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유전학적 증거에 따르면, 벨러 3세는 흰 피부와 녹색 또는 푸른색 눈을 지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LCT 유전자 변이는 그가 유당불내증을 겪지 않고 무리없이 우유를 소화할 수 있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이게 현대의 파묘구만. (2021년의 연구 결과) 너무너무 무섭다. 그 와중에 영상 밑 댓글에서 형제국 놀이를 하는 어느 한국인과 헝가리인은...작성자크킹삼치작성시간26.08.26
카지미에시가 루스 지역에 가 있는 동안, 그는 귀족들의 지지를 잃고 말았습니다. 귀족들은 헝가리와의 긴밀한 관계를 희생하면서까지 루스 지역에 적극적인 정책을 펼친 공작의 행보에 불만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해 말, 카지미에시는 볼로디미르 공작 로만과 벨즈 공작 프세볼로트의 도움을 받아 미에슈코의 아들로부터 크라쿠프를 탈환했으며, 이때 그의 목숨은 살려주었습니다. 카지미에시는 볼레스와프 미에슈코비치를 대폴란드로 무사히 돌려보낸 '사소해 보이는' 조치를 통해, 남은 생애 동안 미에슈코와의 평화를 확보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그 이후 미에슈코는 동생을 축출하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더 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이중십자가가 다소 늘씬해졌다는 것 외엔 그의 조부 벨러 3세를 꼭 닮은, 벨러 4세의 문장. "언드라시, 망할 놈아. 내가 너한테 땅을 안 줬냐, 돈을 안 줬냐? 가라는 십자군은 안 가고 형아 뒤통수나 쳐? 내가 네놈 아들로 환생해서 속썩여주마."작성자크킹삼치작성시간26.08.24이미지 확대
카지미에시 2세의 손자 볼레스와프 5세와, 벨러 3세의 증손녀인 쿠니군다의 결혼은 폴란드와 헝가리 모두를 구원했습니다. 그들은 동정혼을 서약했기에 소생이 없었지만, 몽골의 침략이라는 묵시록적 국난 앞에서 친자녀에 대한 집착 같은 건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작성자크킹삼치작성시간26.08.23
카지미에시 4세의 왕조 중심적 대외 정책은 폴란드를 수많은 의미 없고 오히려 피해를 입히는 갈등에 휘말리게 만들었다. (중략) 브와디스와프 3세가 헝가리를 직접 차지하면서 이 동맹(무라트 2세가 제안한)은 성사되지 못했다. 그는 몰다비아를 놓고 오스만과 전쟁을 벌이다가 바르나 전투에서 전사했다. - 아담 자모이스키, 폴란드사
스레드 이야기... 괴인: 유부남들아 게임 하지말고 현생을 살아라!(와글와글) 범부: 무슨 소리야? 그럼 시간 남으면 뭘 해? 괴인: 공부해라! 본인: (스레드에 주식 이야기 가득하던데) 유투브로 하는 주식 공부요? (아까 육아를 휴식삼아 하시라던데) 공부와 휴식이 지금 뒤바뀐거 아닌가요? 본인 칼차단 엔딩. 이 와중에 어떤 사람들은 물들어온 김에 괴인 대화자락에서 자기 스레드 계정 홍보. 오늘도 평화로운 스레드.작성자666마구니작성시간26.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