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8일 국토순례의 일환으로 예전에 상업의 중심지였던 안성시를 다녀왔습니다.
안성맞춤박물관을 방문해 전시관을 둘러보다가 안성시의 변천 과정에 대한 게시물을
열람하다가 삼남三南[충청도와 전라도와 경상도의 총칭]으로 가는 길목에서
요충지였던 안성과 관련된 ‘공동체의 고마움: 호국정신護國精神’도 새롭게 알게 되었네요.
호국의 달인 6월을 맞이해 나라공동체의 고마움을 함께 새기고자 소개를 드립니다.
군더더기: 제가 어렸을 때 매년 정초가 되면 아버님으로부터 우리의 본관(本貫)은 죽산(竹山)이고
고려 시대에 선조 가운데 박서朴犀 장군께서 몽고의 침입 때 귀주성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는 일화를 늘 들었었습니다.
그러다 이번 박물관의 게시물을 보고 반갑기도 해서 귀경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며
선조들께서 ‘온몸 던져 일군 나라공동체’의 고마움에 대해 거듭 깊이 살피게 되었네요.
2022년 6월 3일 어려움이 없는 곳[無難軒]에서 거사 법경法境 합장
공동체의 고마움:
안성 땅의 호국정신護國精神
안성은 호국의 고장으로 고려시대에는 몽고, 홍건적 그리고 왜구의 침입을 막아내었다.
몽고의 침입 때는 박서 장군이 귀주성龜州城 전투에서, 송문주 장군이 죽주산성竹州山城에서 각각 물리쳤으며
홍건적의 난 때는 민중 전체가 항거하여 물리쳤다.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는 홍계남 · 이덕남 장군을 필두로 많은 주민들이 의병으로 나서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또한 전국 3대 3 · 1운동 실력 항쟁지의 하나로써 대한독립의 기초를 닦은 자랑스러운 곳이다.
특히 양성공립보통학교에서 시작되어 원곡·양성의 주민들이 한 달여간 펼친 독립 운동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극렬하게 펼쳐진 독립 만세 운동으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나라공동체 관련 자료들:
박서의 귀주성 전투
http://contents.history.go.kr/front/hm/view.do?tabId=01&levelId=hm_051_0040
몽골이 귀주를 포위하고 있을 때 몽골군 중에서 70세에 가까운 늙은 장수가 있었는데,
그가 성과 보루, 병기를 자세히 돌아보고 탄식하기를
“내가 성인이 된 후 군대에 들어와 천하의 각종 성지(城池)에 대한 공방전을 무수히 보았으나
이처럼 맹렬하고 오랜 공격을 당하면서도 끝내 항복하지 않은 곳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蒙古之圍龜州也, 其將有年幾七十者, 至城下, 環視城壘器械, 歎曰,
吾結髮從軍, 歷觀天下城池攻戰之狀, 未嘗見被攻如此而終不降者.]
이 성을 굳게 지킨 여러 장수들은 후일에 반드시 장군이나 재상이 될 인재들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과연 박서는 후에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에 임명되었다.
[城中諸將, 他日必皆爲將相. 後犀果拜門下平章事.]
- 출전: 『고려사高麗史』 권103, 「열전列傳」16 [제신諸臣] 박서朴犀
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KOREA/item/level.do?levelId=kr_103_0010_0050_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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