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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VIEW]]British Sherman ⅤC FIREFLY #35-009 [1/35 Tasca MADE IN JAPAN] Pt1

작성자mirageknight [왕성국]|작성시간12.06.08|조회수543 목록 댓글 1

안녕하세요~미라지나이트 입니다.

 

디코퍼래이션에서 수입 재포장하는 M4A3E8 이지에잇 제품의 공동구매가 시작되었습니다.

 

 

 

 

 

---(제품사양)-------------------------------------------------------------------------------------

 

제품코드 : DCM35005P

제 품 명  : M4A3E8 Sherman "Easy Egiht"  

스 케 일  : 1/35

제품구성 : 플라스틱 사출부품 / 에칭부품 / 데칼 / 조립메뉴얼

포장형태외부-종이박스(코팅처리/ 384mm x 245mm x 58mm) 

                    내부-각 파트별 폴리백 포장

기타특징 : 인젝션 셔먼 시리즈중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타스카 제품을 기본으로

                    독자구성한 에칭과 데칼이 부속된 스페셜 팩키지 아이템.

                    

  제품가격 : 49,000 (최종소비자 가격)

 

제품출시 6월13일

 

 

 

이 제품은 일본의 모형회사인 타스카 (TASCA) 사에서 제작한 제품으로 타스카는 일본의 골수모델러들이 모여 만든 모형회사 입니다.

 

 

 

 

별매 옵션제품이 필요없는 끝내주는 제품을 만들자!! 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이들은 그야말로 환상의 품질을 자랑하는 멋진 제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만 일본내 생산을 고집하다 보니 유일한 단점으로는 가격이 엄청나다는 점과 아이템수가 셔먼종류로 한정되어 있다는점.. 다만 최근에는 독일군 아이템으로 눈을 돌려 다른 제품들도 일부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제품은 타스카에서 나온 셔먼제품중  #35-009 번  British Sherman ⅤC FIREFLY 란 제품으로 몇해전에 까페회원이신 로로 님이 빌려주신 제품을 리뷰한 제품 입니다.

 

 

 

 

M4 서먼전차의 변종!! 강력한 펀치를 가졌던 파이어플라이 (firefly)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차. 미국이 개발한 M4 셔먼을 개조하여 당시 영국 육군의 최강 대전차포17파운더포를 장착한 모델이다. 정식명칭은 셔먼 IIC(M4A1개조), 셔먼 VC(M4A4개조) 파이어플라이.

참고로 영국군의 셔먼 분류는 M4->셔먼 I, M4A1-> 셔먼 II 식으로 가고, 여기에 무장에 따라 알파벳기호가 추가 된다. 75mm 단포신 포는 기호가 없고, 76mm장포신 포는 A, 105mm포는 B, 그리고 17파운드 포는 C를 붙인다.

영국군은 자국산 전차 대신 미제 전차가 주력을 이루는 사태를 거북하게 여겨, 자국산 전차인 크롬웰처칠 위주로 부대를 재편할 계획을 세우고, 크롬웰과 처칠 부대의 화력 지원용으로 각각 챌린저와 블랙프린스 등의 17파운더포 장착형 전차를 개발하고, 두 전차의 실패에 대한 보험 겸 자국산 전차의 부족을 매울 셔먼 부대 지원 목적으로 파이어플라이를 개발했다.

 

 

 

[파이어플라이가 장비한 영국제 17파운드 포는 보통의 APCBC탄을 쏘면, 1,000미터 이상에서 티거의 정면을 뚫을 수 있었으나 이 포는 탄도변화가 심해 명중률이 극히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어찌되었던 티거전차를 원거리에서 격파할수 있는 전차가 있다는 소문이 돌자 독일군은 포신이 긴 셔먼전차는 보는즉시 우선 격파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이를 막기위해 연합군은 위장을 하던지 포신 부분에 백색 페인트를 칧 포신을 짧게 보이게 하려는 노력등 각고의 노력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노르망디 상륙 작전 직전까지도 크롬웰과 처칠을 다 합친 것보다 셔먼의 수가 여전히 더 많은 데다가, 챌린저는 갖은 고장과 트러블을 일으켜 소량 생산(200여대)만 하고 중지했고, 블랙프린스는 종전 후에나 완성되어, 결국 17파운더포 전차의 주력은 파이어플라이가 차지하게 되었다.

작은 포탑에 무리하게 큰 포를 우겨 넣었기 때문에, 기본 셔먼에는 없던 장전수용 햇치를 추가(장전수가 전차장 자리에 있는 햇치로 갈 수 없었기 때문에...)하고, 내부 공간 부족으로 포탑 뒤쪽을 통째로 뜯어 무전기를 포탑 밖으로 빼버렸다(물론 무전기용 강철 케이스를 달아서). 포탄 탑재량을 늘리기 위해 무전수겸 전방 차체 기관총수가 사라지고 무전기와 기관총, 좌석이 있던 자리에 추가 포탄 랙이 설치되었고, 영국제 연막탄 발사기와 차외에서 차내로 연락하기 위한 전화기가 추가 설치되는 등 외형상 눈에 잘 띄이지 않는 자잘한 변화도 많다.

 

 



강력한 17파운더포와 선회가 빠른 셔먼의 포탑이 잘 조화를 이룬 것인지, 서유럽전선에서 독일 전차병들이 가장 껄끄럽게 생각하는 적 전차가 되었다. 따라서 가장 먼저 공격하는 목표가 되었다. 문제는 파이어플라이의 방어력은 일반 셔먼 전차의 방어력을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에 먼저 공격당하면 불타는 고철이 된다는 것. 이 때문에 긴 포신을 숨기기 위해 위장망, 위장 도색, 가짜 머즐 브레이크, 다른 전차에 가짜포 달기 등 전선의 병사들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위장술이 총동원되기도 했다. 만화 '강철의 사신'에서도 보면 비트만이 파이어 플라이를 먼저 잡으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포탑에 위장색을 칠하여 단포신 셔먼인 척 하는 파이어플라이.)

독일의 티거 에이스 미하엘 비트만을 전사시킨 것도 영국군 제1노샘프턴셔 요먼리(1st Northamptonshire Yeomanry) 연대 A대대 3중대의 파이어플라이라는 추측이 정설이라고 한다. 비트만은 토털라이즈(Totalize) 작전을 저지하기 위해 기동하던 도중 파이어플라이의 매복에 걸려 우측방을 피격당했고, 그 직후 차내의 포탄이 유폭했다. 이 폭발로 비트만의 007호 티거는 포탑이 수 미터 바깥으로 튕겨나갈 정도의 처참한 피해를 입었다. 당연히 비트만을 포함한 승무원 전원이 즉사. '강철의 사신'에서 보면 위의 설명대로 적전차를 격파하며 진행하던 중 오른쪽 후방에서 파이어플라이의 기습을 받았으며 그 당시 적을 발견했지만 보자마자 바로 피격당해 격파된 걸로 그려지고 있다. 어짜피 티거 전차는 포탑 회전속도가 느려서 봤어도 바로 대응이 어려웠다.

 

 

 

[티거를 무적의 전차라 부르지만 따지고 보면 완벽한 무적이지는 않았다  이 전차 역시 근거리에서 피격되면 관통디거나 격파가 가능했으며 이처럼 관통 가능한 위치를 책자로 만들어 보급하기도 하였다]


비트만의 죽음은 영국군 타이푼 지상공격기의 로켓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이것은 이렇다할 근거 없이 독일군의 선전으로 인해 널리 알려진 가설일 가능성이 높다. 자세한 사항은 위키피디아 비트만의 죽음 항목을 참고. 또한 전선에 자유 폴란드 기갑부대와 캐나다군 기갑부대도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 의해 전사했다는 설도 있다.

 

 

 

전설의 호랑이 사냥꾼!! 미하일비트만 (Michael Wittmann)

 

 

 

 

 

 

 

1914 4 22 ~ 1944 8 8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무장친위대 소속 군인. 가장 많이 적 전차를 격파했던 전차병 중 한 명이자, 전설적인 티거 에이스로 유명하다.

 

 

 

 

 

 

 

 

[미하일 비트만 중위는 티거를 이용 혁혁한 전과를 올린 티거에이스로 연합군이 프랑스 노르망디에 상륙한뒤 비트만의 2중대가 전장에 도착한 다음날인 1944 6 13, 비트만은 숙영지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마을인 빌레르-보카즈(Viller-Vocage)에서 6호 전차 티거I 한 대로 영국 7기갑사단의 선봉 전차부대에 괴멸적인 타격을 주어 그 이력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했다.그는 티거 한대로 적진에 침투해 무려 25대의 각종 전차와 장갑차를 때려부수었다]

 

 

 

최종 계급은 SS대위로, 그가 격파한 전차 수는 138대이고 대전차포는 132문이었다. 독일군 전차 에이스 순위에서는 5[1]지만, 대전차포와 합계를 내면 1. 사실 전차보다 대전차포가 더욱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이기 때문에, 그런 대전차포를 130문이나 때려잡았다는 점에서 2차 세계대전 최고의 전차 에이스로 간주하는 견해도 있다.[2]

 

 

 

 

 [히틀러로 부터 백엽검기사철십자훈장을 수여받는 모습]

 

 

본격적인 활약은 독소전쟁 중인 1941 7월 우만 포위전에서 LSSAH사단 소속으로 당시 탑승차였던 3호 돌격포 A형으로 6대의 T-26 경전차를 격파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1942년 초까지 돌격포를 타고 싸우다가 부상으로 후송, 완쾌 후 사관후보생 과정을 거쳐 42년 겨울에 3호 전차 전차장으로 전선에 돌아왔다. 이후 사단에 티거 중전차소대가 배치되면서 소대장으로 선발, 43 2월의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에서 티거 에이스로서의 활약을 시작했다. 티거 소대는 곧 중대로 확대, 1SS전차연대 13중대로 명명되어 쿠르스크 전투를 시작으로 일련의 활약을 거듭했으며, 비트만은 13중대 3소대장으로서 43년 중반~44년 초반을 보냈다. 특히 44 1월의 체르카시 포위전에서 비트만은 단 3주 만에 50대에 달하는 적 전차를 격파, 100대 격파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때의 공적으로 44 2월에 중위가 되었다.

 

 

 

 

 

 [그가 보카빌레주에서 홀로 25대의 적 전차와 장갑차를 때려부셨다는 그의 전차의 위장을 재현한 레플리카의 모습]

 

 

 

 

원래 13중대는 1943 10월에 제101SS중전차대대로 개편이 예정[3] 되어 있었으나, 급박한 전황 때문에 제대로 개편이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체르카시 포위전이 끝난 후 독일로 이동, 본격적으로 대대 재편성을 받았다. 이때 비트만은 2중대장 임무를 맡았다. 그리고 1944 4월부터 6월까지 프랑스에 머물렀고 결국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되면서 전장으로 이동했다.

 

 

 

 

 

 

[포신에 새겨진 100대가 넘는 화려한 전과들 미하일 비트만 대위에게는 4명의 다른 승무원들이 있엇으며 그들의 환상적인 호홉으로 수퍼에이스로 등극할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같은날 모두 전사하게 된다]

 

 

비트만의 2중대가 전장에 도착한 다음날인 1944 6 13, 비트만은 숙영지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마을인 빌레르-보카즈(Viller-Vocage)에서 6호 전차 티거I 한 대로 영국 7기갑사단의 선봉 전차부대에 괴멸적인 타격을 주어 그 이력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했다.[4] 빌레르-보카즈 전투에서의 눈부신 활약에 아돌프 히틀러는 직접 그를 관저로 불러 공적을 치하하고 백엽검기사철십자훈장을 수여하였다. 또한, 이 공적으로 대위로 승진하게 된다.

 

 

 

[비트만과 그의 부하들 특히 비트만을 있게한 일등부하로 포수의 볼 이 있었기에 일격필살의 그의 전설을 만들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탑승차량중 하나인 205번 차량 비트만과 그의 부하들은 하나늬 티거전차에만 탑승한것이 아닌 최소 3대이상의 각기 다른 티거 차량이 목격되고 있다]

 

이후 대대는 계속 전투에 참여했으나 비트만은 특별히 추가 전과를 올리지 못했고 대대의 전력은 계속해서 감소했다. 그러다가 1944 8 8, 대대 지휘전차인 007호에 탑승하고 캉 남쪽 Saint-Aignan-de-Cramesnil 부근에서 캐나다 제4기갑사단과 교전을 벌이면서 최후의 전과인 전차 3대 격파를 기록하지만, 그 직후 적의 공격을 받고 비트만을 포함한 탑승자 전원이 전사하였다.

 

 

 

[영웅의 최후.. 호랑이도 밀물같이 달려드는 적의 전차 앞에서는 불멸할수 없었나 보다. 피격후 유폭으로 차체와 포탑이 날아간 그의 전차로 그의 최후가 얼마차 처참했는지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그에게 일격을 가한 것이 누구냐는 데에는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의 설이 분분하다. 캐나다군 파이어플라이 전차의 협공설, 영국군의 공격기 호커 타이푼의 지상공격 로켓 피탄설 등이 있으나, 현재는 파이어플라이의 공격에 의한 피탄, 전사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이 전투의 전개 당시 비트만은 부상을 입고 후송된 대대장 대신 대대장 대리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이 전투의 경과를 두고 전차장으로서는 유능했으나 중대장으로서나 대대장으로서는 그다지 유능하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그가 최후에 탑승했던 차량으로 알려진 007번 차량의 모습]

 

 

어쨌든 전사한 비트만과 동료들의 유해는 전사한 곳 근처에 가매장되었으나 전후 그 소재를 파악하지 못해 이장하지 못했고, 1983년에 프랑스 연구자 에릭 르페브르와 그의 동료들에게 발견되어 라 캉브의 독일군 전몰자 묘지로 이장되었다.

 

 

 

 

 

[영웅의 묘.. 전사한 비트만과 동료들의 유해는 전사한 곳 근처에 가매장되었으나 전후 그 소재를 파악하지 못해 이장하지 못했고, 1983년에 프랑스 연구자 에릭 르페브르와 그의 동료들에게 발견되어 라 캉브의 독일군 전몰자 묘지로 이장되었다.]

 

 

 

이 사람 뿐이 아니라, 나치 독일의 수많은 에이스들은 대부분이 씁쓸한 최후를 맞이하여, 아랫것들이 X빠지게 고생해서 엄청난 업적을 이뤄봐야 윗대가리가 멍청하면 말짱 황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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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S만으로는 1위이다.

[2] 하지만 육군이 아닌 SS소속이었던 이유로 오토 카리우스와는 달리 현재 독일육군의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3] 당시 SS는 기갑군단 직할 독립중전차대대를 편성하기 위해 각 사단의 중전차중대를 차출해서 대대로 확대 개편할 예정이었다.

[4] 이 전투에서 27대의 전차를 격파했다.

 

출처 엔하키미러

http://mirror.enha.kr/wiki/%EB%AF%B8%ED%95%98%EC%9D%BC%20%EB%B9%84%ED%8A%B8%EB%A7%8C

 

 


17파운더포의 위력은 판터의 주포보다 더 관통력이 높다고 한다. 다만, 파이어플라이는 보다 작고 약한 포를 쓰도록 만든 초기형 셔먼을 개조한 것이기 때문에 위력이 강해진 만큼 늘어난 반동을 완전히 흡수하기 힘들었고, 일반적인 철갑탄보다 정확성이 떨어지는 APDS탄을 써야 제대로 된 관통력을 발휘할 수 있으므로 해당 포탄을 많이 썼기 때문에 사거리가 늘어날수록 치명적으로 명중률이 떨어지는 경향도 있었다. 이 전차의 초기 도입 시 영국군의 명중률 조사에 따르면 1.2km 거리에서 약 17%의 명중율을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상태라면 장거리 사격은 그냥 못한다고 보면 되고, 제대로 명중시키려면 엄청나게 근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셔먼에서 전차포만 개량되다 보니까 방어력은 그대로라서 여전히 티거의 56구경장 88mm포나 판터의 70구경장 75mm포에 맞으면 사실상 다른 셔먼 전차처럼 쉽게 격파되는 수준이다.

이래서 영국은 중장갑에 20파운드포(83.4mm)를 탑재한 센추리온 전차를 개발하지만 그 전에 2차 세계대전이 끝난다. 참고로 이 20파운드포는 퍼싱/패튼의 90mm포보다 더 강력하지만 명중률은 엄청나게 떨어지는 걸로 한국전쟁에서 확인됐다.

 

 

 

 

 

 

 

 

 

 

 

 

 

 

 

 

 


 

 

 

1. 박스 및 외형

 

 

 

 

 

2. 내용 및 특징

 

 

 

 

 

 

 

 

 

 

 

 

 

 

 

 

 

 

 

 

 

 

 

 

 

 

 

 

 

 

pt2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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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레이(정호경) | 작성시간 12.06.08 포신의 위장무늬는 그런 연유가 있었군요..왜 하나같이 다 있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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