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님께서는 저출산 문제를 화두로 꺼내며 “페미니즘이라는 게 너무 정치적으로 악용돼 남녀 간 건전한 교제도 정서적으로 막는 역할을 한다”고 말씀하셨더군요. 해당 문단을 읽던 제 입가에는 조소 비스름한 것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습니다. 부계 사회의 공고한 기득권 핵심에 놓인 이의 입장에서 ‘페미니즘’을 어찌 받아들이고 계시는지 너무나 투명하게 잘 느껴져서였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인터넷에 한창 밈(Meme)처럼 떠돌던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 얼핏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뭐지? 마블처럼 무한 확장되는 세계관 같은 건가? 이번엔 ‘대통령 예비 후보가 허락한 페미니즘’ 정도가 되려나요?
가타부타 덧붙이기 전에 우선, 후보님께 묻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미디어에 데이트 폭력, 강간, 살해와 관련된 기사가 게재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주된 피해자 성별은 어느 쪽인지 말입니다. 이별에 앞서 ‘안전이별’을 운운하는 쪽은요? 친밀한 관계의 누군가에 의한 살인ㆍ살인미수 피해자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2009년부터 2020년까지 11년간 지인 남성이 살해한 여성은 975명에 달하며, 살인 미수 1810명, 주변인 포함 2229명이라는 통계에는 무어라 답하실 수 있을까요?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발생한 살인 범죄(미수 포함) 847건 중 피해자와 범죄자가 연인 관계였던 경우는 총 64건이었습니다. 365일을 64로 나누면 약 5.7일로 1년 중 6일에 한 번꼴은 데이트 살인이 발생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해서는요? 피해자 성별 추측이 아직도 오리무중인가요? 저는 후보님께 애당초 대한민국 사회가 남성과 여성 사이에 ‘건전한’ 교제가 상식적으로 가능한 판이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신변의 안전함’ 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교제의 장에서 ‘건전함’을 먼저 추구하신다고요?
여기서 남성과 여성의 교제가 ‘더’ 불건전해지려면 아마 페미니즘 이슈가 불거진 후 데이트 폭력 살해 등의 사건 사례에 여성 가해자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는 자료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누군가에겐 ‘정신병’이라 불리는 페미니즘의 도래 이후 증가한 것은 여성 범죄자 수치가 아니었습니다. 부부 강간, 가정 폭력, 직장 내 성희롱 등이 법적으로 범죄로 규정된 배경에는 가부장제가 아니라 페미니즘이 있었습니다. 전에는 사적인 영역의 일이라 치부되던 일들을 머리채를 잡고 양지로 끌어내 법정으로 끌고 간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죠. 강간 문화가 만연한 사회(미디어 내 여성 성 상품화 등)에 대해 불편의 목소리를 내고, 여성 낙태권에 대해 제창하고, ‘No means No’ ‘My body My choice’라는 문구를 외치며 목소리를 낸 것도 또한 이 미친 페미니스트 작자들의 성과이고요. 가정폭력, 맨스플레인, 강간 문화, 성적 권리 의식 등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여성이 매일 접하는 불편함과 불합리함을 재정의하고 그런 세상을 바꿔나갈 방법을 열고자 ‘브래지어 끈 풀고’ ‘머리채 풀고’ 난리 치는 게 언급하신 불건전한 페미니스트들의 업적이랍니다. 어떤가요? 이들로 인해 세상은 조금 더 불건전해졌나요? 아니, 사실 아직도 우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평형이 맞춰지는 과도기의 한가운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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