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의 법문 >
포스트 코로나 시대 불자들의 역할은?
글 | 혜각스님
보스톤 문수사 주지
인류는 기후변화와 맞물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구가 탄생한 후 46억년 동안 인류는 자연에 맞서기보다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이 주는 혜택을 누리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이 시작된 이후 인간과 자연과 공존은 서서히 깨어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편리함을 위하여 개발이라는 이유로 자연을 파괴하고 생태계를 훼손하여 왔습니다. 특히나 20세기 이전의 인구가 20억 명을 넘지 않았지만 1900년대를 지나면서 폭발적인 인구의 증가는 인간의 삶의 문제와 결부되어 더욱더 자연을 이용만 할 뿐 제대로 돌려놓지 못한 결과로 엄청난 재앙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점점 진화되어 가고 첨단 기술로 인한 인간의 삶은 더욱 편리해 졌지만 점차 자연이 훼손되면서 기후를 변화시켰고 지구 환경이 변하면서 생태계의 혼란을 가중시키면서 결국 바이러스라는 형태로 인간에게 경고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극지방의 빙하를 녹이고, 호주의 산불을 꺼지지 않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모기와 진드기의 서식지도 늘어나게 했습니다. 연간 수백만 명의 환자와 수십만 명의 사망자를 내는 말라리아, 뎅기열 등이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었고, 현재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도 원래 야생 박쥐에 있던 것이 인간에게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원래 열대지방의 삼림 속 박쥐나 원숭이 등 자연 숙주에 주로 기생하는데, 인간이 삼림을 파괴하고 자연을 훼손하면서 야생숙주가 점차 인간 거주지로 이동하게 된 것입니다. 겁 없이 생태계를 파괴했던 일들이 이제 대재앙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인드라망처럼 만물이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바이러스-동물-인간-자연환경-기후가 어떻게 작용하여 질병을 만드는지, 현재 지구촌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인류가 함께 생존 번영하려면 연기법의 지혜와 생명을 살리는 자비의 실천이 모두 필요합니다. 이번 사태가 종식되더라도 끊임없이 변이하는 바이러스의 속성상 앞으로 새로운 감염병은 계속 출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기적인 전염병 대유행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의 역할과 세계적 협력 방안도 중요하겠지만, 여기서는 우리 불자들이 할 수 있는 몇 가지 실천을 제안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자비의 마음으로 공생을 추구해야 합니다.
중세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할 때 유대인에 대해 마녀사냥과 집단 학살이 벌어졌고, 매독이 유행할 때는 자신들이 불결하게 여기는 국가 이름을 붙여 나폴리병, 프랑스병 등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또한 일본에서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였을 때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탔다’라는 유언비어로 수많은 조선인들이 죽음으로 내몰린 일도 있었으며, 현재에는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시아인 혐오 범죄 등은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염병은 혐오나 배제 또한 쉽게 퍼뜨린다는 사실입니다. 전염병으로 가장 많은 고통을 받는 것은 사회에서 가장 약하고 힘든 사람들입니다. 코로나 사태가 아니었으면 소외된 청년들이 신천지에 빠져드는 것을, 정신병동의 참담한 실태를, 콜센터의 열악한 근무 조건을 우리가 알게 되었을까요? 마스크 구하기 힘들고, 사람 만나지 못해 답답하다는 것쯤은 사치스러운 불평일 수도 있습니다. 사회적 취약계층의 고통을 분담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불자가 실천할 수 있도록 불교계의 조직적인 대응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공생은 인간만의 공생이 아니라 인간과 생물의 공생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혹시 ‘나쁜 사람’의 어원을 아시나요? '나쁜 사람'이라는 말의 어원은 '나뿐인 사람'이라고 합니다. 요즘 우리 세상은 '나만 좋으면, 우리끼리만 좋으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처럼 자신만을 생각하며 계속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결국 큰 기쁨, 깊은 행복감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채 이 생을 마감하고 말 것입니다. 불행한 일생입니다.
둘째 불자라면 무소유적인 Mini Life의 삶을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소유라 하여 완전히 가지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며, 또한 필요에 의해 소유하였다 하더라도 그 물품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일회용품 안 쓰기와 쓰레기 제로를 생활화하고,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되는 육식을 줄여야 합니다. 그동안 당연시하던 것들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는 과잉생산 과잉소비가 더 이상 미덕이 아닌 사회로, 지속 가능한 소박한 삶의 방식으로 변화하는 흐름을 불자들이 앞장서서 만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욕심으로 인해 환경파괴와 기후위기가 이어진다는 생각을 한다면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우리 불자들의 삶입니다. 지구온난화와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모두 한시도 미룰 수 없는 급박한 위기상황에 도달했습니다.
셋째, 우리 불자들은 지혜의 눈으로 정확한 정보를 습득하고, 가짜 뉴스를 판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코로나19는 조심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공포는 무지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는 생물 숙주 안에서만 살 수 있기 때문에, 코로나19도 점차 독성이 약하고 감염력은 커지는 쪽으로 변이를 일으켜 독감같이 계절성 유행병으로 정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라고 합니다. 온갖 부끄러움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이제 그만 '손 씻으라'고 강권합니다.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이 '손을 씻는 것'은 그가 하던 나쁜 일을 그만둔다는 뜻입니다. 부디 이 기회를 잃지 말기를...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안겨준 메시지가 자못 큽니다. 손을 씻으면서 마음을 함께 씻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삶의 양식과 습관을 씻습니다. 수치와 갈등과 증오를 씻어내고 다시 시작하라 말합니다. 씻을 때는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자신을 지킬 뿐 아니라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감염자도 감염의 전파자도 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의심되는 증상이 있다면 반드시 마스크를 쓰고 며칠만이라도 자발적으로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해야 합니다. 감염 예방과 건강관리의 근본대책은 결국 면역력이기 때문입니다.
면역에 좋다는 건강기능식품, 영양제 등만 찾지 말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습관부터 들여 보는 것은 어떨까요. 매일 아침 108배 절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렵다면 잠깐씩 명상을 해도 좋고, 걱정으로 잠이 안 온다면 누워서 할 수 있는 명상(와선)을 시도해 보세요.
‘Go! Inside!’라는 슬로건이 대세인 시대가 왔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면, 내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자 (If You Can’t go Outside, Go Inside)”라는 것이 불교계에서 말하고자 하는 취지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바꾸기보다, 마음의 본질을 바로보고, 우리 마음속의 욕망과 감정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살펴보자는 뜻입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새로운 세계관과 가치관, 새로운 생활양식, 새로운 질서”를 탐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개인적 생활과 사회적 시스템이 동시에 붕괴하는 지구적 대혼돈을 실시간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비대면 소통’ 같은 새로운 질서의 자기 조직화를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코로나의 충격은 우리에게 삶을 성찰하게 했습니다. 기후변화와 불평등에 대해서도 재인식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코로나의 역설입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포스트코로나 시대 ‘어떻게’,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알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대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인류는 생명세계의 예측 불가능성을 깨닫게 됐다”며, “이는 역설적으로 코로나사태가 앞으로 인류에게 무엇이든 해볼 기회를 제공해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인류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가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즉 이번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전문가들 모두가 한결같이 이야기하기를, “미래는 열려있습니다. 불확실한 상태에서는 어떤 선택이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사회적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공통감각을 기반에 두고 앞으로 ‘어떤 사회적 선택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해 봐야 합니다.” 라고 관계 맺음의 형식과 효율성이 변화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연결된 미래사회의 모습이 더 빨리 다가오고 있습니다.
불필요한 만남을 줄이고, 정신없이 세상에 휩쓸려 살다가 이제 세상을 거스르며 살수도 있음을 경험해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농담으로 말하듯이, 우리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을지 모르지만, 하지 않을 의지는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도덕적인 행동을 할 수는 없어도 충동은 억누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충동은 완전히 뒤집을 수 있습니다. 하지 않을 의지도 중요합니다. 그 의지를 어떤 순간에 발휘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돌아보면 '나'만을 생각할 때 나오는 행동은 늘 충동에 가까웠습니다. '우리'를 생각하니 내 행동에 의지가 담기고 그 뒤에 더 많은 의미가 따라오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 어느 때 보다 우리 모두 '우리'를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일체중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귀한 시간으로 만들어보는 것이 지금 우리 불자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혜각스님은 도문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미국에는 능인선원 분원을 설립하기 위해 2007년 2월에 뉴욕에 도착했다. 이후 2010년 보스톤 문수사 주지로 취임하여 포교와 수행을 하고 있다. 스님은 반야심경 강의, 자경문 강의, 금강경 강의, 아침을 깨우는 소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