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에 일어난 9.11 동시다발 테러 사건은 전세계를 경악시켰다. 우리는 그 사건이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 경제에도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 보자. 실은 그 때까지 경기가 후퇴하고 있던 미국은 테러 후 10~12월 사이 GDP가 0.2퍼센트 증가하며 마이너스 성장에서 플러스 성장세로 돌아섰다. 이러한 수치가 상무성으로부터 발표되기에 앞서, 부시 대통령은 일반 교서 연설에서 군사, 테러 대책 예산의 대폭적인 증가 방침을 내놓았다. 자유와 안전에는 비용이 들게 마련이며, 여기에 지나침이란 없다고 말이다. 특히 생물 테러, 긴급대응, 공항/국경 경비, 정보수집의 4개 분야에 걸친 '본토 방위에 드는 예산'은 배 이상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TV를 통해 이 내용을 보고 있던 실리콘 밸리의 한 기업 중진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야호!'하는 환호성을 내질렀다는 내용이 신문에 기사화되었다. 9.11 이전의 경기 후퇴로 부진을 면치 못했던 군수, 하이테크 산업은 '테러 특수'로 완전히 힘을 얻었다고 한다. 에너지 없계도 마찬가지다. 부시는 국내 에너지 생산을 증대하고 외국에 대한 석유 의존도를 낮춰 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경영 파탄에 직면했던 에너지 공급사인 엔크론 사와 부시 정권의 유착이 정치 문제화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방위비나 에너지 생산 증대 방침은 9.11 사건 이후 불거져 나온 것이 아니라, 정권 발족 이전부터 내세워 온 부시의 노선이다. 경기 회복과 경제성장이라는 '국익'을 우선하기 위해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 의정서에서 이탈하고, 향후 20년 동안 쉬지 않고 발전소를 짓겠다고 주장하며, 알래스카의 자연보호 구역 내에서 석유 개발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정권과 석유 업계의 유착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당초 거센 역풍을 맞으며 주춤대고 있던 부시이 노선은 역설적이게도 9.11의 '국위선양' 덕분에 높은 지지율과 함께 힘을 얻었다. 우리는 9.11 이후의 이러한 상황들을 유심히 지켜보아야 한다.
60년 전의 전쟁에서 미국인은 검약을 미덕으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의 전쟁에서 대통령은 국민을 향해 거리로 나가 물건을 사라고 독려한다. 애국자는 곧 좋은 소비자라고 부추기면서 말이다. 제네럴 모터스 사는 이렇게 선언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지키기 위해, GM은 제로 금리 세일을 단행합니다." 여기서 욕망과 필요를 구별하는 사람은 더 이상 찾기 힘들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시대에 뒤떨어진 보수주의자이거나 과격한 환경운동가일 것이다) 여기서 욕망이란 곧 필요이며, 양자는서로 발걸음을 맞춰 영원히 성장할 것이라 여겨진다.
실제로 이 '낭비 애국주의'는 보람찬 결과를 드러냈다. GDP 0.2퍼센트 증가는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논리에 따라. 전쟁도 환경파괴도 경제성장이라는 목적에 봉사하는 한, 이 모두는 선이자 정의인 것이다.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