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 Nouvel
1950년 프랑스 남서부 퓌멜(Fumel) 출생. 1966년 국립고등예술학교(Ecole Nationale Superieure des Beaux Arts)에 입학해, 1972년 졸업과 함께 프랑스 공인 건축가 자격을 취득하였다. 1967년부터 1970년까지 클로드 파랭(Claude Parent)와 폴 비릴리오(Paul Virilio)의 어시스턴트로 활동하였으며, 그 뒤 1970년부터 1972년까지는 프랑수아 세뇨르(François Seigneur)와 함께 일했다. 졸업 후에는 질베르 레제네(Gilbert Lézénès) 및 프랑수아 세뇨르와 함께 1981년까지 공동 작업을 해나갔다.
장 누벨은 1976년 시작된 프랑스 건축 운동 ‘마르스(Mars)’ 및 1977년의 ‘건축 조합(Syndicat de L'Architecture)’의 공동 창립자이기도 하다. 1981년부터 1984년까지는 다시 질베르 레제네 및 피에르 소리아(Pierre Soria)와 함께 공동 작업을 진행하였다. 1984년, ‘누벨 앤 어소시에이츠(Nouvel and Associates)’를 설립하여, 장 마르크 이보스(Jean-Marc Ibos), 미르토 비타르(Myrto Vitart), 엠마누엘 블라몽(Emmanuel Blamont) 등과 함께 작업을 하였으며, 이후 1989년에는 JNEC(장 누벨 & 엠마누엘 카타니; Jean Nouvel et Emmanuel Cattani)를 설립하였다.
그러다가 1994년 현재의 스튜디오인 ‘아틀리에 장 누벨(Ateliers Jean Nouvel; AJN)’을 설립해 지금까지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가 설계한 유명 작품으로는 파리의 아랍 문화원(Arab World Institute), 리옹의 오페라 하우스, 카르티에 재단 본사 등이 있다.
장 누벨의 주요 수상 경력은 다음과 같다.
- 아랍 문화원 공모전 수상, 1981
- 건축 대상 (Grand Prix d'Architecture), 1987
- 은삼각자 상 (Equerre d'Argent; 프랑스 올해의 건축상), 1987&1993
- 시카고 전미건축가협회(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 Chicago) 명예 회원, 1993
- 영국 왕립건축학회(Royal institute of British Architects) 명예 회원, 1995
- 파리 생활용품 및 실내장식 박람회(Maison and Objet Exhibition) ‘올해의 작가상(Creator of the Year)’, 2006
- 아놀드 W. 브루너 기념상(Arnold w. Brunner Memorial Prize) 건축 부문 수상, 2006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언제입니까? 워낙 올빼미족이라서 저녁이나 밤 시간을 좋아합니다.
어떤 음악을 즐겨 들으시나요?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음악을 같이 즐겨 듣는 편인데, 거기서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제가 좋아하는 건 인간의 목소리라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오페라나 성가, ‘환희의 송가(Chante de l'Ecstase)’ 같은 11세기 프랑스의 다성음악이지요. 저에게는 인간의 목소리가 가장 감성적인 자극을 줍니다.
침대 맡에 두고 보는 책은 어떤 것들인가요?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의 <불안의 책 The Book of Disquiet>입니다. 정말 마음을 평온하게 하게 책으로, 변치 않는 철학적 가르침을 주지요. 저처럼 상당히 바쁘거나 동적인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이런 종류의 정적인 해방감을 취하는 게 꼭 필요합니다.
라디오도 들으시나요? 차 안에서나 듣는 편이죠.
새로운 뉴스 같은 것은 어디서 들으십니까? 전 정말 신문을 열심히 읽는 사람입니다! 매일같이 일간 신문을 사고, 업무상 여행을 많이 다니기 때문에 매주 온갖 종류의 주간지를 사게 되지요.
여성들의 패션에 관심이 있다면, 특별히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으신가요? 캐주얼한 의상이 필요할 때가 있고, 좀 더 우아한 차림이 필요할 때가 있지요. 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죠.
특별히 피하는 옷차림이 있으신가요? 전 늘 블랙으로만 입습니다. 그러는 게 정말 쉽고 간편해서, 그 외 다른 옷들은 입지 않습니다. 봄, 가을, 겨울에는 항상 블랙을 입지만, 여름 몇 달간 남부 프랑스에 있을 때는 완전히 화이트로만 입기도 합니다.
애완동물을 기르시나요? 전혀요. 키운다면 모기 몇 마리쯤? (웃음)
다른 디자이너들과 작업에 대한 논의를 하시나요? 많은 친구들과 건축에 대해 의논을 합니다. 많은 컨설턴트와 함께 일하고 있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모임을 꾸려서 오랜 시간 동안 정기적으로 논의를 해 오고 있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고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는 친구들이니까요. 대개는 프로젝트 별로 각각의 역할을 수행할 적합한 컨설턴트 팀을 구하는 식이죠. 그렇지만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건축 살롱’ 모임을 꾸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석한 일이죠. 아마도 모두 정신적으로 혼자이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작업은 주로 어디서 하시나요? 제 침대에서도 하고, 왁자지껄한 식당에서도 하고, 제 사무실 책상에서 할 때도 있지요. 브레인스토밍이 오가는 대규모 회의가 끝난 뒤 혼자 조용히 있을 때면 그 간극에서 매우 생동감 있는 무언가를 느끼게 됩니다. 그럴 때면 혼자 조용히 긴 침묵의 시간을 갖곤 하지요.
당신의 스타일을 어떤 말로 묘사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친한 친구가 설명한다면 어떻게 표현할지요. 저는 늘 특이성specificity이라는 관점에서 연구를 합니다. 지구 위 곳곳에 똑같은 건축물을 짓거나 똑같은 건축술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특정한 장소, 특정한 사람들에게 맞는 건축 작업을 진행하는 데 합당한 근거를 연구하고, 독특한 것을 창조하기 위해 필요한 합리적인 이유들 역시 연구하지요.
또한 물질과 빛은 세상의 의미와 시대에 대한 거대한 질문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작업은 이러한 차원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첫 프로젝트부터 최근의 작품까지 당신의 작업은 어떻게 변화해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 질문에 대한 최상의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작품의 배후에 항상 동일한 생각, 동일한 느낌이 존재한다고 보고, 작업을 할 때는 어떤 한 가지 방식에 따른 모든 가능성을 연구하지요. 자연히 다른 방식은 제해지는 것이지만,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늘 갖고 있습니다. 결국 제가 하는 작업은 장단기간 이루어지는 ‘공간의 변형(modification of space)’으로, 일종의 ‘작은 세계(little world)’를 창조하는 것이자, 이미 알고 있는 세계를 확장하는 것이라 얘기하고 싶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각각의 공간을 변화의 무대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지리적, 역사적 연속성이 존재한다는 것 역시 잊으면 안 되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맥락과 단절된 작업보다는 ‘변형(modification)’이라는 관점으로 시작하는 프로젝트를 선호합니다. 제가 겸손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저는 늘 간결하면서도 섬세하고 깊이 있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 사람이니까요. 도시건 시골이건 그 장소의 정신, 사람들의 욕망, 그 이전 건물이 지녔던 정신적 측면을 계승하는 작업을 하고자 합니다.
건축에 있어 윤리학이란 어떤 것일까요? 사람들에게는 세계를 분석하고 알고자 하는 욕망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무언가를 표현하고 창조하고자 하는 작업이 방해 받아서는 안되죠.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유토피아’라는 것이 바로 저희 작업의 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저는 전세계적으로 똑같은 건물들이 복제되고 반복되는 현상과 함께 현 세계가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가능하다면 ‘차이’를 창출하기 위해 계속 진화해 가야만 한다고 봅니다. ‘차이’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이해를 나타내는 지표로서의 ‘차이’ 말이죠.
과거의 건축물 중 특히 당신에게 영향을 미친 작품이 있다면요? 저는 ‘빛의 건축(architectures of light)’에 굉장히 감수성이 예민한 편인데, 샹들리에나 11-12세기의 교회에서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파리의 ‘생 샤펠(Saint Chapelle)’ 성당이나, 훨씬 나중의 건축물이긴 하지만 피에르 샤로(Pierre Chareau)의 ‘유리의 집(Maison de Verre)’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죠.
그렇다면 현재 활동 중인 건축가 중에는 어떻습니까? 물론 많지요, 많다마다요. 이런 질문은 언제나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를 테면 저는 이 질문에 10명이라도 댈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러고 나면 왜 11명이 아니고 하필 10명만 대냐는 의문이 남죠.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젊은 후학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아니오, 충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분석해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하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강의를 안 하시는 건가요? 늘 강의 제안을 고사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두 분의 스승이 계셨지만, 저에게 있어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입니다. 교육자라면 자신의 학생에 대해 잘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들의 능력이 ‘만개’할 수 있도록 힘껏 독려해야 합니다. 그런 강의는 저에게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고려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자 어느 정도 효율적인 교육 방법이라면 워크숍을 통해 함께 작업을 해나가는 정도이지요. 그런 과정을 겪고 나면 워크숍을 통해 습득한 지식을 스스로의 판단 하에 활용할 수 있고, 앞으로의 활동 방향도 각자 선택해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미래에 관해 당신이 근심하는 바는 무엇인지요. 저는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제가 관심을 갖고 마음을 쓰는 건 미래가 아니라 현재입니다. 정치적 차원에서 보면 중요한 이슈들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은 이슈들도 있지만, 전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인류의 스토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으며, 꼭 그렇게 최악의 길로 빠져들 리는 없다고 생각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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