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감응 하다
-몽돌을 추모함
박상봉
늦은 밤 혼자서 말의 감옥에 갇혀 시의 속살 더듬다가
몽돌과 동기감응(同氣感應)하는 날이 있다
세상의 짐 내려놓고 영천군 임고면 고향 땅으로 돌아가
야트막한 산비탈 풀숲에 몸 눕히고 쉬는 눈 밝고 입 바른 사람,
투명한 낯빛과 후박한 턱수염 눈에 선하다
인간이 더럽힌 말의 얼굴 닦아주고, 멍든 말의 가슴 어루만지던
부드러우나 엄한 손가락으로 가리켜 세운 말법이
꿈틀꿈틀 나뭇잎 되살아나듯 온몸 뒤틀어 흔드는 밤에
말의 자궁 들쑤시고, 말의 속살 발라내고, 말의 감옥 물어뜯고,
말의 내장 헤집던 숨결, 맑은 물소리처럼 가깝게 들린다
금오산 중천에 둥글게 떠오른 달이,
강변로 수양벚나무 활짝 핀 꽃길이, 직지사 뒷길 청노루귀 꽃밭이,
맷돌로 팍팍 갈아낸 그의 결 고운 문장으로 환하다
그 사람 우리 곁을 떠났으나
붓으로 찍어놓은 지칭개 꽃빛 바람 따라 흔들리는 것 듣고 있으면
흙으로 돌아간 살이 동기감응하는 형식임을 알겠다
*
오늘이 평론가 김양헌 선생 기일이다. 벌써 13주기를 맞았다.
영천시 임고면 고들빼기마을 복사꽃밭 위에 누워있는 문학평론가 故 김양헌 형은 생전에 야생화를 무척 좋아했다.
우리 시 속에 순순한 우리말이 멋지게 구사되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또 바랐던 가장 아름다운 시인 몽돌이 붓으로 찍어놓은 지칭개 꽃빛 바람 따라 흔들리는 소리 자그락자그락 들린다.
대구경북의 대표적인 문학평론가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다 2008년 52세로 생을 마감한 故 김양헌 선생은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20년 동안 두 권의 평론집을 엮어냈으며, 수백 편에 이르는 평론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문단활동을 펼쳤다.
나는 고인이 관여했던 목요시학회와 수요문학회 등에서 그와 가깝게 지내며 문학활동을 함께 했다.
곧 나올 나의 두 번째 시집『불탄 나무의 속삭임』에 수록될 몽돌을 추모한 시를 교정 보면서 4년 전에 열린 故 김양헌 선생 유고 평론집 출판기념회 때 찍은 사진을 더듬더듬 더듬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