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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나루 동작진

우리나라 철도시발지 노량진역

작성자조영희|작성시간14.02.21|조회수311 목록 댓글 0

 

 

우리 나라 철도는 1899년 9월 18일 개통되었다.
철로는 노량진에서 인천까지 33.2킬로미터의 거리에 놓였다.
'모갈이'라는 증기 기관차가 운행되었다.
당시 열차 속도는 겨우 시속 20~22킬로미터였다고 한다.
요즘 마라톤 선수의 달리기 속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요금은 일등석이 1원 50전, 이등석이 80전, 삼등석이 40전 정도였다.
그 당시 쌀 한 말 값이 50전 정도로 열차 요금이 매우 비싼 편이었다.
지금 노량진역 구내 북쪽 한강철교를 건너기 직전에
이곳이 철도시발지 였음을 알리는 기념비가 서 있다.
1975년 철도 창설 76주년을 맞이하여
당시 철도청장 이동화가 이 건립한 기념비이다.
전면에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의 휘호가 있고
후면에는 서정주 시인의 글이 새겨져 있다.

 

 


서정주의 철도시발지의 비문 전문을 옮겼다.
鐵道始發地
1899년 9월 18일 鐵道 歷史의 章이 열리고
京仁 33.2km의 鐵道가 뚫린 그 날로부터 76週年
鐵馬라 불리우던 蒸氣時代를 거쳐 디젤 機關이 鐵길을 누비더니
이어 電鐵의 幕이 휘날리며 鐵道가 盤石위에 오른
오늘은 못내 그 날의 感激을 함께 되새기며
由緖깊은 鐵道 嚆矢의 搖籃地 여기 漢江 마루에
이 記念碑를 세워 기리 새 모습의 鐵道를 기리리라.
揮毫 : 國務總理 金鍾必
글 : 詩人 徐廷杜
建立 : 鐵道廳長 李東和
1975. 9. 18

 

 

1894년(고종 31년) 2월 13일 고종이 헌릉과 인릉에 행차하기 위해 배다리를 노량에 만들도록 명을 내린 것을

마지막으로 배다리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897년 3월 29일 한강 최초의 근대식 교량인 한강철교의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미국인 제임스 모스가 고종에게서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철도 부설권을 얻어 한강을 연결하는 교량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공사 도중 인력난과 재정난을 겪던 제임스 모스는 일본의 압력으로 결국 부설권을 그들에게 넘기고 만다.

1900년 7월 5일 마침내 총길이 628.9m의 한강철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강철교가 놓인 지점은 바로 정조 때 주교사에서 배다리의 설치 장소 중 가장 적합한 곳으로 꼽았던 노들나루가 있던 곳이었다.

노들강변 교통중심지에 철도역이 들어섰다.

노량진역은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있는 경부선의 철도역이다.

1899년 9월 18일 우리나라 최초로 노량진~(인천)제물포역간 경인선 33.2km의 철도가 개통된다.

그때부터 영업을 한 노량진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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