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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死) 삶, 죽느냐 사느냐_엡2:13~22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2.04.03|조회수171 목록 댓글 0

삼일만세운동 기념식이 끝나가던 즈음, 경찰이 총을 쐈습니다. 이유가 불분명한 발포로 여섯 명이 죽었습니다. 6명 중엔 초등학생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947년 3월 1일 제주도 관덕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제주 유지들과 도민들이 항의하자, 경찰은 오히려 도민 2,500여 명을 검거해 버립니다. 휴화산 제주 섬이 부글거렸습니다. 마그마가 다시 흐를 것 같았습니다.

 

1년 뒤 1948년 5월 10일 남한단독선거를 앞두고, 4월 3일 남로당 무장대가 봉기했습니다. 단독선거로 인한 민족분단 반대가 봉기의 명분이었습니다. 이른바 4․3의 시작입니다.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4․3은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입니다.

 

7년 7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최소 2만 5천 명이 희생됐습니다. 당시 제주 인구의 십 분의 일입니다. 희생자 중 10%는 ‘산사람’에 의해 죽었다고 합니다. 당시 대정교회 이도종 목사도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중산간 지역을 넘어 자전거로 이동하던 중, ‘산사람’들에 의해 희생당했습니다. 희생자의 90%는 당시 미군정의 지도를 받던 경찰과 서북청년단에 의해 무차별 학살당했습니다.

 

죽은 사람의 수를 비교하여, ‘국가’에 의한 폭력과 ‘산사람’들에 의한 만행을 저울질할 순 없을 것입니다. 다만, 사실은 분명합니다. 제주도에 내렸던 미군정 당국과 일제 시절에 뿌리를 둔 경찰과 서북청년단에 의한 2만이 훌쩍 넘는 죽음은 분명 학살입니다. 미군정과 서북청년단이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규정했던 건, 제부도민들이 남한 단독정부를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해방된 한반도는 이남과 이북으로 분단된 나라가 아니라, 하나의 대한민국이어야 한다는 게 제주도민들의 뜻이었습니다.

 

서북청년단은 대부분 이북에서 월남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서북청년단이 영락교회 청년들 중심이었다는 주장은 논란거리입니다. 영락교회가 서북청년단 조직을 주도하지 않았더라도 서북청년단 상당수가 그리스도인이었음은 사실입니다. ‘그 그리스도’인 청년들이 좌익 색출을 명분으로 참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고향 이북에서 공산당에게 땅을 빼앗기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인민재판에 가족을 잃기도 했던, 서북청년단은 한을 풀어야 했을까요. 해방 후, 혼란의 시기에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했을까요. 서북청년단의 자리에 내가 살았다면, 나는 예수의 말씀대로 ‘칼을 도로 칼집에’ 넣었을까요.

 

명분이 무엇이든, 죽임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죽여서 지켜야할 체제, 누군가를 죽여서 성공해야할 혁명 따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악한이라도 죽여도 되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할 요량으로 수전노 전당포 노인을 죽이다가 구제 대상이라 할 수 있는 백치 여인을 함께 죽이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어리석음을 고발합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수전노를 죽이려다 가난한 여인을 죽였듯, 우리 역사는 사회주의자들을 죽인다는 명분으로, 산간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살인하지 말라"하신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무수히 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제주도 사람들은 4·3 이후에 죽은 가족들의 장례를 치르며 제사를 지내며 곡소리도 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이고, 아이고’하는 곡을 하는 것만으로 국가 권력에 저항하는 불령선인이 되어 끌려가 조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아무도 4․3을 말하지 못하고 30년이 지났을 때, 작가 현기영이 1978년 ‘순이 삼촌’을 발표하면서 처음으로 세상에 4․3을 알렸습니다. 작가 현기영은 ‘순이 삼촌’ 때문에 끌려가 고문을 당해야 했구요.

 

‘순이 삼촌’의 한 대목입니다. 제주 북촌리에서는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이면 “이집 저집에서 그 청승맞은 곡성이 터지고 거기에 맞춰 개 짖는 소리가 밤 하늘로 치솟아오르곤 했다. 한날한시에 이집 저집 제사가 시작되는 것이었다...오백위 가까운 귀신들이 밥 먹으러 강신하는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 한 마을에서 오백 명이 한 날 학살당한 것입니다. 학살당한 사람들을 밭에 버렸는데, 그해 밭에서 자란 고구마는 사람 머리만큼 컸다고 합니다.

 

강요배, 젖먹이

 

4․3 관련 사건은 제주도 전역에서 있었습니다. 제주도 전체가 ‘순이 삼촌’의 배경인 북촌리와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휴화산 제주엔 마그마가 흐르지 않지만, 마그마보다 더 붉고 뜨거운 피가 흘렀습니다.

 

해방 이후 한반도에서 사회주의와 기독교가 충돌해 무수한 사람들이 죽고 죽었습니다. 사람을 죽여 지켜야 하는 체제가 뭐 중요하고, 사람을 죽이며 완수해야 하는 혁명을 왜 해야 할까요? 칼 마르크스( Karl Marx)가 어떤 세상을 꿈꿨든, 막스 베버(Max Weber)가 지키려는 게 무엇이든, 사람의 생명을 죽이고 죽여야 할 만큼 중한 건 아닙니다.

 

중요한 건 오직 평화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평화를 누리는 하나입니다. 에베소서 2장 15절과 16절입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그리스도를 통해 온 세상 사람들이 하나로 연결됩니다.

 

옛날로 치면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였듯, 우리에겐 이남과 이북이 하나입니다. 기독교와 사회주의가 하나입니다. 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가 하나입니다. 뭍과 섬이 하나입니다. 모두 다 사람입니다. 모두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이유로도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주민과 선주민이 하나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입니다. 모두 다 사람입니다.

 

총을 겨누진 않지만, 죽고 살 듯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향한 정치인과 대중들의 말에 살의가 있다면 지나칠까요? 혐오 표현은 사람을 죽이는 말입니다. 70년 전 제주도민들을 희생양 삼았던 것처럼, 지금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을 희생양 삼아야 유지해야 할 만큼 허약하지 않건만, 장애인들을 희생양 삼으려는 세력이 있고, 그런 정치 세력에 휩쓸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을 인질 잡고 볼모 삼는다고 말하는 정치인 이준석의 입 냄새를 견디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그의 입냄새가 불쾌합니다.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하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였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그가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그렇게 하는 것은, 네가 그의 머리 위에다가 숯불을 쌓는 셈이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롬12:18~22).」 

 

입냄새를 견디며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입술에선 향기 나면 좋겠습니다. 

 

글/ 민들레교회 목사 김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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