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6. 레지오 훈화- 하느님과의 만남
찬미예수님!
새해가 밝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복은 은총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복은 하느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주간에는 우리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하느님을 따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잠시 묵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포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역설적으로 행복은 포기하는 만큼 다가옵니다. 인간이 각자 다른 것처럼 포기해야 할 대상 또한 각자 다릅니다. 어쨌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의 마지막 한 조각을 포기할 때 하느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세상에 ‘내 것’이라고 고집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일찍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하느님을 따른다는 것은 고통을 의미합니다. 고통을 거부하는 자는 결코 하느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햇볕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짙듯이 하느님의 은총이 크면 클수록 우리가 져야 하는 고통의 십자가도 큰 법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벗어버리고 싶은 고통의 멍에를 한, 두 개쯤 지니고 삽니다.
고통을 벗어버린다는 것은 하느님과의 인연을 끊는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영광의 부활 뒤에는 처절한 십자가가 숨어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셋째, 하느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투쟁의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풍부한 곳에는 사탄의 유혹 역시 은총만큼이나 강한 세력으로 공존하고 있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은 죽을 때까지 영적으로 자유롭지 못합니다. 따라서 사탄의 유혹에 맞서 끊임없이 투쟁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투쟁은 결코 나 혼자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투쟁입니다.
넷째, 하느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신을 종처럼 낮추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밟고 지나는 곳의 땅값이 비싼 것처럼, 인간이 영적으로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다른 이들로부터 밟힘을 당하는 낮은 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바보라고 늘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하느님은 갈수록 커져야 하고, 나는 갈수록 작아져야 합니다. 내가 작아지기 위해서는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는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과의 만남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피치 못하게 져야 할 십자가가 있기 마련입니다. 기꺼운 마음으로 십자가를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신 져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잠시일 뿐,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분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느님께 다가가기 위해서는 십자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중에 어부가 많았다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먼저 어부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내 것이라고 내세울 것이 별로 없는 홀가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어부는 직업의 특성상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동체성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천국은 나 홀로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갈 때 환영받는 곳입니다. 어부들은 아울러 바다 한가운데서 한, 두 번쯤 죽을 고비를 넘긴 이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삶은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로 여기며 늘 감사할 줄 아는 종말론적 삶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분을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기 위해서는, 그분을 따르기 위해서는,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어부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