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의 복건(服虔)이 남긴『한서(漢書)』 무제기(武帝紀)의 주(注)에사 '진한(辰韓)'기록이 확인되는데[박대재, 2005]
사승謝承의『후한서』동이열전에 "삼한의 풍속에 납일(臘日)이 되면 집집마다 제사를 지냈다(三韓俗以臘日家家祭祀)"라고 헸다.
준왕 일족이 원래부터 한씨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자연히 드러나게 된다.
『산해경(山海經)』의 '한안(韓鴈)'과『상서공씨전(尙書孔氏傳)』의 '한'이 청대 공증학자들에 의해 삼한과 관련되어 거론되기도 했지만, 두 기록의 역사성에 모호한 점이 많아 이들을 삼한의 한과 직접 연결해 보기는 어렵다고 이해된다. [박대재, 2005]
『일주서(逸周書)』왕회(王會)편에 나오는 고이(高夷)에 대해 진(晉)의 공조(孔晁)가 "고구려는 일명 구려(句麗)라고 하는데, 옛날의 고이(高夷)'라고 한 주석에 근거하여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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