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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세계

한자(漢字)는 원래 우리글[韓字]

작성자buffalo|작성시간10.08.23|조회수135 목록 댓글 0

한자(漢字)는 원래 우리글[韓字]이다

 

 이번 여름에 아들이 내다하여 UofR 청강과 더불어 본 우공의 분주한 낚시시중에도 시간을 내어 한자를 공부하는 모양새를 보았다. 참으로 대견하고 신통하여 이에 한자(漢字)는 원래 우리글[韓字]이다라는 내용을 알려주고 심기가 가히 즐거워 다시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내용의 품격과 권위를 더하기 위하여 기존의 명문장들을 빌어와 힘을 더하였다.

 

이글은 글 맨 아래 링크주소에 명시한대로 증산도 “도전으로 보는 세상”글과 또한 “한글한자 모두 우리글” 그리고 “한글·한자·영어 모두가 우리말”의 글과 문장 등을 3삼태기로 퍼 와서 조합하여 활용하였음을 사전에 밝힌다.

 

언어는 사람들의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아마도 태초에 먼저 말이 있었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 문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말이 있다. 아이들이 말과 글을 배워가는 과정을 보면, 인류 역사에 문자가 발생하고 진화해온 과정을 상상해볼 수 도 있겠다. 추측컨대, 문자는 아마도 먼저 그림문자의 단계를 거쳐 점차 추상화되고 소리의 변화와 결합하는 가운데 글자로서 완성되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는 본래 음양일체로 두 개의 문자가 있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한글만이 우리의 글이며, 한자(漢字)는 중국의 글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표의문자인 한자(漢字)는 원래 한자(韓字)이며, 표음문자인 정음(正音)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두개의 문자 가운데 하나였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옥편(玉篇)을 불사르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는 문자만으로도 능히 모든 사물을 기록할지니 앞으로는 쉽고 간단한 문자로 천하에 통용되도록 하리라.󰡓하시고 󰡒장차 우리나라 말과 글을 세계 사람이 배워 가리라.󰡓하시니라. (道典 5:11)

 

한자에 담긴 우리 역사 한자(漢字)란 한(漢)나라의 글자라는 뜻이다. 이는 한나라 때(BC140~ )에 이르러 해서라는 모양으로 완성된 글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한자는 한족이 처음 만든 문자는 아니다. 한자의 원형은 우리 동방족(동이족東夷族)이 창제한 것이다.

 

한자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큰 틀에서 볼 때, 한자는 처음에 그림문자에서 출발하였을 것이다. 한자의 기원을 흔히 갑골문에서 찾는다. 갑골문이란 거북이나 소의 뼈에 새겨진 문자를 통칭하여 이르는 말로, 정사를 판단하기 위해 점을 칠 때 사용한 것이라 한다. 중국의 고대 은 왕조(BC 1600~BC 1122, 상商나라)의 도성이었던 유적지 은허에서 다량 출토되어 은허문자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고고학적 발굴 결과 이 갑골문이 처음 출현한 곳은 서요하 상류로 확인되었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5,500년 전의 것으로서, 이곳이 동방족의 주요 활동무대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갑골 점복은 처음에는 소 어깨뼈나 발굽뼈로 했으나 은나라 때부터는 거북 등뼈도 사용하였다. 이때 문자를 새기기 시작했다.

 

 오늘날 많은 역사학자들은 은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라는 자료를 제시한다. 나아가 갑골문 속에는 우리 민족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삼일신고, 참전계경, 천부경은 우리 삼성조 시대의 신교문화를 전해준 3대 경전에 속한다. 그런데 이 천부경이 갑골로 쓰여진 것이 발견되었다. 더구나 고려말 충신의 유품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농은 민안부는 고려말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 도은 이숭인, 수은 김충한과 더불어 6은으로 불린 충신으로서, 조선을 연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반대하여 두문동(杜門同)에 은거한 72현 중의 한 사람이었다(도전 두문동 성수공사 5:328~9, 11:389 참조).

 

 또 환단고기 태백일사에는 목은 이색 등이 천부경을 주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농은 민안부는 목은의 친구였으며 따라서 천부경을 이해하고 공유한 사람이었으리라고 짐작된다.  갑골문의 모사본으로 알려진 이 천부경 글자는 지금까지 발견된 갑골문에는 없는 글자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따라서 해독이 불가능한 글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은허에서 발견된 갑골문보다 더 오래된 것이 아니냐는 진단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자의 뿌리는 배달국 태고문자 그런데 은나라가 갑골문을 사용하고 있을 때, 단군조선에서는 전문(篆文)이라 하여 약칭 단전(檀篆)이라고 불리는 문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문자들이 당시 사용된 토기에서 속속 발견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자들이 최초에 창조된 것은 언제일까? 지금까지 동북아지역에서 갑골문뿐만 아니라 수많은 고대 금문(金文: 고대 청동기, 토기, 갑골에 새겨진 원시 한자와 각화문을 통칭하여 일컫는 말)이 발견되었으며 여기에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문화적 자취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 갑골문이 은나라 때에 국한된 것이라면, 그림문자로 출발한 금문은 어쩌면 전자(篆字)에 비견되는, 전서(篆書)의 원형이었으리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최초의 금문연구서인 『금문신고(金文新攷)』(낙빈기, 산서인민출판사, 1987년)의 저자인 낙빈기(駱賓基)는 금문의 해석을 통해 신농과 황제 등 삼황오제시대를 역사적으로 증명하였으며, 더욱이 이것이 동이족의 역사와 문화였음을 고증하였다. 이런 충격적인 내용 때문에 중국내에서는 금서(禁書)로 분류돼 왔었다.

 

  기록에 전하는 중국 고대문자의 시조는 5500년 전 동이족 태호 복희씨라는 설과 4700년 전 창힐이라는 설이 남아있다.   역(易)철학의 시조인 태호 복희씨는 배달국 제5대 환웅천왕의 막내아들이다. 복희씨는 중원으로 이주하여 동아시아문명을 실질적으로 개벽한 문명의 개조이며 한자의 뿌리가 되는 육서(六書)의 원리를 만들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그는 용봉(龍鳳)을 토템으로 하여 관명을 지었다고 하며 새로 만든 문자를 용서(龍書)라고 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후대 황제 헌원 때 󰡐창힐󰡑이라는 인물이 새 발자국 모양을 따서 조적서(鳥跡書)를 만들었는다고 하며, 현재 그의 고향 섬서성 백수현 사관촌에 그 비석이 남아있다. 즉 복희씨의 용서와 창힐의 조적서 등이 후대에 갑골문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리고 춘추전국시대 이후 진(秦)시황(BC221~210)이 중국대륙을 통일하면서 문자를 통일하고, 이를 고대문자와 구분하여 소전(小篆)이라 칭했으며(앞에 밝을 명明자 참조), 다시 한대(BC140~ )에 이르러 한자(漢字,예서)로 굳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최초의 한자연구서이자 사전격인 고전 『설문해자(說文解字)』(BC100, 9353자)가 정리되어 나온다.

 

  그러면 복희, 창힐시대에 동방 배달에는 어떤 문자가 사용된 것일까? 배달국 문자를 만든 인물은 초대 환웅천황 때 신지(神誌) 혁덕으로 전해온다. 그는 사슴발자국을 보고 처음 문자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녹도글자가 경남 남해군 양하리 금산 중턱바위에 있다. 환단고기 대변설에 이르기를, 󰡒남해현 낭하리에 계곡 바위 위에 신시의 고각(古刻)이 있다. 그 글에 환웅천황께서 사냥 나왔다가 제를 삼신께 드린다고 했다󰡓고 전한다.   이것이 후대에 더 세련된 모습으로 발전된 바, 이것이 1942년에 <영변>지와 구한말 백두용(白斗鏞) 편, 『해동역대명가필보(海東歷代名家筆譜)』에 실린 신지 전자(篆字)다. 배달국에서 만들어져 고조선시대까지 사용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창성조적서비(鳥跡書碑)의 창힐문자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환단고기, 삼성기에 의하면 창힐은 배달국 제14대 치우천황 때 문물을 배워갔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갑골문과 금문에 널리 전해오는 전자(篆字)는 기실 배달국의 녹도문이 전해져 여러 가지로 수정, 변형되어온 것으로 확인되는 것이다.

 

   한자의 변천과정을 보면, 우리 것이 먼저고 우리가 중국을 가르친 스승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아시아문명의 뿌리가 한민족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아직도 모든 문물이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처럼 가르치는 교육의 현장을 다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시속에 중국을 대국(大國)이라 이르나 조선이 오랫동안 중국을 섬긴 것이 은혜가 되어 소중화(小中華)가 장차 대중화(大中華)로 바뀌어 대국의 칭호가 조선으로 옮겨 오게 되리니 그런 언습(言習)을 버릴지어다. (道典 5:118:3 4)

 

한자가 원래 우리 글이다는 증거는 우리 주변에 많이 널려 있다. 우리가 한자를 완전히 독자적으로 발음하고 해석하는 모든 체계화된 교범 즉 우리의 옥편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고유의 한자 음가 즉 모든 음이 단음으로 표현되는 고유한 우리 발음 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바로 우리글인 것이다..

 

 한국에서 자란 사람들은 아무리 한글세대라도 어느 정도 기본적인 한자지식은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力자를 알고있으면 협력, 조력, 중력, 무력, 생명력... 파생되는 단어들을 비교적 쉽게 유추하고 익힐 수 있다. 교포 2 세들이 집에서 한국말을 사용하고 TV 를 본다고해도 높은 수준의 한국어 실력을 갖추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뿐만 아니라 한자어를 익힘으로써 단어의 수를 풍부하게 가지면 그만큼 표현력을 높일 수 있다.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사람의 말이나 글 조차도 한자어를 넣지않으면 의미를 전달하기 힘든데, 아니 한글전용이란 단어 조차도 한자어가 들어가는데 언제까지 그 사실을 외면할 것인지.

 

 외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도 견고하고 올바른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는 데 한자교육이 빠져서는 안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훈민정음 서문조차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것은 누구 탓일까요?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之文字 不相流通 故愚民... 국지어음 이호중국 여지문자 불상유통 고우민...으로 시작하는, 서문에서 (나랏말씀이 중국에 달라...)☜이 간단한 문장조차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똥대가리의 한글학자들...나랏말씀이 나라(國)안(즉,가운데 中)에서도 서로 다르다는 말이지요.

 

발음이 서로 다르기에 불상유통(不相流通)인게지요. 그 당시에 존재하지도 않는 중국을 들먹이며, 지금의 중국(China)과 혼동해서 해석하는 한글학자"라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 있을런지요. 세종대왕님 당시의 조선은,明나라를 대국이니/상국이니/중화니/했는데...불경스럽게 중국"이라고 표현했겠어요? 정말 지금의 중국을 의미한다면,異乎大國/異乎上國/異乎中華 라고 했으리라는 것은,세살먹은 윤아도 알텐데요.

 

中國"이라는 단어가, 고유명사로 쓰여지기 시작한 것은 ,손문'의 신해혁명 이후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훈민정음 서문을 언제 발견했고 또 누가 해석을 했는지도 따져보면...자연적으로 알게 된다는 말이지요.異乎中國(이호중국)이라는 말은,(나라 안에서)도 서로 한자발음이 다르기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인 게지요. 고로, 나랏말은 한자였다는 것이며... 한자는 우리글 이라는 추론이 가능한 게지요. 즉, 훈민정자(訓民正字)가 아니라고 세종대왕님이 그렇게도 글로 남겨놨건만...한자"를 모르는 똥대가리 한글학자들은 눈이 있어도 볼수 없고, 봐도 읽을 줄 모르고, 읽어도 뜻을 모르므로 어쩔 수 가 없는 게지요.머리에 똥만 들어있는 한글학자들은 (아 !! 오늘은 배가 터지게 먹었더니, 어제는 배가 부르구나 ! )라는 표현도 하는 족속들 이니껜...^^;

 

 한글이 우리글임에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므로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그리고 소위 漢(한)나라의 글자라고 하는 漢字(한자)도 한나라 이전부터 있어왔기 때문에 한나라를 중국의 중심국가로 취급하는 현재의 중국에서 이 漢字(한자)를 중국의 고유문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도 않고 또 사실이 아님은 이미 증명되어 잇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漢字(한자)의 원류는 분명히 漢(한)나라 이전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데,...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은나라 시대의 갑골문자가 가장 초기의 漢字(한자)임이 이미 밝혀졌고, 여러 역사 기록에는 이 은나라는 현재 중국이라고 하는 漢(한)나라를 계승한 사람들(중국인)과는 계통이 다른 바로 소위 우리 동이인들의 국가였다는 것이 미미 정설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 동이인이 바로 현재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민족의 원류 중에 하나인 것도 엄연한 사실인 것입니다. 즉, 漢字(한자)의 원류인 은나라 갑골문은 우리 동이인의 유산이고, 동이인의 후예인 우리가 현재 한글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한자나 한글이나 다 우리글'이라는 인식은 아주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따라서 비록 현대사회에서 漢字(한자)의 사용이 조금 불편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漢字(한자)를 활용하는 방법론의 문제이지 얼마든지 그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찾을 수 잇다고 봅니다...혹시 지금은 그 방법이 적절치 못하다고 하더라도 미래에는 얼마든지 훌륭한 방법이 개발될 수 있으므로 그때를 위해서라도 漢字(한자)의 사용은 유지되고 확대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한글 창제 전에도 수천 년에 걸쳐서 수많은 우리 선배들은 중국에서 한자를 빌려다가 의사 소통과 사상 전개에 나름대로 썼다. 그래서 한자는 우리말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많은 사람이 사용한 언어가 자신의 언어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자신의 언어가 되는가. 게다가 한자가 우리말이 아니라면 수천 년 동안 우리 선조는 자기 글도 없이 살다 간 비문명적인 인간이 되고 만다. 긴 세월 한자라는 언어로 생각을 전달하고 사상을 표현한 선배들을 그렇게 평가절하하는 것은 옳지도 않으려니와 후손으로서 취할 태도도 마땅히 아니리라.

 

가끔 산사에 가면 사찰 곳곳에 쓰인 한문을 읽고 해석하고 싶다. 그러나 나의 한자 실력으로는 엄두도 못 낸다. 해석은 고사하고 겨우 읽는 정도다.그러나 뜻을 헤아리지 못하니 읽기만 해서 무슨 소용이랴. 선배들이 써 놓은 글을 바로 새기지 못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저 글을 줄줄 읽어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 못난 후배여!’ 한글과 한자는 공히 우리글이다. 언제부턴가 한자 교육을 폐지한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결정이었다. 수천 년 써 온 제 언어를 갑자기 버린 것은 우선 정당성이 없고, 작금 중국 문자의 세계적 효용성을 고려한다면 어리석기까지 하다.

 

한자는 통상적으로 중국기록에 의거하여 고대 황제헌원(黃帝軒轅) 시대(BC2698년경)에 창힐(蒼綖)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조족문자(鳥足文字)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후 요순시대를 거쳐 은나라(BC1766-BC1122)의 갑골문이 실제 유물로도 발견되고 있듯이 한자의 역사는 깊다. 여기서 황제헌원은 배달나라(檀國)의 웅족(熊族) 출신으로 중국의 실질적인 시조가 된 사람이다.

 

 한편, 은나라는 동이족으로 알려져 있는 민족인 바, 그러면 동이족의 몸체였다는 우리 한국은 어떤 문자를 가졌을까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고대 중국과 한국의 상호관계를 단절적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가 통상 인식하는 것보다는 실로 활발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요순시대(BC2357-BC2224경)의 순임금을 보더라도 그는 동이족이라고 맹자에서 밝히고 있다.

 

중국의 순임금시대는 바로 단군조선시대 초기에 해당한다. 다른 수많은 기록을 차치하고라도 중국의 오월춘추에서 요순임금의 9년 홍수시대에 우(虞)의 사공(司空)인 우(禹)가 현이(玄夷)의 창수사자(蒼水使者)로부터 금간옥첩(金簡玉牒)을 받았다라는 기록과, 단군 조선시대에 쓰여졌다는 신지비사(神誌秘詞)라는 글이 고려사에 전하는 것을 보건대, 이미 단군조선시대에 우리는 문자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채호선생이 지적하였듯이 현이는 바로 단군조선을 가리키는 것이며, 금간옥첩은 신서(神書)라고도 불리우는 것으로 치수(治水)의 비결을 글자로써 기록한 책임이 명백하다. 당시 교류관계로 미루어 우리와 중국은 같은 글자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되는데, 그 글자가 지금의 한자로 이어진 것이다. 한자가 원래 배달나라(檀國) 시대의 문자에서 연유하였다라는 사실은 그냥 두고서도 단군조선시대에 쓰여진 이 글자가 우리 글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지금에 와서 최소한 4300년 이상을 써온 글자를 버리는 것은 그야말로 면면히 이어온 유산을 포기하는 역사 거부의 죄를 범하는 꼴이 된다. 중국이 현재 한자를 전적으로 쓰고 있다고 해서 한자가 중국만의 글자인 것은 아니며 바로 우리 고유의 글이기도 한 것이다. 한자는 한글과 더불어 우리 역사와 함께 살아 있는 우리 글이다.

 

 한글은 세종대왕 때 처음 나타난 글자가 아님은 여러 기록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이미 단군조선 초기에 뜻글자인 참글(眞書)과 소리글(正音)인 가림토(加臨土)가 있었다고 기록되고 있다. 역사기록상으로 볼 때 소리글보다 뜻글이 먼저 나타났는 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글을 버리는 것은 후손이 취할 도리가 아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漢字(한자)와 한글은 모두 우리글로서 두 문자를 모두 확대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아래에 기록된 링크를 크릭하여 찾아가 연결하면 원문들을 읽을 수 있다.

 

http://www.jsd.or.kr/jeungsando/masters.php?mid=467&where=tag&keyword=%ED%95%9C%EC%9E%90 증산도HOME<도전과 말씀<도전탐구<도전으로 보는 세상

http://coo2.net/bbs/zboard.php?id=con_4&no=23517 한자나 한글이나 다 우리글 이다.

http://kugmun.com/bbs/view.php?id=tw_writing&no=107 [칼럼 - 황필홍][칼럼 - 황필홍] 한글·한자·영어 모두가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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