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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뭔 나라? 이런 나라 7편 - 타지키스탄

작성자흥미돋는글|작성시간24.08.23|조회수1,737 목록 댓글 2

출처: https://www.fmkorea.com/7388906477

 

 

다른나라 소개 이전편

뭔 나라? 이런 나라 1편 - 그레나다

뭔 나라? 이런 나라 2편 - 차드

뭔 나라? 이런 나라 3편 -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뭔 나라? 이런 나라 4편 - 파푸아뉴기니

뭔 나라? 이런 나라 5편 - 부건빌 (feat. 2027년 독립 예정)

뭔 나라? 이런 나라 6편 - 몰타


1편과 3편에서는 아메리카,

2편에서는 아프리카,

4편과 5편에서는 오세아니아,

6편에서는 유럽 국가를 다뤘지만

아직 아시아 국가는 다룬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7편은 아시아 국가를 다뤄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전에도 타지키스탄을 요청하셨던 분이 계시기도 해서

타지키스탄에 대해서 소개를 해보려고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저는 전문가도 아니고 전공자도 아닙니다.

그냥 재미로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타지키스탄 공화국

Republic of Tajikistan

수도 : 두샨베 (Dushanbe)

면적 : 143,100㎢ (대한민국의 약1.4배 면적)

인구 : 10,277,100명 (2024 추정치, 충청도+전라도 합친 인구와 비슷)

언어 : 타지크어(공용어), 러시아어

민족 구성 : 타지크인 86.1%, 우즈베크인 11.3%, 키르기스인 0.4%, 러시아인 0.3%

종교 : 이슬람교 97.5% (90% 정도가 수니파, 시아파는 3% 정도) 기독교 0.7%

 


일단 타지키스탄의 위치입니다.

 

 


(이란계 언어 분포 현황)

 

타지키스탄은 중앙아시아 5개국(카자흐, 우즈벡, 투르크멘, 키르기스, 타지크) 가운데 유일하게 주 민족이 이란계 민족인 국가이기도 합니다. 나머지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전부 튀르크계 민족이거든요.

(아프가니스탄은 주로 남아시아로 분류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주 민족은 파슈툰인으로 이란계 민족임)

 

참고로 위 지도는 이란계 언어 분포 현황이지만 이란계 민족 분포 현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튀르크계 민족이냐 이란계 민족이냐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사용하는 언어가 무엇이냐인데,

실제로 현대의 튀르키예인은 유전적으로는 이란계 백인에 가깝지만, 사용하는 언어가 튀르크계 언어이기 때문에 튀르크계 민족으로 분류됩니다.

튀르크 없는 튀르크계 민족

 


(파미르인 여성들)

민족 구성이나 종교는 조사하는 곳마다 그 % 비율이 달라질 수 있는데,

나무위키에는 타지크인 79.8%, 파미르인 4.4%라고 쓰여있더라구요?

근데 제가 쓴 민족 구성에 파미르인이 없다고 해서 나무위키나 제가 잘못 됐다는건 아니구요

 

파미르인은 중앙아시아의 복잡한 국경 근처 산악지대(주로 타지키스탄)에 거주하는 이란계 민족인데,

타지키스탄에서는 이들을 소수민족으로 분류하지 않고, 타지크인들과 동화 정책을 사용해 정확한 인구 추산이 어렵다고 합니다.

파미르인은 타지크인들과는 다르게 시아파 이슬람을 믿는 인구가 수니파 인구보다 많다고 하네요.

 

 

 

그리고 타지키스탄의 이슬람교 비율이 97.5%에 달하지만 국교가 정해져있거나 한 건 아니고

오히려 이슬람 국가들 가운데 인도네시아(혹은 인도네시아를 뛰어넘는) 수준의 세속주의 국가입니다.

 

특히 이웃 나라가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인데요, 이슬람 극단주의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어서,

2017년에는 아예 히잡금지법을 만들어냈습니다.

(히잡이나 이슬람 복장을 금지한 것은 아니지만, 여성들이 머리를 가리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명시됨)

타지키스탄에서 이러한 법이 통과된 이유는 안전과 관련된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대통령이 직접 국민들에게 수염을 기르지 말 것을 촉구하며 13,000명의 수염을 기른 남성들에게 강제로 면도를 시켰다고 합니다ㅋㅋ

(나무위키발이라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히잡을 착용하는 여성들을 매춘부로 규정했다고도 함)

(이 종교 관련 이야기는 타지키스탄의 역사 마지막 부분에 한 번 더 언급될 예정...)

 

 

 



타지키스탄은 국토의 93%가 산악지역이고, 동부 파미르 고원은 평균 고도가 5000m가 넘는다고 합니다.

 

나라 전체적으로 건조한 대륙성 기후를 보이는데, 동부는 고산 기후를 보이며, 수도 두샨베 근처는 일교차, 연교차가 큰 냉대 스텝 기후를 보입니다.

 


(타지키스탄의 행정구역)

 

당연히 인구도 척박한 동부보다는 서부에 몰려있는데, 4번 행정구역이 국토의 절반을 차지하지만, 4번 행정구역 인구는 22만명에 불과합니다.

 

 

타지키스탄은 박트리아-마르기아나 문화권이라는, 중앙아시아의 청동기 문화권에 속했습니다.

 


(소그디아나, 기원전 6세기~기원후 11세기)

소그디아나 지역은 통일되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의 가야와 비슷하게 작은 도시국가들이 하나의 문화권을 이룬 지역이었습니다. (다만 가야처럼 연맹형태는 아니었음)

소그드인들은 8세기까지 돌궐 제국의 비호 아래 동서무역을 장악했다고 합니다.

소그드인들은 8세기 무렵 이슬람교를 받아들여 무슬림화되었고, 이후에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페르시아계 국가, 튀르크계 국가 이곳저곳에 편입되며 소그드인의 정체성을 잃게 됩니다.

 

타지키스탄 지역에 제대로 된 국가가 등장한 것은 기원전 550년의 일입니다.

 


(아키메네스 제국, 다리우스 1세 시기의 영토)

동부에 Sogdiana(소그디아나)와 Bactria(박트리아)라고 적힌 지역을 찾을 수 있음

 


(문명 5에 나오는 그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맞음)

 

하지만, 아케메네스 제국은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3세에 의해서 기원전 330년경에 무너지고 맙니다.

 


(문명 5에 나오는 그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 맞음)

 

처음 소그드인들은 알렉산더 대왕으로부터 강하게 저항했지만,

알렉산더 대왕이 박트리아 지역 부족장의 딸인 록사나와 결혼하면서 알렉산더 대왕이 그 땅을 물려받습니다ㅋㅋ

 

 


(알렉산더와 록사나의 결혼, 일 소도마, 1517년 작품)
(가운데가 알렉산드로스 3세고 왼쪽에 천사가 엎힌 여성이 록사나임)


(록사나, ? ~ BC 309)

 

정보) 록사나는 아시아 제일의 미녀였다고 한다.

다만 그 앞에 수식어가 붙는데, '다리우스 3세의 아내 스타테이라 1세를 제외하면' 아시아 제일의 미녀였다고...

스타테이라는 얼마나 예뻤던걸까?

 

어쨌든 알렉산드로스 3세가 박트리아를 점령한 뒤,

알렉산더 대왕 사후엔 이 지역에 헬레니즘 계열 제국인 셀레우코스 제국이 들어섭니다.


(기원전 281년, 셀레우코스 제국의 영토)

마찬가지로 이 지도에서도 Sogdia와 Bactria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셀레우코스 제국은 시리아 지역과 비잔티움 지역의 전쟁에 집중하느라 동방의 속주들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하고,

기원전 256년, 박트리아의 총독 디오도토스가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권을 부정하고 자신을 왕으로 선포합니다.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의 최대 영토, 기원전 170년경)

 

여담으로 이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은 헬레니즘 세계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왕국이었습니다.

(위치는 중앙아시아 한복판이지만 다리우스 시대부터 그리스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았고, 지배층도 그리스계였기 때문에 그냥 빼박 그리스계 왕국임)

기원전 230년경에는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이 몇 년 뒤에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게 될 진나라와 국경을 접했을거라는 설도 존재합니다.

어떻게 그리스 옆나라가 중국

 

이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은 기원전 130년경 월지의 침입으로 멸망합니다.

월지는 또 어딘가 하니...

 


중국 전국시대에 진나라 서쪽에 있던 민족인데요,

현재 우리는 이 민족을 토하라인의 일종으로 추측하는데,

토하라인은 또 뭔데? 

토하라인은 현재 위구르족의 조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기원후 30년경

이후 이 지역에 한동안 제대로 된 국가가 없었다가, 이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을 멸망시킨 월지인들이 나라를 세우는데요,


(2세기 경의 인도 지도, 왼쪽 위 커다란 초록색 나라가 쿠샨 제국임)
바로 북인도의 제국, 쿠샨 제국입니다.
본격 그리스계 왕국을 계승한 위구르인들이 세운 인도 왕국

근데 이게 취소선 드립이 아니라 진짜인게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을 무너뜨리고 그리스계 주민들이 살던 박트리아 지역을 5개의 월지 가문이 통치하게 되는데요,

이 5개 가문 가운데 하나에 속했던 쿠줄라 카드피세스(중국의 후한서에도 이 사람의 이름이 남아있는데, 丘就却(구취각)으로 표기가 되었다고 함)가 이 가문들을 통합하고 인도 지역으로 내려와 세운 왕국이 쿠샨 제국이기 때문에 이게 가능한 일입니다;;

ㅇㄱ ㅈㅉㅇㅇ?

네.

 


(쿠샨 제국의 최대 영토, 카니슈카 1세 시절(기원후 2세기 중반))

 

하지만 쿠샨 제국은 3세기에 바로 외부의 침략으로 인해 대부분의 지역이 함락되고 맙니다.

쿠샨 제국을 함락시킨 주인공은...

(쿠샨 제국 자체는 4세기 후반까지 남아있긴 합니다)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최대 영토, 620년경)

바로 사산 왕조 페르시아입니다.

 

하지만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최대 영토 지도에 타지키스탄 지역은 포함되어있지 않은데요,

 

 

484년

 


(에프탈 기병)

 

484년, 페로즈 1세 시기에 에프탈(이란계 유목 민족으로,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기록에 따르면 흉노족과 다르게 피부가 창백하다고 백훈족이라고 불렀다고 함)에게 타지키스탄 지역의 영토는 빼앗겼던 것으로 추정되며,

에프탈의 지배층은 튀르크계(와 토하라인의 혼혈)였으나, 피지배층이 박트리아의 토착민(현재의 타지크인 정도될듯...?)이었을걸로 추정됩니다.

 

 

565년

 


(소그드인이 그린 소그드인 상인과 돌궐인이 동맹을 중개하는 모습)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 돌궐족이 연합을 맺어 에프탈을 쫓아내고 현재의 타지키스탄 지역은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 돌궐족이 통치를 하게 되지만

돌궐 제국은 서돌궐과 동돌궐로 나뉘게 되고,

이후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 서돌궐이 서로 적국이 되면서 이 지역은 개판이 됩니다.

(이 때 서돌궐은 무려 비잔틴(=동로마)제국과 연합을 맺어 사산 왕조 페르시아를 공격함)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이슬람 세력에 의해 651년에 멸망하고, 타지키스탄은 잠시나마 서돌궐이 단독으로 통치하게 됩니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서돌궐도 당나라의 원정(당시 당나라 황제가 무려 당태종(!)) 때문에 상황이 좋지 않았고, 결국 서돌궐도 657년 마지막 군주의 사망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시기쯤 아랍 지역으로부터 이슬람이 들어오며 타지키스탄 지역의 주민들이 무슬림화되는 등 큰 변화가 생기고,

이후엔 이슬람 왕조들이 타지키스탄 지역에 들어서게 됩니다.

타지크인이 타지크인으로 불리게 된 것도 이슬람 시기부터입니다. (다만 이슬람 시기 가운데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음)

 

 

710년

 


(우마이야 왕조의 최대 영토, 720년경)

 

710년에는 우마이야 왕조가 들어오게 되고,

 

 

750년

 


(아바스 왕조의 영토, 850년경)

우마이야 왕조가 750년에 무너지고, 그 자리는 아바스 왕조가 대신하게 됩니다.

 

우마이야 왕조 시절에는 왕조가 아랍 부족의 느슨한 연합 지도자에 불과했다면,

아바스 왕조는 사산 왕조를 본 떠 거대한 다민족 중앙 집권 국가를 건설하기 시작합니다.

 

 

819년

 


(사만 왕조의 영토, 943년경)

 

그러다 819년, 이란 지역과 트란스옥시아나(현 우즈베키스탄과 그 인근 지역)에서는 사만 왕조가 각지의 반란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아바스 왕조를 대신해 주민들을 통치하기 시작합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타지키스탄 지역도 사만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카라한 칸국의 영토, 1000년경)

999년 사만 왕국은 카라한 칸국에게 멸망하게 되고,

 


(호라즘 제국의 영토, 1220년경)

그 카라한 칸국은 1211년 호라즘 제국에 멸망하게 됩니다.

 


(무함마드 2세, 호라즘 왕조의 제7대 술탄)

 

유능한 정복군주였던 무함마드 2세가 다스리던 호라즘 제국은 이라크에서 트란스옥시아나에 이르는 이슬람권 유일의 패권국이었습니다.

무함마드 2세의 별명은 '제2의 알렉산더', '지상의 알라' 등이었구요.

 

일단 주변에 호라즘 제국과 대적할만한 국가도 없었고,

당시에는 호라즘 제국 내부의 갈등이 있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호라즘 제국이 중앙아시아를 지배하는 데에 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1215년쯤

 


(칭기즈 칸, 몽골 제국의 초대 카간)

 

웬 환경전사가 나타납니다.

 

 

1215년쯤부터 몽골과 호라즘이 서로 국경을 접하게 되었긴 했지만,

서로의 영토는 너무나도 멀었으며, 당시 양국의 정복 목표도 서로가 아니었고,

두 국가가 처음 만난 시기에는 몽골 제국과 호라즘 제국 모두 서로를 실제보다 더 강력한 적으로 생각했던 바람에 별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1218년

 

1218년, 몽골 제국은 사절단을 호라즘에 파견했고,

호라즘 국경도시인 오트라르(현 카자흐스탄 남부)의 총독 이날추크가 사절단의 공물을 탐내며 이 사절단을 간첩 혐의를 씌워 살해해버립니다.

(사신 가운데 한명이 이날추크에게 상당히 무례하게 굴었다는게 정설인듯?)

 

야 ㅅㅂ 간신히 탈출한 우리 쪽 대상한테 들었는데

니네 국경지역 총독이 우리 사절단을 죽여버렸다며?

저 국경지역 총독, 당연히 사형 때리겠지?

 

...라고 전해달라고 호라즘에 사신을 보내야겠다

 

근데 이날추크는 우리 어머니의 사촌이라 사형은 못 내리겠는데?

이번에 몽골이 보낸 사신 중에 몇 명은 내가 직접 죽이고 나머지는 수염 깎아서 몽골로 돌려보내야지ㅎ

(이슬람에서 수염 자르는 것 = 조선에서 상투 자르는 것)

 

 

1220년

 

...이거 해보자는거지?!

당장 호라즘으로 진격한다.

 

칭기즈 칸은 15만 이상의 군대를 이끌고 호라즘으로 진격합니다.

 

 

우린 병력이 40만인데다 여긴 우린 홈그라운드고 몽골놈들이 여기 넘어오려면 중간에 사막도 넘어와야 해서 빨리 못들어와ㅋㅋ

우리도 공격 가자!

 

사막이 있으면 돌아가면 되는거 아님??

 

?

 

무함마드 2세는 초반 기세좋게 몽골군을 직접 공격하러 나섰고,

무함마드 2세를 본 몽골군이 살짝 쫄기도 했지만,

몽골군의 기동력과 위력을 직접 눈으로 본 무함마드 2세는 전면전은 무리라고 생각하고 수비태세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몽골군이 생각보다도 너무 빨라서 호라즘 군대는 각 도시에 분산 배치되어 각개 격파 당해버립니다.

몽골군도 피해가 적지는 않았지만 호라즘의 수도를 포함한 대부분의 대도시가 몽골에 편입되어버리며 전쟁은 싱겁게 끝이 납니다.

 

 

여담으로 전쟁의 원인이었던 이날추크는 몽골군에 생포되어

탐욕에 눈이 멀은 성주는 그에 맞게 죽인다며 두 눈에 금을 녹인 물을 들이붓는 방식으로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무함마드 2세는 몽골군을 피해 도망가던 중 카스피해 인근에서 사망했고,

트란스옥시아나를 완전히 잃은 호라즘 제국은 1231년 아이유브-셀주크 연합군에 패배, 그나마 지키고 있던 아제르바이잔 지역도 몽골군이 점령하게 되며 멸망하게 됩니다.

 

 


1370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몽골 제국의 시대는 생각보다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칭기즈 칸의 아들인 차가타이가 만든 차가타이 칸국 출신의 몽골계 부족민들이 몽골 제국의 계승을 자처하며 국가를 만들었는데,

그 제국이 바로

 


(티무르 제국의 최대 영토)

 

티무르 제국입니다.

 

티무르인들은 스스로를 '차가타이인'이라고 불렀지만 티무르 제국이 차가타이 칸국과 별개의 국가로 인식되는 이유는 지배층이 칭기즈 칸의 직계에서 방계 부족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15세기에 들어서면서 티무르 제국은 제국의 패권을 놓고 내부에서 혼란기가 이어집니다.

이 시기, 제국의 서부는 흑양 왕조(카라 코윤루)와 백양 왕조(아크 코윤루)에 차례차례 털렸고,

제국 내부에서는 신흥세력이 발생해 수도인 사마르칸트를 털리며 사실상 멸망의 길로 향합니다.

티무르의 5대손이던 바부르가 현재의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인도 지역으로 도망치면서 나라를 건설하는데, 그 나라가 바로 무굴 제국입니다.

 

 

1500년

 


(부하라 칸국의 영토, 1598년)

 

이 티무르 제국의 수도를 털어버린 것은 다름 아닌 타지키스탄 옆나라 민족 우즈베크족이었습니다.

 

몽골 제국이 분열된 이후에 설립된 칸국(차가타이, 오고타이, 킵차크, 일) 4개 가운데 하나인 킵차크 칸국 출신 명문가인 샤이반 가문의 무함마드 샤이반이 우즈베크인을 이끌고 티무르 제국의 영토를 빼앗아 건설한 국가가 바로 부하라 칸국입니다.

 

여담으로 이 부하라 칸국은 타지키스탄 역사상 타지키스탄 영토를 가장 오랫동안 지배한 국가입니다.

 

 

1709년

 


(1860년의 코칸트 칸국과 그 주변)

 

그리고 부하라 칸국으로부터 코칸트 칸국이 분리되는데,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동부 끝 코칸트와 페르가나를 중심으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의 국경 사이에 위치한 국가였습니다.

 

타지키스탄을 기준으로 놓고보면 서부에는 부하라 칸국이, 동부에는 코칸트 칸국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었죠.

코칸트 칸국은 심심하면 청나라에 털리긴 했지만

부하라 칸국과 코칸트 칸국에 추가로 히바 칸국까지 우즈베크인들이 세운 3대 칸국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지역은 나름대로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8세기부터 슬금슬금 이 지역을 향해 다가오는 국가가 있었습니다.

 

 

 

 

1700년대

 

(루스 차르국-러시아 제국)

아 우리가 얼마전에 베링 해협도 발견해서 극동으로 확장도 할 수 있게 됐고,

캄차카 반도나 오호츠크해 같은 태평양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까지 다 세웠다구!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면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이 이미 거의 다 끝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시베리아를 정복한 러시아는 튀르크계 유목 민족이 거주하던 중앙아시아를 탐내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러시아 가까이 있던 칸국들은 러시아가 한번씩 찔러보기도 하였습니다.

 

 

1800년대

 

러시아 제국은 1813년에 카자흐 초원 북부를 병합하면서 본격적으로 중앙아시아 지역의 합병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더 장황하게 쓸 내용도 없는 것이, 그냥 러시아 제국이 힘으로 싱겁게 중앙아시아 지역의 소국들을 차례차례 집어먹었거든요.

따로 설명할 내용이 있다면 산악지대였던 타지키스탄의 파미르 고원이 중앙아시아에서 마지막(1893년)으로 점령된 지역이라는거...?

 


(영국 vs 러시아 그레이트 게임 전황)

아프가니스탄은 영국이 러시아가 건드려보려고 할때마다 으르렁거리며 끝까지 완충지로 남겨놓은 지역입니다.

 


(1916년의 부하라 아미르국(=1785년에 부하라 칸국이 이름을 바꿈))

 

위의 지도의 상황쯤되면 그냥 답이 없는 상황입니다;;

(단, 부하라 아미르국은 1868년부터 러시아 제국의 괴뢰국 신세였습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10월 혁명)

그나마 남아있던 괴뢰국 형태의 아미르국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자 보수적인 에미르를 쫓아낸다는 명목으로 붉은 군대가 침공해

결국 부하라 인민 소비에트 공화국(부하라 PSR)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민족과 여러 공화국이 얽혀사는 중앙아시아 특성상

어느 민족 경계와도 어느 공화국과의 경계와도 그 경계가 애매했던 '부하라 인민 소비에트 공화국'으로는 중앙아시아 관리가 어려웠고,

 

1924년부터 차례차례 우즈베크 SSR, 투르크멘 SSR, 타지크 ASSR로 나뉘며 부하라 PSR은 사라지게 됩니다.

(SSR = Socialist Soviet Republic =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

(이후 1936년에 사회주의와 소비에트의 순서가 바뀌긴 함)

 

 

1924년

 


(타지크 ASSR)

와! 드디어 타지크라는 이름을 단 나라가 나왔다!!
근데 왜 우즈베크와 투르크멘은 SSR인데 왜 나는 ASSR임?

님 설명 좀

 

그건 바로 타지크 Autonomous Soviet Socialist Republic기 때문이죠.

번역해보자면 '타지크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인데요,

바로 우즈베크 SSR의 자치 공화국 신분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소비에트 연방 밑에 우즈베크 SSR 밑에 있는 타지크 ASSR...

 

당연히 타지크인들 입장에서는 불편한 상황일 수 밖에 없고,

 

 

1929년

 


(시린쇼 쇼테무르, 1923년부터 타지키스탄 공산당 중앙위원회를 이끔)

 

이 인물의 특이사항이 몇가지가 있는데

1. 타지키스탄 화폐 3소모니 도안의 주인공이고

2. 타지키스탄에는 이 사람의 이름을 딴 대학교가 있으며

3. 1937년 반소비에트 민족주의 조직에 참여했다는 누명을 쓰고 모스크바에서 처형됐는데

4. 1956년에 복권됨

5. 근데 타지크인이 아니라 파미르인임

 

어쨌든 이 양반의 주도로 타지크 ASSR은 완전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전환되어 타지크 SSR이 됩니다.

 


(타지크 SSR)

덕분에 SSR 등급이 되었습니다 ㄳㄳ

 

한편 1934년까지 일어난 농업 집단화 정책에 의해 타지키스탄 전역에서 농민들의 강제 이주가 발생했고,

타지키스탄의 농민들은 소련에 대항하는 무슬림 저항 운동인 바스마치 운동을 펼쳤으나...

 

(바스마치 전사들, 1929년)

손쉽게 소련군에 진압됩니다.

 

사실 이거 비슷한게 1910년대 후반부터 20년대 초반까지 볼셰비키의 정권 독점에 따른 반발로 러시아 내전의 형태로 벌어졌었는데 이런 산발적인 시위 막는것 쯤이야 뭐...

 

여담으로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의 이름도 1961년까지는 스탈리나바드였는데, 스탈린 사망 후 탈스탈린화 정책으로 두샨베로 이름이 바뀝니다.

 

 

1990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비에트 연방의 서기장)

우리 소련도 이제 개혁 개방 정책을 펼친다ㅎㅎ

 

하필 고르바초프가 개혁 개방 노선을 선택한 이때부터 석유값 폭락,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사고 등이 터지면서 소련의 경제는 망해가고 있었고,

개혁과 개방을 진행할수록 소련 체제의 비리와 범죄가 드러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고르바초프의 이 정책이 소련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붕괴만을 불러왔고, 각 지역에서 민족주의의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그 와중에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서 노래 혁명을 통해 자주 독립과 시장 경제 체제로의 환원을 요구하기 시작하고,

고르바초프는 연방 해체만은 막고 싶어서 소련의 각 공화국마다 '소련 존속에 관한 전연방 국민투표'를 진행합니다.

 


(타지크 SSR)

우리 투표 결과는 96.85%가 찬성, 3.15%는 반대입니다~

 

참고로 이 국민투표는 발트 3국+아르메니아+조지아(당시 그루지야)+몰도바 이 6개 공화국은 이미 독립을 선포하거나 독립 투표가 예정된 지역이라 투표를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모든 투표를 진행한 모든 국가에서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왔고, 이를 바탕으로 소련을 새롭게 대체할 주권국가연맹 출범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1991년

 


8월 쿠데타 발생
(사진은 국회의사당 앞에서 쿠데타군에 저항할 것을 연설하는 보리스 옐친)

 

8월 쿠데타만 정리해도 포텐글 하나 뚝딱일 정도로 소련 해체에 있어서는 정말 큰 사건인데요,

이 글은 타지키스탄을 소개하는 글이니 여기서는 자세한 내용은 뛰어넘고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8월 18일

고르바초프는 크림반도의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는데, 강경파들이 고르바초프를 가택연금시킵니다.

(강경파 = 주권국가연맹이고 뭐고 그냥 소련을 유지하고 싶은 쪽)

이들은 고르바초프에게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권력을 이양할 것을 요구했지만, 고르바초프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여담으로 이 날이 주권국가연맹을 위한 조약 서명 전날이었습니다.

 

8월 19일~20일

모스크바에서는 쿠데타 주동자들이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결성하고,

모스크바에는 탱크와 군대가 배치되었고, 반대 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아무도 예상 못한 사태가 터짐에 따라 전 세계가 우왕좌왕하는 이 때,

 

보리스 옐친은 모스크바의 의사당 앞에서 공개적으로 쿠데타를 비난하는 연설을 하며, 전 국민들에게 파업 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위 사진이 그 장면임)

 

옐친의 연설 이후 옐친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장갑차와 전차를 공격하는 등 쿠데타군에 맞서서 저항합니다.


시민들이 쿠데타군을 공격하자, 쿠데타군은 국회의사당을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이 당시 시위 인파는 50만명이었다고 합니다.

 

쿠데타군은 미국과 유럽의 반발을 두려워해 군대를 제대로 써먹지도 못했고,

시민들의 반발도 본인들의 예상을 한참이나 초월해 쿠데타군에게 상황이 부정적으로 흘러가자

쿠데타군에서 옐친 쪽으로 합류하는 군부대도 생겨나는 등 내분도 발생하게 됩니다.

 

 

결국 8월 21일, 쿠데타군은 철수합니다ㅋㅋ

 

 

사실 타지키스탄에게 있어서는 쿠데타의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했는데요,

 

소비에트 연방의 주요 인물들 대부분은 쿠데타의 주동자들이었기 때문에 숙청 당했고, 소련 내각은 빠르게 옐친측 인물들로 채워집니다.

인기부터 사람까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고르바초프는 결국 공산당 서기장 사임을 선언했고, 이 때부터 공산당 중앙위원회를 해체, 더 이상의 공산당 활동이 금지됩니다.

발트 3국과 몰도바의 독립도 이 때 승인됩니다.

 

 

8월 24일

 

 

일부 공화국들의 독립 소식을 들은 우크라이나가 연방 잔류 의사를 철회하고 독립을 선포합니다.

그 외의 몇몇 국가들도 8월 쿠데타를 통해 소련 공산당의 기득권 세력들은 공화국과 타협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독립 선포를 합니다.

 

우크라이나에서 12월 1일에 진행된 국민투표에서는 우크라이나 투표자의 92% 이상이, 유권자의 85% 이상이 우크라이나의 완전 독립에 찬성합니다.

심지어 러시아계가 다수 거주하는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에서도 독립 찬성이 과반을 차지합니다.

30년전 투표로 푸틴이 지금 얼마나 개소리를 하는 중인지 확인 가능하다

 

우크라이나의 최종 투표 결과는 독립 찬성 90.32%가 나왔습니다.

 

소련은 우크라이나 없이 연방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소련 붕괴로 이어졌고,

소련의 다른 공화국들도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독립 선언을 하게 됩니다.

 

 

1991년 9월 9일

 


(타지키스탄 공화국)
음... 일단 우리도 독립선언한다!!

 

그런데 타지키스탄은 소련 시절 이미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 정책으로 정치적 대립이 나타나고 있었고,

후에 종교적 성향에 따라 이슬람 근본주의, 서구식 민주주의, 공산주의 등이 대립하게 됩니다.

 

이런 갈등은 내전으로 이어지기 좋겠죠?

 

 

1992년

 


타지키스탄 내전 발발

내전의 원인은 1991년 당선된 후잔트파의 공산당이었던 라흐몬 나비예프의 통치에 불만을 가진 지역주의 세력 및 이슬람주의 세력의 무장 반란이었습니다.

 

라흐몬 나비예프가 공산당 소속+서부출신이었기 때문에 이에 반대되는 이슬람주의 세력+동부출신 주민들이 불만을 가지게 된겁니다.

이번 편 초반에 언급했다시피 타지키스탄의 동부는 산악지대고, 인구도 적으며, 이에 따라 상당히 낙후된 지역이었습니다.

특히 동부엔 파미르인들이 많았는데, 파미르인은 타지크인보다는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툰인과 더 유사한 측면이 많았기 때문에 민족 분쟁의 형태로도 내전이 지속됩니다.

 

타지키스탄의 정부군은 주로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고, 반군은 타지키스탄의 야당을 중심으로 탈레반(아프가니스탄)과 알 카에다의 지원을 받은 채로 내전이 이어지는데...

 

 

1997년

 


내전은 무승부로 끝납니다.

;;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키스탄의 제3대 대통령, 30년째 집권중)

 

지금 이 할아버지가 1994년부터 30년째 대통령을 해먹고 있습니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전쟁을 치뤄오던 사람이다보니 국가가 세속주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결국 본인의 정치를 위해 세속주의를 밀고 있는 중)

내전의 구조가 여당 vs 야당이었으니 내전 이후 야당 세력은 증발했다고 봐도 됩니다.

사실상 에모말리 라흐몬의 당 하나밖에 없어요.

 

타지키스탄의 민주주의 지수는 2023년 기준 1.94점으로,

타지키스탄보다 뒷 순위에 있는 나라는 (2편에 등장했던)차드, 시리아, 북한, 아프가니스탄 정도가 있고,

타지키스탄보다 민주주의 지수가 높은 나라로는 무려 이란, 중국, 에리트레아, 러시아, 사우디 등이 있습니다...

여담으로 대한민국은 8.09점으로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타지키스탄의 경제 상황도 상당히 좋지 않습니다.

2024년 추산 타지키스탄의 1인당 GDP는 1,271달러입니다. (한화 약 170만원)

당연히 구소련국가나 중앙아시아 국가 중에 제일 가난한 나라입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요.

 


타지키스탄의 2019년 기준 수출 품목 비중입니다.

 

석유나 천연가스는 없지만 자원 수출 비중이 상당히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자원 수출 비중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1인당 GDP가 이 꼴이라는건 이 나라의 전반적인 산업은...

 

 

 

여러모로 제가 소개해드린 나라들 가운데서 막장 국가 그 자체인 차드 다음으로 최악의 지표들을 보이는 나라네요.

 

 

 

나라가 앞으로 더 망해간다 이런건 아닌데 여기서 갑자기 석유가 튀어나오는게 아닌 이상 특별히 발전할 껀덕지가 없어요.

 

사실 중앙아시아 지역은 중계 무역으로 번영하던 동네였는데, 바다를 통한 해상 무역의 시대가 찾아오며 중앙아시아의 경제 상황은 좋지 않아졌습니다. 이 지역의 경제 상황이 몇백년째 좋지 않다는 이야기예요.

여기에 말을 비싸게 수입해오던 무굴 제국이 19세기에 몰락한 뒤로는 중앙아시아는 특별한 무역 파트너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소련 시절에 진행됐다는 산업화도 목화 농장과 공장 정도가 전부구요, 특히 산악 지대가 대부분인 타지키스탄은 소련의 중앙아시아 공화국들 중에서도 산업화 수준이 가장 낮았습니다.

그나마 소련이 살아있을 때는 소련 정부가 타지키스탄의 소련군 기지에 보내주는 지원금으로 먹고 살만했지만,

소련 붕괴 이후에는 당연히 지원금도 끊어지고,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은 대부분 본국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여기에 내전은 최후의 결정타를 날린 셈이구요.

 

내륙국은 무역에 있어서도 불리하다고들 얘기를 하는데요, 수도 두샨베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가 직선 거리로 약 1500km 떨어진 파키스탄의 카라치 인근입니다.

 

막막한데, 더 막막해질 수는 없어서 망하지는 않을 나라 같은 느낌...?

 


(타지키스탄 국립공원(파미르 산맥),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지정되어있음.)

 

 

 

-끝-

 

1997년

 

근데 아까부터 궁금한게 있었는데,

왜 우리 민족은 타지크인이고, 왜 내 이름은 타지키스탄이야?

타지크라는 대체 이름은 어디서 나온 이름이야??

 


(미국 의회 도서관)
오? 글쎄?

내가 한 번 알아봐줄게

 

 

(얼마 뒤)

 

 

나도 모르겠는데?ㅎㅎ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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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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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나가사끼짬뽕 | 작성시간 24.09.02 너무 재밌고 흥미롭다
    독재국가라 그런가 가본 사람도 거의 없던데
  • 작성자rururhen | 작성시간 24.09.02 이 시리즈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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