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야마무로 타다요시는 ‘동화가’로 ‘신도 프로덕션’에 들어가며 애니메이터로서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고, 이 때 그는 회사의 창립자이자 선배 애니메이터인 ‘신도 미츠오’의 밑에서 직속으로 일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당시 ‘토리야마 아키라’의 ‘닥터 슬럼프’에 참여한 야마무로는 그로부터 고작 3년도 안 된 ‘드래곤볼’이 방영하던 시기에 벌써 ‘원화가’로 승급되는데요. 그러나 ‘작화 감독’이던 신도 미츠오는 원화가들의 원화들을 자기 스타일대로 깐깐하게 수정해버리기로 유명했으며 이것은 야마무로가 그린 그림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덕분에 당시로선 야마무로 타다요시라는 애니메이터의 스타일도, 역량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었죠.
야마무로가 본격적으로 빛나기 시작한 때는 ‘드래곤볼 Z’ 122화부터였습니다. 신도가 일선에서 물러나고 회사 경영에 집중하게 되며 야마무로는 ‘작화 감독’으로 올라서게 되었고 드디어 팬들은 야마무로의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었죠. 이 시기의 야마무로는 당시 시리즈의 ‘총작화 감독’이자 ‘캐릭터 디자이너’였던 ‘마에다 미노루’의 그것과 유사한 느낌을 풍겼습니다. 차이를 꼽으라고 한다면, 귀의 모양과 눈의 크기 정도였는데요.
셀 편으로 접어들고 야마무로는 진화하기 시작하며 마에다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납니다. 그의 스타일은 당시로선 상당히 깔끔하고 새로웠으며 이것은 여전히 마에다의 스타일을 따르던 다른 애니메이터들과는 크게 대조되었죠.
이런 야마무로는 토에이의 눈을 사로잡았고 마에다가 물러난 Z 8기 극장판 ‘전설의 초사이어인이 나타나다’의 총작화 감독 겸 캐릭터 디자이너를 맡게 됩니다. 마에다의 둥그런 귀와 얼굴형, 두꺼운 눈썹(위)은 야마무로의 뾰족한 귀, 갸름한 얼굴형, 그리고 가늘은 눈썹(아래)으로 대체돼죠. 이를 시작으로 야마무로는 앞으로 모든 Z 극장판의 총작화 감독과 캐릭터 디자이너를 역임합니다.
한편 애니판의 마인부우 편이 시작하고 야마무로는 232화(오공 vs 마인 베지터)를 비롯한 중요 회차들의 작화 감독으로 투입되었습니다. 참고로 마인부우 편의 캐릭터 디자이너는 ‘나카츠루 카츠요시’였으나 야마무로의 초사이어인 손오공의 극장판 설정화가 애니에 쓰이기도 했죠. 아쉽게도 이 때의 야마무로는 자신의 선배였던 신도 미츠오처럼 원화가들의 원화를 자기 스타일대로 엄격하게 수정하기 시작했고 이는 야마무로의 원화와 야마무로의 수정을 거친 다른 애니메이터들의 원화의 차이점을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점은 훗날 야마무로에 대한 상당한 비판거리로 떠오르게 됩니다.
Z가 끝난 후 ‘드래곤볼 GT’ 방영이 결정되었고 야마무로는 신도 프로덕션을 떠나 토에이의 전속 애니메이터로 들어갑니다. GT의 캐릭터 디자이너는 나카츠루가 담당하였고 야마무로는 그냥 맡는 회차들의 작화 감독이었는데요. 이 때부터 야마무로의 스타일이 점점 변하기 시작합니다. 캐릭터들의 얼굴형이 둥글어지고 원을 그리던 광대뼈 쪽의 명암은 그냥 일자로 뻗으며 둥근 얼굴형을 더더욱 두드러지게 했습니다.
또한 이 시기의 야마무로는 나카츠루에게 영향을 받아 캐릭터들의 얼굴에 물광을 넣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들로 야마무로는 점점 자신의 장점을 잃어가죠.
GT가 끝난 후 야마무로는 원피스를 비롯한 다른 애니들에도 많이 참여했지만 드래곤볼과는 여전히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고 2003년, ‘드래곤볼 Z 2’ 게임 오프닝의 작화 감독을 맡았는데요. 팬들이 야마무로가 예전의 그 야마무로가 아니라는 점을 눈치채기 시작한 건 바로 이 때입니다. 캐릭터들의 피부 톤은 조잡하게 무려 네 층이나 되며 오일을 뒤집어 쓴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얼굴의 지나친 광택은 드래곤볼 그 어떤 시리즈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낯선 모습이었습니다. 이건 Z 3 오프닝에서도 마찬가지였죠.
다행히도 야마무로는 점프 40주년 기념판인 ‘안녕! 돌아온 손오공과 동료들!!’에서 어느 정도의 발전을 보입니다. 캐릭터들의 피부 톤은 둘로 줄어들었고 작화도 많이 안정된 모습이었는데요.
그러나 ‘드래곤볼 카이’가 방영되고 야마무로는 다시 퇴보하길 선택합니다. 그가 담당한 아트들을 보면 위에서 언급된 단점들이 다 존재하고 캐릭터들의 포즈는 전부 딱딱하고 어색한 모습으로 과거 최고였던 흔적은 단 한 구석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는 ‘사이어인 전멸 계획’ 리메이크판에서도 이어졌고 야마무로 특유의 지나친 원화 수정으로 인해 어떤 애니메이터가 담당한 파트이건, 야마무로의 스타일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게 야마무로의 전성기 때라면 모를까, 퇴보한 스타일이면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2013년, 드래곤볼이 ‘신들의 전쟁’으로 돌아왔고 야마무로는 당연히 총작화 감독 겸 캐릭터 디자이너를 맡았습니다. 팬들은 장족의 발전이 있기를 바랬지만, 오히려 이것은 야마무로의 문제점들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는데요. ‘카메다 요시미치’라는 젊고 재능있는 애니메이터는 당장 예고편만을 보고 “드래곤볼에 무슨 일이 생긴 거냐. 마에다 미노루 시절의 디자인을 돌려달라”라는 글을 트위터에 남기기까지 했습니다. 동업자에게서 이러한 소리를 들었다는 소리는 그만큼 아마무로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하죠.
이후 야마무로는 2014년, 토에이와 마블의 합동작품인 ‘디스크 워즈: 어벤저스’의 캐릭터 디자이너를 맡았고 나중에 ‘타테 나오키’로 대체됩니다. 이 때 야마무로가 만난 상당수의 애니메이터들이 나중에 ‘드래곤볼 슈퍼’에 합류하게 되는데, ‘키타노 유키히로,’ ‘야시마 요시타카,’ ‘이시카와 오사무’ 등이 그러합니다.
이 다음엔 ‘부활의 F’였는데요. 이 때 야마무로는 총작화 감독과 캐릭터 디자이너 뿐만이 아니라 살면서 처음으로 총괄 감독과 콘티 담당까지 역임하게 되었습니다. ‘타카하시 유야,’ ‘와타나베 코우다이,’ ‘하야시 유키’ 같은 실력있는 애니메이터들이 작품에 참여해 분전하였으나 문제는 야마무로였습니다. 콘티를 처음 담당한 야마무로는 엉성한 카메라 구도 배치로 영화의 스케일과 긴장감을 죽이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낮은 퀄리티로 큰 혹평을 받은 CG 역시 감독인 야마무로의 선택이었습니다.
부활의 F에 참여한, 드래곤볼과 Z에 기여하며 과거 신인 시절을 보냈던 실력파 애니메이터인 ‘에구치 히사시’는 아예 공개적으로 야마무로를 저격합니다. 에구치가 말하기를, 자신은 분명 원하는 마음대로, 심지어 콘티를 무시하면서 그리더라도 괜찮다는 약속을 받고 합류했었으나 자신의 파트가 전부 야마무로에 의해 다시 그려져있었다고 폭로해버렸고 아예 야마무로를 ‘한 프랜차이즈에만 머물기를 고집하는, 성장이라고는 전혀 없는 놈’이라고 비난하기에 이릅니다. 또한 야마무로는 당연히 부활의 F 전체의 작화들을 자신의 스타일대로 수정해버렸습니다.
부활의 F 다음엔 당연히 드래곤볼 슈퍼가 나왔고 야마무로의 작화체도 당연히 똑같았습니다. 이걸로 “왜 Z와 슈퍼는 그림체가 다른 거냐”고 묻는 일반 팬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죠. Z와 슈퍼가 다른 이유는 당연히 시리즈의 캐릭터 디자이너인 야마무로의 탓이고 오히려 나중에 타카하시 유야가 과거 야마무로의 스타일을 재현해내자 모든 시청자들이 환호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드래곤볼 슈퍼: 브로리’의 스탭진에서 아예 제외되었고 8분짜리 분량인 ‘슈퍼 드래곤볼 히어로즈’ 홍보 애니를 담당하게 되는데요. 재밌게도 전성기 야마무로의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는 타카하시는 드래곤볼 구력이 얼마 되지 않음에도 브로리 극장판의 파트별 작화 감독에 선정되었습니다.
야마무로의 스타일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과거보다 둥그런 얼굴형, 얼굴에 입체감을 주지 못하는 명암, 표현력에 한계를 주는 직선 눈매, 얼굴에 눈부신 물광, 코 옆에 다른 공간이 뚫려있는 듯한 넓은 그림자, 갑빠는 커녕 달랑 뼈 하나만 보이는 흉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게 예전과는 좋지 않은 쪽으로 바뀌어버렸죠.
현재 팬들에게 제일 난감한 점은 지금의 야마무로 타다요시라는 아티스트가 대체 어느 수준인 건지에 대해 확언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슈퍼를 보면, 분명 어떤 때엔 작화가 그래도 좋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나 어떤 때엔 얼굴이나 비율이 엉망인 장면이 보이고, 어떤 때엔 좋은 콘티를 제출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때엔 콘티가 상당히 별로입니다. 이러한 기복이 팬들이 야마무로를 비판하게 만드는 요인인 것이고 한 프랜차이즈의 전설이 이런 식으로 추락하는 모습은 팬으로서 안타깝기만 합니다. 야마무로는 분명 자기 일에 열성적이고 여전히 원작자 토리야마 다음 가는 드래곤볼의 얼굴마담이죠. 당장 애니가 나중에 돌아오면 그가 다시 자리를 꿰찰 수도 있습니다. 야마무로가 과연 미래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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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무로 관련 글은 예전에도 쓴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카페에 긴 글을 처음 써본 거라 경황없이 깜빡한 부분들이 꽤 있어서 마음에 좀 걸렸었습니다. 마침 시간도 나서 휴대폰으로 한 번 다시 해봤네요. 최근 몸이 좀 안 좋아져서 당분간은 카페엔 못 들어올 것 같기도 하고요. 써야할 글들이 아직 많은데 말이죠. 나중에 다시 뵈러 오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