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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 영국은 한 때 인류사 최대의 강역을 자랑하는 제국을 건설했다.
[ 식민제국 인구: 영국 식민지가 프랑스 식민지 인구 약 10배 수준 ]
대영제국은 단순한 식민제국을 뛰어넘어 역사상 있던 어떤 식민제국보다도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했으며,
그렇기에 스페인 제국에 처음 붙여졌던 해가 지지않은 나라라는 별칭은 오히려 대영제국을 형용하는 수사가 되었고.
그리고 이런 대영제국은 Heart of Iron 등의 게임의 디시전으로 유명한 제국연방 이란 대영제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정치적 프로젝트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제국연방이란 바로 영국과 인종, 문화적으로 유사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등 소위 백인 식민지를 단순 본국 - 부속 식민지 관계에서 식민지인들이 본국에 정치적 대표를 보내게 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거대한 영국을 만들자는것.
이는 저명 문학가인 로버트 실리의 저작인 " 영국의 확장 "에서 언급된 " 미국이 할 수 있다면 영국이 하지 못할게 뭐냐 " 는 문구에서 시작됨.
그리고 그는 ' 우리가 백인 식민지들을 본국화 한다면 미래에도 실체를 가진 지정학적 세력중 하나로 군림할것이나, 그렇지 못한다면 유럽대륙의 조그만 섬으로 회귀 ' 할 것이라 예견함.
[ 1885년 나폴레옹과 비교하는 영국의 쇠락에 대한 만평 ]
이는 즉각 대중의 강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음. 그 이전에 더 거대한 영국등의 저작에서 이런 제안이 없었던것은 아니지만 이 때 하필 강렬한 대중적 호응을 불러일으켰던것은 영국의 불안감에 기인.
1850-60년대 명실상부 그 누구도 넘볼수 없던 대영제국의 지위와 산업에서의 우위는 로버트 실리가 출판하던 시점인 1883년에서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음.
[ 빠르게 영국의 공업역량을 따라잡고 1900년엔 추월해버린 미국 ]
철도, 석유 산업등에서 이미 영국의 그것을 추월한 미국과 내연기관등에서 영국을 앞서나간 독일까지 식민지의 크기는 비록 커져가고 있었지만 본국 경제력, 공업력은 따라잡히고 있던 상황.
[ 세계 철강 생산량 점유율: 1850년대 고점 찍은 영국이 미국에게 그 자리를 내주기 시작 ]
특히 의류와 석탄을 중심으로 한 경공업에서는 영국이 우위였지만 석유, 화학, 철강, 자동차등의 중공업에서는 미국과 독일이 더 우위였음.
이는 상대적으로 공장 규모가 작았고 아직 귀족이 남아있던 영국보다, 그런 제약 없이 극한의 자본주의를 달리며 현대적 대기업과 대규모 공장의 시초가 된 미국에게 더더욱 밀리기 시작.
[ 1860 - 1913 년 열강들 gdp 변화 ]
상황이 이런 상황이다보니 정치인 같은 지배계층뿐 아니라 신문을 탐독하는 일반 대중들조차 영국의 상대적 쇠락에 대해서 인지하게 되었고.
게다가 러시아는 프랑스의 차관을 바탕으로 산업화를 시작하며 그 거대한 인구로 미국과 함께 세계 최고 성장률을 보여줌.
이런 미국, 독일, 러시아란 후발주자에게 따라잡히는 상황에 대한 반격으로 국력에서 가장 중요한 인구와 영토 즉 국가 체급적으로 보다 더 거대한 영국이 필요하다고 절감하고 있던것.
게다가 영국이란 뿌리에 대한 강한 정체성과 호응을 보이던 백인 식민지들에서는 더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제국 회담까지 결성되었던 이 영국 최대의 정치적 프로젝트는 좌절되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크게 세가지로 압축될수 있음. 첫번째로 유력정치인들 상당수가 제국연방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았음.
회담 사진 중심에 있는 네빌 체임벌린의 아버지인 동시에 버밍엄의 유력인사였던 조셉 체임벌린은 식민성을 진두 지휘하며 정기 제국 회담까지 개최하는 성과를 거두긴 했음.
그리고 알프레드 밀러나 로즈베리 같은 정치인들도 " 영국의 쇠락을 막을 유일한 길 " 로서 이를 지지하기도 했고.
하지만 자유당의 수장이던 글래드스턴 그리고 보수당의 수장이던 로버트 게스코인 세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제국연방을 회의적으로 보았음.
글래드스턴은 대영제국과 식민지를 " 세계에 문명과 도덕을 퍼뜨리는 자유 제국 " 으로서 보았지. 앵글로색슨의 쇠락을 막는 도구로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로버트 게스코인세실은 파머스턴 자작 그 이상으로 제국주의를 신봉하는 제국주의자이자 대영제국의 우월성을 믿고 있던 사람이었으나 다른 이유로 반대함.
[ 1886 년 대영제국 ]
바로 제국연방은 너무 현실성이 없다는것. 그의 주장은 한마디로 요약됨. "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으로 떨어진 영국과 캐나다 호주등의 이해관계를 대체 어떻게 조율할거냐? "
지금 미국과 동맹국들 사이에서도 불협화음이 터지는거처럼 각국의 이해관계는 처한 위치와 환경에 따라 달라짐.
본국과 식민지 관계라면 식민지의 이익을 본국을 위해 기꺼이 희생시키는 행위가 가능할지 모으지만, 식민지가 본국 의회에 대표를 보내 정치의 행방을 결정지을수 있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는것.
[ 대영제국의 무역로 ]
그리고 이런 이해관계 문제는 곧 두번째 이유로 이어짐. 대영제국이란 식민제국의 성격과 책임분담 문제임.
대영제국 하면 그냥 무한 정복과 땅따먹기 정도로 보는데 제국의 근본은 언제까지나 상업적 즉 본국에 가져다 줄 경제적 이익이었음.
[ 대영제국 영토 면적 변화 ]
실제로 대영제국 전성기에 인도, 캐나다, 호주등의 해양로를 위협할 유럽 열강을 저지가능하던 1840-1870년대까진 영토변화가 거의 없음.
그래서 그때까지만 해도 면적으로는 러시아가 세계 최대의 국가였고, 영국의 쇠락이 확실해지며 타 열강의 국력 증가와 세력확장을 막을수 없게된 1880년대 이후부터 비로소 아프리카 분할등 식민지의 급격한 확장이 이루어짐.
[ 남아공 케이프타운 - 이집트 카이로 철도 ]
즉 타국이 세력 확장 하고 국력으로 더 커지기 전에 빨리 여러 교두보를 마련하고 영토를 확장해 타국이 본국의 주요 식민지, 특히 인도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게 정책이었음.
그리고 이런 경제적 실익이 아닌 정치적 이해관계로 확장된 식민지였기에 1880년대 이후의 식민지들 즉 아프리카 식민지 대부분은 적자를 면치 못함.
[ 영국 의회가 이런 그림이 된다는 것 ]
그러면 궁금해할거임. ' 근데 이거랑 제국연방이랑 대체 뭔 상관임? ' 상관이 있음. 왜냐면 제국연방의 골자는 ' 행정은 백인 식민지가 알아서 하고 외교랑 국방은 본국이 전적으로 책임진다 ' 니까.
물론 그 전에도 어느정도 그렇긴 했음. 하지만 제국연방이 되면 이들은 사실상 본국이나 마찬가지고 정치적 발언권을 가지게 됨.
[ 영국 본국은 1인당으로도 캐나다 호주의 거의 3배의 국방비를 지출했고, 영국 + 백인 식민지 국방비의 88% 를 본국이 지출. ]
이미 국방비 분담을 본국이 불균형할정도로 많이 지던 상황에서 본국 군대까지 영국제도의 국민들 마음대로 못하게 됨.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 있는 식민지 주민들도 영국 정치에 개입이 가능해지니까.
다시 말해 2차대전때 호주가 일본의 위협에 헬프를 쳤음에도 영국이 독일을 막기 위해 유럽으로 왕립해군을 집중시킨 그런 행위를 못하게 된 다는거임.
[ 대영제국의 안보는 왕립해군이 책임지나, 백인 식민지중 1위인 캐나다가 미국에게 공격받을 경우 본국이 할 수 있는건 별로 없고 캐나다가 알아서 해야된다는 영국 국방 위원회 결론 ]
하여튼, 본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제국의 안전을 위해 영국 제도 국민의 세금으로 국방비를 내고 그리고 그 국방비로 꾸려지는 영국 해군조차 본국이 마음대로 못하고 백인 식민지들 안보사정에 따라 분할해야 된다는 소리.
[ 인구 비례로 본 영국 본국과 백인 식민지들 ]
그리고 이런 본국과 식민지의 상충된 이해관계가 곧 결정타를 날릴 세번째 이유로 연결됨. 영국 본국민들의 지갑사정. 뭔 말이냐 싶겠지만 앞서 영국이 제국을 건설한 이유는 영국의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 말한걸 기억할거임.
그런데 당시 백인 식민지라해도 인구는 1900년대조차 캐나다 500만 호주 300만으로 대규모 제조업 기반도 없었고 본국과의 무역에 의존할수 밖에 없는 체계였음.
즉 얘들 산업이란게 본국에 농축산물 팔아 먹는거였음. 그런데 호주 다수 지역은 사막이였고 영국과 거리도 먼데다 캐나다는 너무 추웠음.
그렇기에 농학이 발달하며 냉기 저항성을 갖춘 밀 품종이 나오기전 까지는 기후도 좋고 토질도 좋은데다 평야도 더 큰 미국 밀 대비 가격경쟁력이 딸렸음.
그리고 거리도 더 가깝고, 팜파스 분지라는 가축 기르는데 천혜의 옥토를 가진 아르헨티나 소고기만한 경쟁력을 호주등은 갖추기 힘들었음.
헌데, 대영제국은 러시아나 독일등의 육상제국이 아니라, 상업제국으로 무역과 해로로 이어진 해양제국임.
그래서 이 연결성을 오래토록 유지하는 방법으로 고안된게 영국과 식민지간의 무역특혜와 외국 상품에 대한 강력한 관세 소위 제국 특혜란 시스템이었음.
하지만, 이는 영국 국민의 강력한 반대를 받고 지지부진해짐. 왜? 간단한 이유임.
자유 무역으로 가면 더 질 좋은 외국 식품을 더 싸게 사먹을수 있는데 굳이 돈 더줘가며 단순히 그들이 영국 식민지란 이유 하나만으로 비싸게 먹기 싫다는거임.
비록 나중에 대공황 터진후 Imperial Preference를 도입하지만, 이미 1차대전때 청년들 수십만이 갈리며 백인 식민지들도 영국 본국의 연장선상에서 벗어나 그들 나름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됨.
게다가 미국의 국력이 영국조차 감당하기 힘들정도로 커지면서, 사실상 경제적으로는 영국보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미국에 더 가까워지기 시작한 캐나다.
[ 프린스 오브 웨일즈 격침 ]
아예 네덜란드 후손인 보어계가 다수인 남아공부터 해서 그나마 마지막까지 본국에 충성심을 보였으나 2차대전때 영국의 동양함대가 일본에게 침몰당하고 무력함을 보여주자 자기라도 살아야 된다는 마인드로 친미노선으로 튼 호주 뉴질랜드까지.
한 때 대영제국을 들썩이게 했으며 영국의 쇠락을 막고 장기적으로 세계에서 여전히 지정학적 존재감을 유지시킬 방안으로 고안된 제국연방 프로젝트는 이렇게 종말을 맞음.
어쩌면 로버트 실리가 말했듯 " 우리는 정신 없이 세계의 절반을 정복했다 " 라는 말대로 확장에의 명분과 철학의 부재 아니면 바다와 무역만으로 연결된 제국이라는 취약성으로 인해 유지가 힘들었던건 필연이었을지도 모르는것이고.
[ 캘리포니아보다 작아진 영국의 gdp ]
그렇게 대영제국은 그의 예견대로 다시 유럽의 섬나라로 돌아가 미국-소련 그리고 지금은 미국-중국이 세계를 논하는것을 그저 지켜보고 있음.
3줄 요약 :
1. 영국의 경제력 및 산업이 미국 독일 등에 따라잡히자 본국 체급을 키울 목적으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등 백인 식민지를 본국화 시키는 제국연방을 고안
2. 그러나 제국연방은 유력 정치인들이 반대했을뿐 아니라, 지리적 위치에 따른 이해관계 충돌과 국방비 분담 문제와 보호무역에 따른 영국 본국 국민들의 비싼 식물가 강요등에 의해 좌초.
3. 결국 로버트 실리의 예견대로 영국은 제국이 해체되고 다시 유럽의 작은 섬나라로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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