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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문화재 감상 22) 난초그림의 대가, 대원군과 민영익

작성자이계묵|작성시간13.02.16|조회수212 목록 댓글 0

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의 난초그림(묵란, 墨蘭)은 가짜가 많기로 유명하다. 당시 그의 난초를 원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사랑방에 사람을 앉혀놓고 그림을 그리게 하고 자신은 이름을 쓰고 도장만 찍었다고 한다. 한편 가짜가 만다는 것은 대원군의 난초가 그만큼 뛰어났음을 말한다.

난초그림은 19세기에 성행하였고, 그 중 대원군과 민영익(閔泳翊, 1860-1914)이 쌍벽을 이루었다.

이들의 난초는 회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지만 그 화풍은 사뭇 대조적이다.

대원군의 난초가 섬뜩할 정도로 예리하다면 민영익의 난초는 부드럽고 원만하다. 이러한 차이는 두사람의 삶에서 비롯된다. 예술품은 작가의 삶과 정신을 그대로 반영하기에.

(출처 : 이광표저 문화재 이야기)

대원군 묵란의 힘차고 날카로운 화풍운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과 밀접하다. 처절한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서 그의 야망과 숱한 좌절이 날카로움으로 표출된 것이 아닐까.

해동거사 (海東居士)란 낙관이 있는 아래 오른쪽 그림은 그가 실각한 이후 운현궁에 눌러앉았던 1881년 작품으로 줄기 하나하나에 그의 정치적 야망과 좌절로 인한 울분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하다.

민영익은 왕실 외척으로 태어나 20대 초반 미국, 유럽을 돌며 서양문물에 눈을 뜨고 요직을 거친 인물로 야심보다는 보수적인 성향의 인물이다.(망명중인 김옥균을 제거하기위해 일본에 자객을 보내고, 중국에 유폐된 대원군의 귀국을 반대한 보수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민영익은 1894년 중국으로 망명해 그곳의 문인화가들과 사군자를 그리며 말년을 보냈다.

그의 난초는 부드럽지만 화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어떤 우직함이 있다. 가볍지 않은 힘이다.

상반된 경향을 보이는 두 사람의 난초, 그밨에 추사 김정희의 묵란도 빼어난 작품이지만 대원군과 민영익의 묵란을 잘 들어다보면 난초그림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감식안을 배우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두사람의 묵란을 감상하는 것은 즐겁고 흥미로운 일이다.

참고)

대원군 이하응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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