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m.dcinside.com/board/napolitan/12672
2008.7.19=대 ==하지==음에 오= 사=은 == 소=하= 여== =람==
2008.7.22
(처음 한 장이 깔끔하게 찢겨있다.)
처음 시체 발견했을 땐 깜짝 놀랐는데.
이젠 시체라도 다시 보고싶다.
다음에 누가 또 오나?
선배님 말씀 잘 들어노라.
먹을 필요, 잘 필요, 씻을 필요, 쌀 필요 없다
계단 밖에 없는데
걍 올라가
그거 말고 없다
심심해서 미칠 것 같고 심심해서 두개골까지 간지러울 때 노트 뒷장 하나하나 넘겨서 아껴서 봐라..
선배님 특제 아재개그 실어놨다
특별히 맥심뺨치는 요염한 그림도 하나 그려놨다.
진짜 대화하고싶은데
될리가 없지
힘내라
정 못 버티겠으면
노트 왼쪽에 꽂아논거 쓰라.
탈출하면 나 애타게 찾고있을 가족한테 연락좀 해주고
-사나이 === 다녀감-
2014.12.29
(날짜가 적힌 뒤 첫 번째, 두 번째 장이 투박하게 찢겨있음.)
(세 번째 장은 깨끗하게 찢겨있음.)이름 :
주소 :
엄마 전화번호 :
아빠 전화번호 :
출신 초, 중, 고교 :
다음에 오시는 분 힘내요.
저는 워낙에 의지박약인 인간이라.
2016.3.19
처음오면 내 시체 보일거야.
노트만 통째로 챙겨서 올라가.
소지품 따로 없었으니 찾지 말고
보기 끔찍할테니 시체 절대로 뒤집어보지 말고 좀 올라가서 뒷쪽 나머지 읽어봐.
먼저 오셨던 분 노트 받았어.
눈도 감겨드렸고.
윗쪽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적어놓으셨던 주소랑 전화번호같은 개인정보는 다 지웠어.
그 전화 받을 사람도 없을거고, 주소도 다 달라졌거든
앞으로 오는 사람도 개인정보 적지말자.
물론 내가 아는 사람들이면 그럴 일 없겠지만 혹여라도 흑심 품은 사람있으면 위험할 거 다 납득되지?
제일 먼저 오늘 날짜 기록해놔.
다음 사람들이 보고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여러모로 도움되는 정보니까.
일단 난 괴이현상 관련 업종에 종사한 적 있음을 밝힐게.
좀더 신뢰할 수 있게.
여긴 간단히 설명해서 네 의지력을 시험하는 곳이야.
따라서 제일 중요한건 네 멘탈이야.
제발 걱정하지 말고 믿고 올라가.
괴이현상엔 대체적으로 규칙서가 배포되지만.. 여기같은 경우는 아냐.
탈출 방법이 너무 직관적이고 간단한 경우 따로 인력을 들여 규칙서를 작성하지 않아.
규칙서 작성 인원도 여길 탈출해야하는건 마찬가지일테니 말이지.
먼저 오셨던 분도 얘기하셨지만, 여기선 의식주가 필요없어.
처음에 알몸으로 나타나서 조금 놀랐지?
누구 만날 일도 없으니까 신경쓸 필요 없고.
그냥 지금 보이는 죄다 백색인 계단만 쭉 나올거야.
식욕, 수면욕, 배변욕 다 안 느껴지는게 정상이지만
처음 몇 달은 습관처럼 느껴질 거야.
식욕은 뭐 먹는다고 생각하고 우물우물하다가 삼키는 시늉 해봐.
최대한 진짜같이.
다 먹고나선 "아! 배부르다. 잘 먹었습니다." 이렇게 말해봐.
괜히 그런 말하면 부끄러울 거 알지만, 어차피 아무도 없잖아.
배도 안고픈데 계속 배고프다고 느끼는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게되면 어쩔 수 없을거야.
추가 + 맨 뒤에서 3번째 장에 배고플때 상상하기 좋은 음식들 적어놨어.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수면욕은 그냥 푹 자고 일어나.
어차피 계단에 누워서 자야되니 불편해서 잠이 안 올거야.
물론 실제로 피곤한건 아닐거고, 실제로 자는 것도 아니야.
낮잠 잔다고 생각해.
좀 애매한게 성욕이거든, 솔직히 막 느낌이 오는 그런 경우는 없는데
스트레스 때문에 말초적 자극이 고파질 수 있어.
이것도 결국 시간지나면 익숙해지겠지만, 처음 몇 주 정도는 좀 힘들거야.
그냥 알아서 처리해.
대신, 노트로 뒤처리를 한다던지 그런 생각만은 참아줘.
장수가 꽤 많이 남기야 했지만 다음에 또 노트를 들고오는 사람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까.. 아껴써야지.
추가 + 먼저 오신 삼촌이 그려놓으신거.. 굳이 볼 생각 하진 마.
색다른 자극이 필요하다면 찾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 같긴한데..
맞다, 시간흐름은 걱정할 필요 없어.
여기랑 밖이랑 달라.
최대한 느긋하게, 놀러온 것처럼 지내.
이정도면 도움될만한 건 다 적어놓은거 같다.
애초에 별로 위험한 현상은 아니니까.
제일 중요한 건 멘탈이다! 세 번 크게 읽어봐.
꼭 명심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올 때마다 탈출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해야해
네가 모두 초연해질 때쯤, 의지력이 다 고갈돼서 그냥 다리 움직이는데로 올라가는 것 같을 때쯤 탈출할 수 있어.
이거랑 비슷한 현상들 살아나오신 분들보면 그래.
힘내.
계단 만 개 올라갈 때마다 다음장에 작대기 하나 그어놓을게.
목표라고 생각하고 가끔씩 체크해봐.
(다음장은 찢겨있다.)
정말정말 못 참겠다 싶을 때... 가족들 친구들 얼굴 다 한번씩 떠올리고, 제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나 책, 게임 생각하고..
학생 때 즐거웠던 기억들, 가족이랑 여행가는 기억들 다 한 번씩 떠올려봐.
나가면 먹고싶은 음식, 가고싶은 휴양지, 보고싶은 영화도 떠올려보고..
그렇게 속편을 바라던 그 영화는 어떻게 됐을까? 하는 것들.
다음장은 넘기지 마
나 믿지?
칼날 부분만 빼서 노트 앞표지 사이에 넣어놨어.
돌아가는 것보다도 남아있는게 너무나도 힘들다면..
이해해.
다음에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올진 모르겠지만
누가 됐든 너무 고통스러워하지 않으면 좋겠어.
"2024.2.8"
나는 노트에 날짜를 적었었다.
날짜가 맞는지는 좀 헷갈린다.
분명 유튜브나 좀 보다가 잠들었던 거 같은데.
병원같은 창백한 흰색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공간에서 눈을 떴다.
멍한 상태로 주변을 살펴보는데,
눈을 뜨자마자 옆에는 뭔가 익숙한 알몸의 사람만 엎드려있어서, 정말 납치라도 당했다고 생각했다.
툭툭 건드려봐도 일어나지 않아 의문을 가질 때쯤, 손목에서 흘린 피가 계단을 꽉 채우고 아래로 흘러내렸다는 것을 발견했다.
새파랗게 질린 시체를 보기 두려워서 계단 위로 뛰어 올라갔다.
머리가 식을 때까지 한참을 올라갔지만, 하얀 나선형 계단만이 반복됐다.
시체를 좀 살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발견하지 못했던 가죽 표지의 노트가 눈에 띄었다.
기시감 때문에 궁금증이 들어, 엎드려있는 시체의 얼굴을 확인할까도 고민했다.
결국 확인하진 못했다.
흰 계단 외에 정말 아무것도 없는 미칠 것 같은 공간에선 노트를 신뢰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자잘한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여러 군데 지워지고 찢겨진 부분이 있거나, 탈출 방법이 구체적이지 않은게 좀 미심쩍긴 하지만.
이미 죽은 사람들이 나를 해치려할 필요는 없으니까.
내 앞에 있었던 사람은 꼼꼼하게도 주의사항을 적어놓았지만, 한가지 빼먹은게 있었다.
펜에 잉크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날짜를 쓰고 무언가 더 적을까 고민했지만 앞으로 한 줄 정도밖에 남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후로는 계속 숨막히게 지루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두 번째 오셨던 아저씨가 남겨놓은 아재개그가 도움이 되긴했다.
별것 아닌데 참 많이 웃었다.
그래도 400번쯤 읽어보니 슬슬 질리더라.
내 상황도 우스워서 많이 웃었다.
배고파서 미칠 것 같을 때, 따끈따끈한 흰 쌀밥에 스팸을 잔뜩 올려 김치찌게와 먹는 상상을 했다.
계단을 오르는 것 자체는 힘들지 않았다.
종종 전력질주도 하고, 거꾸로 올라가기도 하고.
네 발로 올라가다가 기어서 올라가다가.
피곤하면 잠시 누웠다.
육체는 피곤하지 않았다.
정신이 피곤했다.
천장에는, 하얀 계단이 있었다.
바닥에는, 하얀 계단이 있었다.
내 옆에도 앞에도 뒤에도 죄다 특색없는 계단 뿐이었다.
미칠 것 같다.
이렇게 쌓아올리려면 현실에선 얼마나 높을까?
적어도 지구에선 불가능하겠지.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여기에 도착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했다.
계단을 세다 까먹고 세다 까먹었지만 당연히 나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먼저 왔던 사람의 말을 믿어보면 계단의 갯수는 상관없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오래 올라갔다'고 생각하는지가 중요하겠지.
먼저 왔던 사람들은 진짜 죽은걸까?
시체가 남아있긴 하지만, 자살이 아니라 탈출해서 몸만 남은 것이라면?
혹시 초탈한다는게 다 포기하길 선택하는 것은 아닐까?
가끔 노트를 아래로 던져버리는 상상도 한다.
내 다음에 오는 사람은 아무런 지침도 없이 이 길고 긴 계단을 올라가야하는 것이다.
그 땐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을테니, 더 빨리 자살하지 않을까.
몇 년이나 지났을까?
적어도 3년은 지난 것 같은데.
5년?
어쩌면 10년이 지났을지도 모른다.
밖이랑 시간이 다르다고 하니 노트의 날짜도 그닥 참고가 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내 선임도 그닥 신뢰도가 높진 않다.
뭔가 미심쩍은 걸 참 많이 적어놨단 말이지.
먼저 왔던 사람들은 정말 탈출하지 못한건가?
만약 내가 괜한 두려움으로.. 오히려 정답을 놓치고 있다면.
그런 생각이 점점 나를 좀먹어가는게 느껴진다.
아니, 오히려 나를 돕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정말 미칠 것 같은데, 오히려 선택할 수 있다는게 위안이 되고 있으니.
나는 결국 결심했다.
내려가보자고.
그 시체가 남아있는지, 남아있다면 어떻게 됐는지.
내 앞사람보다도 먼저 왔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상태인지.
탈출한다는 목적은 너무 희미해졌기에, 무언가 다른 추구할만한게 필요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올라왔던 수많은 계단들을 다시 내려가는 건 두려웠다.
한 걸음만 더 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는데, 내려가버리는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수천번은 해봤다.
한 계단만 더.. 저기 보이는 저 계단까지만 더 올라가보자고.
너무 많이 한 나머지 더 이상 아무런 동기부여도 되지 못하는 것이다.
한참을 내려갔다.
가끔 내 머리카락이 떨어져있는것이나, 내 '흔적'이 남아있는 걸 발견했다.
처음 방향을 틀었을 땐 내려갈수록 두려워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내려갈수록 상쾌해졌다.
명확한 목표가 있다는 건 참 축복이었다.
다시 올라가는 건, 뭐 그 때 생각해야지.
무한한 시간에 다시 무한한 시간을 더한들 결국 무한한 것은 마찬가지이리라.
결국, 나는 내가 처음 발걸음을 한 그 장소에 도착했다.
시체는 그대로 있었다.
나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드디어 완전히 실성한건가?
시체는..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양 손목에서 흐른 피가 굳은채로, 차가운 바닥에 엎드린채로.
얼굴을 확인해야할까?
만약 유명한 연쇄살인범이라도 된다면, 좀 배신감이 느껴질 것 같다.
그렇게 친절하고 세심한 필기가 후배에 대한 어떤 기만이었다면..
이제와선 상관없겠지만.
결국 난 얼굴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래야 탈출했을 때 할 일에 한 가지라도 더 추가될테니까.
가족 찾아주기.
얼굴만 보고 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가족 찾기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사실 첫 날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무시해왔던거지.
그 때 실종된 친누나.
협회는 업무상 과실이라고 전해왔다.
메모의 의심쩍은 부분들이 모두 이해갔다.
모두 다음 사람이 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란 거짓말이었다.
탈출할 수 있다는 건 아마 거짓말일 것이다.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것도, 실종된 날짜와 비슷하게 적혀있는걸 보면 거짓말일 확률이 높다.
가장 마지막에 남긴 메모조차도 고통받지 않기를 원한 말이었다.
노트에 남아있는 첫 번째 메모가 떠올랐다.
볼펜으로 박박 그어놔서 알아볼 수 있는 건 적었다.
음.. 음이 들어갈 단어는 맥락 상 다음 정도밖에 없다.
람이 들어간다면 무조건 사람일테고.
오 뒤에 올 말은 아마 '는' 일 것이다.
다음에 오는.. 사람.
소..하
소중하게.
다음에 오는 사람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그 윗 문장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그 문장을 적을 것이다.
이건 내 다음 사람에게 전하는 충고이자,
내 결의의 의미이다.
절대 자살하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