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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과 역사왜곡

[스크랩] 고려도경(高麗圖經)속의 고려 (일본이 고려와 국경이 맞닿아 있었나?)

작성자이호근|작성시간11.04.25|조회수818 목록 댓글 0

 한국고전 번역원의  고려도경(高麗圖經)>>선화봉사고려도경 제3권 >>성읍(城邑) >>봉경(封境) 에 나오는 고려의 위치 설명입니다

 

 

고려는, 남쪽은 료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료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흑수(黑水)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가 이것이다.

 

  => 고려의 위치가 어디이길래   남쪽은 료해(遼海)로 막히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다는 것인가?  한반도의 남해를 고려때는 료해(遼海)로 불렀단 말인가?  료해(遼海)는 어디일까?

최두환 선생님 글중에 료해(遼海) 에 관한 설명이 있다.

 

類纂云, 天下三大水, 一曰黃河, 一曰長江, 一曰鴨綠, 又曰黃河與鴨綠, 夾北幹龍, 流於遼海, 以此觀之, 所謂鴨綠. 似是發源於中國之西北, 以東流, 入於遼海, 黃河同也.[림하필기 권13 압록강] 

 

<류찬>에 말하기를, "천하에  큰 강이 셋 있는데, 황하, 장강, 압록강이다." 하였다. 또 말하기를, "황하와 압록강은 북쪽으로 계속 이어진 산을 끼고 료해로 흘러간다. 이것을 보면, 이른바 압록강은  중국의 서북쪽에서 발원하여 중국 동쪽을 흘러서 료해로 들어가니, 황하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서북쪽에서 발원한 강물이 중국 동쪽을 흘러 들어가는 곳이 료해(遼海)라고했다.  한반도 기준으로 보면 서쪽이지 남쪽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고려의 동쪽에 맞닿아 있는 것은 동해(東海)인데 어째서  금(金)나라가 나타난단 말인가? 계속해서 뒷 문장을 보면 고려라는 나라가

 

  "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같이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

    양으로 되어있다"

 

고한다.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뜻은 무엇인가?

 

 

 * 견아상제(犬牙相制) *

 

의 어금니가 서로서로 맞지 않는 것같이, 국경선(國境線)이 볼록 나오고 오목 들어가 서로 견제(牽制)하려는 형세(形勢)라는 뜻으로 여러나라가 육지에서 국경선이 맞닿아 있어야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

한반도 조선설에 의하면 일본은 일본열도에 홀로 존재하는 바다를 건너야 닿을 있는 땅인데, 고려가 어째서 일본과 국경이 맞닿아 있으며 유구ㆍ담라(聃羅). 흑수(黑水)ㆍ모인(毛人) 이란 나라들과도 역시 국경을 맞닿고 견아상제의 지형를 이루고 있단 말인가? 

윗 문장만 봐도 고려의 위치가 한반도가 아님은 자명한 것이다

 

  <계속해서 본문의 내용>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
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ㆍ양절(兩浙)ㆍ광남(廣南)ㆍ복건(福建)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ㆍ내주(萊州)ㆍ빈주(濱州)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
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요동(遼東)에서 5백 리쯤 흘러가다 국내성(國內城)을 지나서 또 서쪽으로 흘러 한 강물과 합류하니, 이것이 염난수(鹽難水)이다. 두 강물이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안평성(安平城)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고려에서는 이 강물이 가장 크다. 물결이 맑고 투명하여 지나는 나루터마다 모두 큰 배가 정박해 있는데, 그 나라에서 이를 천참(天塹)으로 여긴다. 강물의 너비가 3백 보(步)인데, 평양성(平壤城)에서 서북으로 4백 50리이고, 요수(遼水)에서 동남으로 4백 80리에 있다. 요수에서 동쪽은 옛날 거란에 소속되었는데, 지금은 그 오랑캐 무리가 이미 멸망되었고, 대금(大金)에서는 그 땅이 불모지(不毛地)이기 때문에 다시 성을 쌓아 지키지 않는다. 그리하여 한갓 왕래하는 길이 되었을 뿐이다.
압록강 서쪽에 또한 백랑(白浪)ㆍ황암(黃嵓) 두 강이 있는데, 파리성(頗利城)에서 2리쯤 가다가 합류하여 남쪽으로 흐른다. 이것이 요수(遼水)이다.
당(唐) 나라 정관(貞觀) 연간(627~649)에 이적(李勣)이 남소(南蘇)에서 고려(고구려를 말함)를 크게 깨뜨리고, 강을 건너가서 그 강물이 매우 얕고 좁은 것을 괴이하게 여겨 물으니, ‘이것이 요수(遼水)의 근원’이라고 했다. 이로써 전고(前古)에는 일찍이 이 강을 믿어 요새로 여기지 않았음을 알 수 있고, 이래서 고려가 물러들어가 압록강의 동쪽을 지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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