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쥬류(강유류,剛柔流)
고쥬류와 후술(後術)하는 우에치류는 앞서 말한 쇼토칸이나 시도류와는 형성 경위와 기술적 특성이
많이 다르다. 그것에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중국 남파 권법의 영향이다. 이 두 유파의 창시자들은
본인이 직접 중국에 가서 중국 남권을 배웠고 오키나와데로 변하기 전의 중국 권법을 직접 체득
한 것이다.
고쥬류는 미야기 쵸준(宮城長順,1888-1953)에 의해 창시되었다. 오키나와의 관료계급 출신의
숙부에게 입양되어 부유한 환경에서 데 수련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그 숙부는 상선을
가지고 중국과 무역에 종사하여 그는 중국을 왕래하는데 비교적 자유로웠을 것이다.
14세 되던 1902년 당시 나하데의 명인이던 히가오나 문하에 들어가 나하데를 수련하고 발군의
실력을 보여 히가오나의 우찌데시(內弟子)가 된다. 1905년 중국 복건성을 방문하여 남파권법을
배우고 이후 두차례 더 중국을 방문하여 약 3년간 체류한다.
중국에서 돌아와 고향 나하의 지방 경찰국의 무술사범을 역임하였고 나하 상업고등학교에서도
가르쳤다. 한때 이토스를 찾아 가르침을 청하였으나 이토스는 그가 이미 나하데를 마스터 했
다고 생각하여 제자로 거두는 것을 거절하고 대신 몇 가지 시연을 해 보이고 이론적 부분에
조언하는 것으로 그친다. 그가 1940년에 창안한 겍사이 가타가 이토스의 슈리데에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일본 본토에 자주 여행하며 가라데 보급에 진력하여 교토대학과 간사이 대학에서 당수부를
만들어 가르치고 제자들을 배출한다. 1933년 가라데로는 최초로 일본 부도쿠카이(무덕회,武德會)
에 가입한다.
고쥬류는 그 명칭부터 다분히 중국에서 출발한다. 1930년 일본본토에서 당수를 보급하고 있던
그의 수제자가 다른 유파로 부터 그 스타일이 뭐냐는 질문을 받고 대답하지 못하고 이 사실을
스승에게 보고한다. 데, 나하데, 또는 도데(唐手)는 유파의 명칭이라기엔 좀 곤란했던 것 같다.
제자의 보고를 받고 미야기 초준은 며칠 고심끝에 자기 스타일을 고쥬류(강유류,剛柔流)라
명명한다. 강유(剛柔)는 모원의(茅元儀)가 쓴 무비지(武備志)의 권법편에 나오는 요결의 한
구절이다.
인심동천지(人心同天地) - 사람의 마음은 천지와 같고
혈맥사일월(血脈似日月) - 혈맥은 일월처럼 순환된다.
*법강유탄토(法剛柔呑吐) - 호흡은 강하고 유하게 삼키고 뱉어야 하며
신수시응변(身隨時應變) - 운신은 시간과 기회에 변화무쌍하고 (후략)...
*참고로 무비지는 모원의가 1621년에 편찬한 19책 240장으로 구성된 방대한 군사 서적으로
척계광(戚繼光)의 기효신서(紀效新書)와 함께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표준이 된
책이다.
이처럼 강유류는 무겁고 느리며 호흡을 강조하는 중국 남파권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강유류는 가타를 수련할 때 소리내어 호흡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산찐(三戰,삼전)을 강조
하는 것 역시 남권의 영향으로 보인다. 미야기 쵸준의 제자 중 한국인 소네이쥬(조형주, 1907-?)
가 있었고 그와 함께 최영의가 강유류(7단)를 수련하게 되는 것이다.
"야마구치 고겐"
미야기 초준의 제자 중 한사람인 "야마구치 고겐"은 미야기의 강유류를 현대적으로 체계화
시켜 전일본 가라데 강유회의 회장으로 서게 됩니다.
"야마구치 고겐"으로 말할 것 같으면 최총재와는 같은 조선출신의 강유류 선배
조영주 선생의 스승이기도 하며 최영의 총재의 마지막 스승으로 알려진 분입니다.
그리고 희대에 가라데 명인중에 한명이다
세월이 흘러 임종직전 야마구치는 가라테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가말했다.
"가라테는 단순히 싸우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진리를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