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 저는 제가 의사라는 사실이 퍽 만족스럽습니다.
그러나 제 노력과 활동의 본질은 아픔과 죽음, 질병과 인간의 고통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여기서, 구별이 필요하다. 아픔과 질병과 고통은 같은 것이지만 죽음은 완전히 다르다.
서양식 사고에서는 아픔, 병, 고통, 죽음이 모두 함께 있다. 한 묶음으로 포장되어 있다. 거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죽음은 아름답지만 아픔은 아니다. 죽음은 고통이 아니다. 병도 아니다.
죽음은 아름답다. 죽음은 그대의 생명을 끊는 검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 피는 꽃, 궁극의 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절정이다. 죽음은 생명의 나무의 꽃이다. 그것은 삶의 끝이 아니라 최고 지점이다. 그것은 궁극의 오르가즘이다.
죽음에 잘못된 것은 없다. 그것은 아름답다. 그러나 인간은 사는 법과 죽는 법을 알 필요가 있다.
삶의 예술과 죽음의 예술이 있는데, 뒤의 예술이 앞의 예술보다 더 값지다.
그러나 뒤의 것은 앞의 것을 알 때만 알 수 있다. 바르게 사는 법을 아는 사람만이 바르게 죽는 법을 안다.
그때 죽음은 신성으로 가는 문이다.
그러므로 먼저 할 일은 죽음을 떼어놓는 일이다. 아픔과 병과 고통에 대해서만 생각하라,
그대는 죽음과 싸울 필요가 없다. 그것이 서양의 사고와 서양의 병원, 서양 의학에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항해서 싸우고 있다. 사람들은 병원에서 근근이 약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죽을 때가 되었는데도 사람들은 불필요하게 생명을 연장하려 애쓴다.
의학적 지원에 의해 그들의 죽음은 연기된다.
그들은 쓸모가 없다. 그들에게 생명은 쓸모가 없다. 게임은 끝났고 그들은 끝장이 났다.
지금 그들의 생명을 붙들어 놓는 것은 그들을 더 고통스럽게 할 따름이다.
때로는 혼수상태에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인간은 혼수상태에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죽음을 적대시하는 서양 사고에서는 이런 혼수상태가 커다란 문제가 된다.
어떤 사람이 혼수상태에서 소생하지 못한 채 몇 년이고 생존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그저 숨만 쉬고 있는 송장이다.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뿐 삶은 없다.
무엇이 핵심이겠는가? 왜 죽게 내버려두지 못하는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적이다. 어찌 적에게, 죽음에게 굴복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서양 의학계에는 큰 논란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사람을 죽게 놔두어야 하는가? 그 사람이 스스로 죽을지 말지 결정하도록 허용해야 하는가?
가끔 본인이 무의식 상태라서 결정할 수 없을 때가 있을 수도 있는데 이때는 가족이 그의 죽음을 결정하도록 허용해야 하는가?
그렇지만 사람이 죽는 것을 돕는 일이 옳은 것인가? 서양의 사고에는 큰 두려움이 일어난다. 죽게 놔둔다?
그건 그대가 누군가를 살해한다는 것을 뜻한다! 과학 전체가 그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제 이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기쁨이 없고 춤이 없고 창조성이 없고 사랑이 없는 한, 삶 자체는 아무 가치가 없다.
삶 자체만으로는 무의미하다.
그저 사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의미가 있고, 죽는 것이 자연스러울 때 의미가 있으며, 죽는 것이 아름다울 때 의미가 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잠을 잘 때 값어치가 있듯이. 죽음은 잠의 일종이다.
깊은 잠. 그대는 새로운 육체와 새로운 메커니즘, 새로운 재능과 새로운 기회들과 새로운 도전들과 함께 다시 태어날 것이다.
현재의 몸이 늙었으므로 떠나야 한다. 몸은 단지 거처일 뿐이다.
우리 동양에서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죽음은 적이 아니라 친구다. 죽음은 그대에게 휴식을 준다 그대는 피곤하다.
그대는 자신의 삶을 살았고, 삶에서 알 수 있는 모든 기쁨을 다 알았으며, 자신의 촛불을 완전히 태웠다.
이제 어둠 속으로 들어가 잠시 휴식하고 나면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죽음은 그대를 신선하게 재생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 죽음은 적이 아니다.
둘째, 의식적으로 죽을 수 있다면 죽음은 가장 위대한 체험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에만 의식적으로 죽을 수 있다. 만일 죽음에 저항한다면 그대는 엄청나게 두려워질 것이다.
너무 두려워져서 그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몸 속에서 화학성분이 분비되어서
무의식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자연적인 메커니즘이 있다
인간에게는 인내가 불가능한 어떤 지점이 있고, 그곳을 넘어서면 의식을 잃게 된다.
그리하여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죽어서 위대한 순간을, 모든 순간 중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을 놓친다.
그것은 사마디이고 사토리이다.
그것은 그대에게 일어나는 명상이다. 그것은 자연의 선물이다.
만일 그대가 깨어 있어서 자신이 육체가 아님을 볼 수 있다면 ‥‥
그대는 보아야 한다 육체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곧 그대는 자신이 육체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이 분리되어 있는 것을 볼 것이다.
그때 그대는 그대가 마음과도 분리되고 있는 것을 볼 것이다. 그리고 나서 마음은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대는 바로 각성의 불꽃이 되며, 이것은 존재하는 것 중에 가장 위대한 열락이다.
그러니 죽음을 아픔이나 병이나 인간의 고통으로 생각하지 말라
-OS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