의미는 무엇일까? 사실이라는 말의 뉴앙스에서 이 사실이라는 것이 마치 객관적으로 들리지만, 이 말은 지극히 주관적 의미이다. 어떤 것을 '사실'이라고 표현한 것은 내가 그것을 '사실'로 믿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것은 Real Fact 일수도 혹은 아닐 수도 있다. 이것은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것이다. Real은 상상이고, 실제는 현실에 존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상은 Fact이고 실제는 Fact가 아닐 수도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우리가 우주에 비해서 즉 거시세계에 비해선 터무니 없이 작고, 원자에 비해서 즉 미시세계에 비해선 터무니 없이 크기 때문이다. 작성자 하늘바다 작성시간 11.03.08 답글 0 사실의 오해 - 우리가 어떤 사건을 사실이라는 표현을 썼을 때 그것은 대체로 다음 3가지 방향에서 사실로 인식한다. 그 첫째는 종교적 사실이다. 인간의 문명은 신화와 종교로 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서 말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의심없이 사실로 받아들인다. 둘째는 과학적 사실이다. 사람들은 여기에 가장 많이 속는다. 인간의 논리로 증명이 되었다는 그 이유로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눈으로 보았다고 그 현상이 사실은 아니다. 마지막 하나는 철학적 사실이다. 나의 주관적 이성적 판단이 어떤 사건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이 셋다 real fact라고 하기엔 부적절하다. 작성자 하늘바다 작성시간 11.03.03 답글 0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의 과학은 고적역학이다. 아직 양자역학의 문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의 소위 '과학적'이란 의미는 우주는 오직 고전역학의 개념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고 이것은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는 이미 결정되었다. 그것을 우리가 바꿀 수는 없다. 그의 唯物論과 역사 발전론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이미 모든 것은 정해져 있다. 신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세계는 오직 고전역학의 규칙에 의해 움직이는 물질만이 존재할 뿐이다. 작성자 하늘바다 작성시간 11.03.03 답글 0 삶을 구성하는 가치는 참 여러가지가 있다. 현대는 이 여러가지 가치 중에 '자본'의 가치가 너무 비대하게 커진 이유로 다른 가치들이 의미가 없어지거나 실제 가지고 있는 가치보다 현격하게 의미가 축소되었다. 마침내 현대의 사람들은 생존과 생활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사는 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다. 돈은 수단이고 생존과 생활은 삶의 목적이다. 어울누리 철학의 목표중에 하나는 수단과 목적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수단이 목적을 위해 봉사하게 하라. 작성자 하늘바다 작성시간 11.03.02 답글 0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차이. 하나는 거시 세계를 나타내고 다른 하나는 미시 세계를 표현한다. 고전 역학에서 바라보는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고, 양자역학에서 바라보는 미래는 확률적이다. 이에 대한 표현을 어느 프로그램에서 이런 식으로 표현하였다. 고전역학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반드시 커피가 나온다. 만약에 양자역학 카페에서 커피를 시키면 커피가 나올 확률 60%, 주스가 나올 확률 30%, 콜라가 나올 확률 8%,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확률 2%이다. 미래는 결정되어 있는가 결정되어 있지 않은가?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하느님과 내 운명과의 담판을 위해서도.... 작성자 하늘바다 작성시간 11.03.02 답글 0 마르크스의 또 하나의 실수는 당시의 과학 수준에 있다. 만약 마르크스 시절에 양자역학의 세계가 세상에 알려졌다면 마르크스는 유물론을 포기하였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고전역학 수준으로는 우주는 태초의 원인으로 인해 그 미래가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고전역학의 철학적 의미는 인과율이다. 한 원인에 의해 결론이 결정된다. 그 결론이 다시 원인이 되어 다른 결론이 또 결정된다. 역사는 운명은 그렇게 이미 결정되었다. 고전역학이 마르크스 당시 최신의 과학이었다. 뉴턴에 의해 발견된 이 위대한 업적은 한 철학자에 의해 그렇게 변형되었던 것이다. 작성자 하늘바다 작성시간 11.03.01 답글 0 마르크스는 왜 유물론과 그에 따른 역사발전론이라는 실수를 하였을까? 그 이유는 두가지로 찾아볼 수 있다. 그 하나는 그 당시 자본의 착취를 마르크스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혁명에 의하여 신분사회는 무너졌지만 자본 계급이 나타나 또 다른 형태로 인민들을 착취하고 있는 현실. 최소한의 인류애를 가진 사상가, 학자라면 당연히 그 당시의 부조리한 사회를 무너뜨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여 그는 시민의 위대한 혁명이 신분제를 무너뜨렸듯이 노동계급의 혁명이 자본가 세력을 물리치고 플로레타리아 독재의 위대한 노동자 평민의 시대를 꿈꾸었을 것이다. 작성자 하늘바다 작성시간 11.02.28 답글 0 전제한다는 것은 그것이 이미 사실로 인식되었을 때 쓰는 말이다. 만약에 전제가 잘못 되었다면 그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이론은 잘못 전개될 가능성이 너무나 커진다. 그 예중에 하나가 유물론에 대한 마르크스의 인식이다. 마르크스는 철학을 과학적으로 해석한 위대한 철학자임에 틀림이 없으나, 그의 유물론적 사고관은 공산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현대사를 양분하고 공산주의를 신봉했던 대다수의 인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준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이념의 갈등에 우리나라도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으며 아직도 이념 대결은 끝나지 않은 채 민족의 아픔으로 남아있다. 작성자 하늘바다 작성시간 11.02.28 답글 0 유한과 무한우리가 많은 부분에 있어 착각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유한과 무한의 차이이다.예전엔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부분을 대부분 무한의 가정을 하였다.우주, 시간, 영혼 등과 같은 상상의 문제라든가 자원, 영토, 재화 등의 실질적 문제까지도...이제 우리 인류는 전에는 당연히 무한한다고 생각하는, 심지어 무한의 상징인 것들 조차도 더이상 무한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21세기 인류가 안고 있는 부조리에 대한 솔루션은 여기부터 시작된다.무한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유한하다. 작성자 하늘바다 작성시간 11.02.26 답글 0 "국민의 고통에 눈 감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권력의 말로는 비참할 수 밖에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역사 속 진리로 새겨지게 됐습니다" (MBC PD 수첩 멘트 중에서) 작성자 하늘바다 작성시간 11.02.23 답글 0 우주에 적용되는 법칙은 사실 신기할 정도로 간단하다. 중력, 전자기력, 강한핵력, 약한핵력. 이 4개의 힘이 우주를 지배한다. 각각에 몇가지 간단한 법칙들이 있다. 물리학자들의 요즘 목표중에 하나가 이 4가지 힘을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찾는 일이다. 인간이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짠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거기에 맞는 규칙이 있을 것이다. 만약에 프로그램이 일정한 규칙이 없다면 그것은 프로그램이 아니다. 일정한 규칙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 규칙을 만들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을 보건데 우리 우주는 누군가 우리 우주를 프로그래밍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작성자 하늘바다 작성시간 11.02.20 답글 0 뉴턴 이후에 우주의 규칙이 과학자들에 의하여 서서히 그 베일을 벗고 있다. 아직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밝혀질 것이다. 우주는 규칙이 있다. 그것도 아주 간단한 수학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은 컴퓨터를 창조하였다. 컴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인다. 프로그램이란 일종의 규칙이다. 다음은 목적성이다. 사람이 어쩐 물건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대체적으로 그 물건을 만든 목적이 있다. 만약에 어느 누군가가 우주를 만들었다면 '왜 만들었을까?'하는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그냥 볼거리일까? 어느 어린 신의 장난감일까? 어떤 과학자 신의 실험실의 결과물일까? 작성자 하늘바다 작성시간 11.02.18 답글 0 우주는 누군가에 의해 창조된 것일까? 아니면 그냥 우연의 산물일까?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서 100% 정답을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모든 종교는 신에 의한 창조를 이야기한다. 얼마 전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중력이 만든 우연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본다. 어떤 물건을 발견하였다. 이것이 자연의 산물인지 인조물인지 판별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규칙성'과 '목적성'이다. 어떤 규칙이 존재한다면 이 물건은 인조물일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 그리고 그 물건이 어떤 목적에 의해서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은 인조물이라는 결정적 증거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주는 규칙적이다. 작성자 하늘바다 작성시간 11.02.18 답글 0 우리가 창조한 컴퓨터는 이진법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컴퓨터의 시공간은 당연히 인간의 시공간과 다르다. 컴퓨터의 우주와 인간이 바라보는 우주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신의 손가락이 몇개였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십진법에서는 13은 소수이지만 만약 8진법이라면 3x5=13이된다. 9는 10진법에서는 3x3=9로 소수가 아니지만 8진법에서는 소수이다. 만약에 신의 손가락이 파이(π)개라면 신의 세계에서는 10진법에서의 무리수가 신의 세게에서는 유리수이고, 우리의 자연수, 정수, 유리수가 풀리지 않는 무리수일수도 있다. 작성자 하늘바다 작성시간 11.02.15 답글 0 이전 목록이 없습니다. 1 2 3 현재페이지 4 5 다음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