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유
1. 그 기둥이 사람임(계3:12)
2. 인격체이신 어린양 예수님의 신부임(계 21:2, 9-10)
주 예수님의 신부는 늘 유기체였습니다(고후 11:2, 계19: 7-8).
새 예루살렘을 보는 관점은,
그 사람의 성경관 내지는 계시관의 본질을 알게 합니다.
새 예루살렘은 계시록의 결론이자 성경 전체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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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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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김바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1.02.12 제대로 보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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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은환 작성시간 21.02.12 요한복음 14장 2절을 보면
아버지의 집에서 거처를
마련한다고 합니다.
이게 성도입니까?
셋째하늘이 성도입니까?
낙원이 성도입니까?
바울은 그곳에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계시를 받았는데
말입니다 ~ 고린도후서 12장
말도 안되지요?
이름만 다를뿐 다 한 장소입니다.
결코 성도가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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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김바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1.02.12 요 14:2의 내 아버지의 집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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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김바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1.02.12 김바울 엡 2: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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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나님만 작성시간 21.02.12 '십자가 고통'과 '사십일 금식'은 말로 하는 고품격 인문계 철학이 아니라 몸으로 조지는 개막장 이공계 산수입니다. 그 신은 제대로 개막장을 달리는 전투적인 FM군신입니다. 그게 '전쟁에 능하신 만군의 주'입니다.
그 책을 싸가지 없게 댁들 멋대로 판단하면 그 신께서 댁들 주변에 올라운드 흉기로 도배를 해버리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게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입니다.
일단 그 고통은 스킨 메커니즘을 싹 다 걸레로 만들어야 되니까 바이오닉으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굶음은 왕년에 목소리 좋은신 분 한 방에 제대로 골로 가셨지요. 그건 영문학적으로 '킬'이 아니라 '터미네이트'입니다.
매일매일 회개를 똑바로 처하는 삶은 개막장 하드고어 밀리터리 받아쓰기 산수놀이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고통과 그 굶음이 몬 족까는 의미인지 '유레카'하면 그 신의 실체가,
개막장 하드고어 폭력산수 ㄱㄹㅅㄷ인 걸 처알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