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작화 감독’의 역할이란 무엇일까요? 총 작화 감독이란 애니 한 편의 비주얼이 전체적으로 기복 없이 보여질 수 있도록 기존의 그림들을 수정해내는 사람을 말합니다. 원래는 그 회차의 ‘작화 감독’들이 ‘원화가’들의 원화를 수정하며 그 작업을 수행하지만, ‘드래곤볼 슈퍼’처럼 제작 스케줄링의 문제로 시간이 모자랄 경우엔 총 작화 감독이 그 역할을 마저 맡으며 이는 슈퍼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런 중요한 역할인 만큼, 캐릭터들 비주얼의 키인 설정화에 충실한 ‘온 모델’ 성향의 애니메이터가 이러한 일을 담당하죠.
물론 저는 단편적인 예로 위에서 슈퍼를 언급하였지만, 사실 이러한 케이스는 일정 문제가 그닥 이슈이지 않던 과거에도, 시리즈의 총 작화 감독이 아니던 애니메이터들로부터 충분히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드래곤볼 Z’ 당시 ‘시마누키 마사히로’가 177, 182, 188화에서 전체적인 작화를 수정하였음에도 엔딩 크레딧에 이름이 나오지 않은 이유가 그러하였고, ‘미야하라 나오키,’ ‘야마무로 타다요시’ 등도 같은 작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캐릭터들을 문제없이 기존 디자인에 맞춰서 그릴 수 있는 훌륭한 애니메이터들이었다는 점입니다. 팬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은 ‘에비사와 유키오,’ ‘우치야마 마사유키’ 같은 이들에게 이러한 역할을 맡기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어쨌든 이 때 당시 Z는 대부분을 다른 스튜디오들로부터 외주를 받아 만드는 시스템이었고 그리하여 앞서 말한 것처럼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방영된 슈퍼에 비해 제작 스케줄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작업의 중요도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다시 드래곤볼 슈퍼로 돌아와, 슈퍼의 총 작화 감독은 총 세 명이 있습니다. 바로 야마무로 타다요시, ‘이데 타케오,’ ‘츠지 미야코’인데요.(물론 여기서 가장 높은 권위자는 캐릭터 디자이너 겸 작화 감수자인 야마무로입니다.) 야마무로는 팬들 사이에서도 워낙 잘 알려진 인물인 데다가 무엇보다 예전에 야마무로에 대한 글을 쓴 바가 있으니 차치하고, 오늘 저는 이데와 츠지에 대해 다뤄보려고 합니다.
이데 타케오는 두 말할 것 없는 드래곤볼 애니의 상징적인 인물 중 하나입니다. ‘나카츠루 카츠요시,’ ‘사토 마사키,’ ‘에구치 히사시’ 등과 함께 드래곤볼의 옛 캐릭터 디자이너였던 ‘마에다 미노루’의 작화팀의 일원으로서 활약한 바가 있는 이데는 ‘세이갸사,’ ‘스튜디오 주니오,’ ‘스튜디오 라이브,’ ‘라스트 하우스,’ ‘토에이 애니메이션’에 몸 담으며 드래곤볼 20개의 모든 극장판에 원화를 제공하였고, 드래곤볼 Z와 GT 당시 작화 감독으로 활약했으며, ‘신들의 전쟁,’ ‘부활의 F,’ 그리고 최근 ‘드래곤볼 슈퍼: 브로리’의 작화 감독을 맡았습니다. 다만 이러한 경험과는 별개로, 오늘날의 이데가 아주 스페셜한 애니메이터인가에 대해선 팬들은 물음표를 달 때가 있기도 합니다. 이데의 스타일은 캐릭터들의 귀의 모양과 사각턱으로 대표되며 이는 마에다 미노루에게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최근엔 눈썹을 굵게 그리는 편이기도 합니다.
또다른 총 작화 감독인 츠지 미야코는 나루토 등의 애니들에 많이 참여하였지만 드래곤볼 구력은 비교적 짧은 편입니다. 이데와 함께 부활의 F의 작화 감독을 맡으며 드래곤볼에 데뷔한 그녀의 스타일은 사실 팬들 사이에선 말이 좀 많습니다. 캐릭터들의 얼굴형은 둥글게 통통하고 턱은 상당히 뾰족한 편으로 이는 드래곤볼의 역대 캐릭터 디자이너들이자 팬들이 좋아하던 마에다, 나카츠루, 그리고 Z 시절의 야마무로 중 그 누구의 스타일과도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그 결과, 팬들이 오랫동안 드래곤볼에서 봐오며 익숙한 얼굴인 이데와 달리 츠지는 오늘날 야마무로 타다요시의 캐릭터 디자인과 맞아떨어짐에도 그 현재의 야마무로처럼 호불호가 갈리기도 합니다. 재밌게도 츠지는 야마무로를 대신하여 슈퍼의 베지트와 트랭크스 원기검의 설정화를 담당하기도 했는데요. 어쨌든 이렇게 팬들의 평가가 갈리는 츠지는 수정 작업에 있어 난관에 봉착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캐릭터들의 특징으로 들어가면 더더욱 심해지는데요. Z 시절 에비사와 유키오는 손오공을 그리는 데엔 큰 문제가 없었으나 에비사와 특유의 길고 삼각형스러운 스타일이 베지터에겐 상당히 별로였습니다. 같은 경우로, 츠지 미야코의 둥그런 스타일은 부르마 등의 여성 캐릭터들을 그리면 캐릭터들을 귀엽게 만드는 효과가 있지만 특히 손오반을 비롯한 남성 캐릭터들은 어중간해 보이며 오공 블랙 같은 빌런을 그릴 땐 공포감을 형성시키지 못했습니다. 캐릭터 디자인에서 벗어나지 않는 만큼 분명 못 그린 건 아니나 캐릭터들이 풍기는 분위기와 매력은 반감되는 것이죠. 과거엔 이러한 역할이 Z 당시의 야마무로나 시마누키였던 것을 생각하면 츠지의 제한적인 스타일은 분명 아쉬운 편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럼 이데 타케오가 무조건 츠지 미야코보다 나은 거냐’라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닙니다. 이데와 츠지는 각 회차마다 돌아가며 일을 맡는 편입니다. 지난 주에 이데가 투입됐다면 이번 주엔 츠지가, 그리고 다음 주엔 다시 이데가 맡는 식으로요. 이 때 그 회차의 작화 감독이 누구인가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드래곤볼 슈퍼 18화의 작화 감독은 ‘타테 나오키’였으며 이 때 투입된 사람은 츠지였는데요. 타테와 츠지는 둘 다 캐릭터들의 얼굴형을 둥글고 부드럽게 그리는 스타일이지만 타테는 츠지와는 달리 캐릭터들을 설정화와는 거리가 먼 ‘오프 모델’로 그리는 편으로 이는 팬들로부터 타테가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18화에선 이런 타테의 그림을 츠지가 온 모델 성향으로 수정하였고 그 결과, 캐릭터 작화는 상당히 깔끔해보였으며 타테의 그것이 희석되었습니다.(저는 개인적으로 타테의 소프트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편이기 때문에 아쉽기도 하지만요.) 이 둘은 궁합이 상당히 좋으며 이는 86화, 110화 등에서도 다시 한 번 증명되었죠. 한편 츠지가 투입된 회차의 작화 감독이 ‘마나베 슈이치로,’ ‘니이 히로타카,’ ‘카라사와 유이치’ 등처럼 츠지와 정반대로 캐릭터들을 날카롭고 각이 지게 그리는 애니메이터라면 한 회차의 스타일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풍경이 나와버리기도 합니다.
그런 반면, 이데는 타테와 함께할 때는 츠지보다 못하지만, 마나베처럼 날카로운 스타일의 애니메이터와는 더 잘 맞아 떨어지는 카드입니다. 이것만 봐도 총 작화 감독은 단순히 누가 더 잘 그리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을 좋아하느냐는 각자의 취향에 달린 일입니다. 그러나 누구를 더 좋아하고, 누구를 덜 좋아하든 이데 타케오와 츠지 미야코 둘 다 훌륭한 애니메이터이며 드래곤볼 슈퍼에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은 절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의 시리즈에서는 이들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