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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마의 소설 [몽테 크리스토 백작]에 대하여 / 마광수

작성자광마|작성시간15.10.04|조회수763 목록 댓글 0

뒤마의 소설 <몽테 크리스토 백작>에 대하여 .................. 마광수



'재미'라는 요소로만 따질 때,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은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몽
테 크리스토 백작>이다. 초등학교 다닐때는 내용을 짧게 줄인 축소판으로 읽었고, 대학에
다닐 때 비로소 오징자씨 번역으로 완역본이 나와 정말 흥미진진하게 탐독했다.
밤을 새워가며 읽을 수 밖에 없는, 그야말로 '스릴'과 '서스펜스'로 가득찬 모험소설이었다.
그러다가 1994년에 다시한번 통독할 기회가 있었는데, 건너뛰어 읽은 부분이 하나도 없었
을만큼 여전히 재미가 있었다.

소설의 목적은 우선 '재미'에 있고, 또 그래서 소설이란 장르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는 너무 재미있는 소설은 '통속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위선적 선입견에 빠져있는 수가 많다.

그래서 이른바 '명작'이라고 불리는 소설들은 대개 독자가 건너뛰어가며 읽을 수밖에 없는
소설인 경우가 많고, 작가의 교훈적 잔소리가 소설의 태반을 차지하고 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나 멜빌의 <백경(白鯨)> 같은 것이 대표적 예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뒤마의 소설들은 작가가 오로지 '재미'만을 진솔하게 추구했다는 점에서
문학사상(文學史上) 유례가 없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뒤마는 조수를 써가며 다작(多作)을 했기 때문에 100편 가까운 장편소설을 남겼다. 그중에서
도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은 <몽테 크리스토 백작>과 <삼총사>가 될 것이다. 그밖
에도 <20년 후>나 <철가면> 같은 소설도 서구에서는 줄곧 애독되고 있다. 또 그런 작품들은
대개가 영화화되어 많은 사람들을 시각적으로도 즐겁게 해주었다.

나는 <삼총사>보다는 <몽테 크리스토 백작>을 훨씬 더 좋아한다. <삼총사>가 궁중(宮中)의
암투를 배경으로 하여 곤경에 빠진 왕비를 돕는 무사들의 얘기를 그린 데 반해, <몽테 크리
스토 백작>은 억울한 감옥살이 끝에 극적으로 탈출하여 원수들을 신나게 물리치는 통쾌한
복수담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다시 읽은 1994년은 <즐거운 사라> 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직후였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식의 항소심을 치르면서 나는 나를 황당한 죄목으로 옭아맨 많은 '원수'
들을 생각했고, 몽테 크리스토 백작처럼 나도 나중에 신나게 원수를 갚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에 빨려들어갔다.

에드몽 단테스가 친구들의 배신에 의해 억울한 감옥살이를 한 것처럼, 나 역시 친구는 아니
지만 문단이나 교수사회의 일부 몰지각한 자들이 저지른 치사한 '몰매질'에 의해, 세계에서
도 유례가 없는 '음란물 제조범'이 됐기 때문이었다.

'복수'를 테마로 하는 소설이 유달리 재미있게 읽혀지는 까닭은, 이 세상엔 이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구나 동료를 모함하거나 중상하여 몰락케
하는 '사악한 무리들' 역시 이 세상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드몽 단테스같이 극적으로 감옥을 탈출하고, 게다가 엄청난 재물까지 손에 넣어
신나게 복수극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대학시절에 이 소설을 읽을 때는 그저 통쾌하기만 했는데, 40대 나이에 이 책을 읽을 때는
약간 씁쓰레한 허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수구적 봉건윤리로 똘똘 뭉친 꽉 막힌 권위
주의자들의 횡포에 내가 무력감을 느껴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의 가치가 깎여지는 것은 아니다. 비록 리얼리티와 개연성을
결(缺)하고 있다고는 해도, 어쨌든 이 소설은 통쾌한 대리배설 (또는 대리만족) 의 쾌감을
우리에게 선물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은 일종의 '인공적 길몽(吉夢)' 이라고 생각
하는데, 꿈속에서라도 대리만족을 체험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의 울화가 다소나마 위안을 받
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에드몽 단테스는 친구들의 모함과 악질 검사의 출세욕으로 인해 애인까지 빼앗기고 지하감
옥에 갇힌다.그리고 14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허비한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는 억울한 감
옥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 소설은 법과 제도의 횡포 때문에 고생하는
죄수아닌 죄수들을 생각해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다.

어쨌든 이 소설은 통쾌한 '대리만족'이 가능한 소설이고, 그래서 우리의 삶에 용기를 북돋
워준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이 끝나고 있는데, 그런대로 우리의 고달픈 삶
에 위로를 준다고 할 수 있겠다.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


(<마광수의 유쾌한 소설 읽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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