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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부공씨 인물편

공 린 (孔 麟)

작성자孔 在 晩 (76 世孫)|작성시간06.03.16|조회수234 댓글 1
곡부공씨(曲阜孔氏) 린(麟, 1511-1578)이 경기도 수원에서 아들 다섯을 데리고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에 들어와 살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그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다.

공린(孔麟)은 선조(宣祖) 초기에 사옹원 직장(司饔院 直長)을 지냈으며 아들 가운데 기문(奇文)은 현감을 지냈고, 기무(奇武), 기현(奇賢)은 자식이 없었고, 기우(奇禹)는 임진왜란 때 순절하여 지평(持平)에 벼슬이 주어졌다. 린은 고려 말 8청(淸)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어촌(漁村)의 6세손이다. 어촌은 휘가 부(俯), 자는 백공(伯恭)으로 포은(圃隱) 정몽주와 목은(牧隱) 이색 등과 교우하였다. 조선의 조정(朝廷)에서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을 제수했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문(奇文)은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행조봉대부현감(行朝奉大夫縣監)을 지냈으나 자세한 행장(行狀)은 전하고 있지 않다.
기우(奇禹)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평소 친분이 있던 보은(報恩) 현감 중봉(重峰) 조헌(趙憲)의 휘하에 들어갔다. 공주 전투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하니 공의 나이 36세였다.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여 초혼(招魂)하여 의관(衣冠)을 북이면 용전동에 장사지냈으며 나라에서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정5품)의 벼슬을 주었다.

만취당(晩翠堂) 희성(希聖, 1617-1682)은 자가 화지(和之)로 현감 기문(奇文)의 손자다. 그는 송암(松巖) 기정익, 청류당(淸流堂) 변휴와 더불어 교유하며, 함께 도학을 닦았다. 송암 기정익이 쓴 제문(祭文)에 “하늘에서 타고난 그대 성품 순수하고, 얼음처럼 맑은 기품이요, 옥처럼 고운 자질이로다. 말은 더듬듯이 신중했고, 행실은 보통 사람과 달랐다.”고 했다.

취송정(醉松亭) 지문과 신모재(愼慕齋) 지복, 학포(學圃) 지인은 대집(大集)의 아들로 삼형제가 모두 문학과 도학을 숭상하였다.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이 쓴 행장에 따르면 지문(志文, 1753-1826)은 자가 헌지(憲之)로 무과에 급제 판관(判官)에 이르렀다. 지복(志馥, 1760-1829)은 자가  관지(貫之)로 다섯 살의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3년상(3年喪)이 끝날 때까지 한번도 이를 드러내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며, 평생토록 악한 일을 보면 더럽게 여기고, 곤궁한 이웃을 보살피며 스스로는 늘 부족하다고 했다고 한다.
지인(志仁, 1762-1831)은 양정(兩庭, 생가와 양가)을 모두 섬기되 그 도리를 다하였고, 스스로 벼슬에 나가지 않고, 오직 후학을 가르치고 인도하는데 전념했다고 한다.

도봉(道峰) 공학원(學源, 1869-1939)은 학포의 증손자로 송사 기우만의 제자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5,6세에 이미 문리(文理,한문을 스스로 해석하는 능력)를 터득했다. 동곡(東谷) 김준식이 쓴 묘갈명(墓碣銘)에 의하면 그는 경술국치(庚戌國恥,한일강제합병)이 일어나자 세상과 인연을 끊고, 떠다니다 잠시 고향에 들러 조상의 선영(先塋)에 오니 여러 학자들이 붙잡아 후학을 가르치고 글을 쓰는 것으로 일생을 마쳤다. 그의 저서로 <경의기문> 등 11권 5책이 전하고 있다.

율재(栗齋) 공상원(商源, 1861-1917)은 도봉 학원의 종형(從兄)이다. 경포재(景圃齋)를 지어 후학을 가르쳤으며 사산사(泗山祠)를 건립하는데도 많은 기여를 했다. 경술국치 때는 동토삼천세하지 가생체루불건긍(東土三千稅何地 賈生涕淚不乾矜, 조선 삼천리의 세금을 어디에 낼거나 기생의 눈물이 옷깃 마를새 없다)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사산사(泗山祠)는 마을 서쪽에 있으며 곡부공씨(曲阜孔氏)가 마을에 들어오면서부터 가묘(家廟)로 향사(享祀)해 왔으나 향교의 제향(祭享)이 금해지자 도봉 공학원과 장성의 유림(儒林)이 중심이 되어 창건했다. 공자(孔子)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 그리고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의 영정을 모셨으며, 1959년 복원하면서는 안자(顔子), 증자(曾子), 맹자(孟子)를 배향하였다. 경내에는 신실(泗山祠), 강당(泗山齋), 내삼문(內三門) 등이 있다.

서림사(書林祠)는 1932년 도봉 공학원이 서림정사를 건립하여 그의 자손들과 후학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1970년 장성 유림의 발의로 도봉의 스승인 송사 기우만을 주벽(主壁)으로 도봉 공학원을 기리기 위해 창건했다. 1990년 도봉 공학원의 제자인 직헌(直軒) 변무연(邊武淵, 1893-1965)을 추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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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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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곰병장 | 작성시간 20.08.09 누가 쓴 글인지는 몰라도 너무 가공이 많읍니다 무과 방목등을 확인해야지요 공린의 부친과 조부 .증조부는 누구인자
    기록을 해야하며 현 족보를 보면 소 - 녀 -부 -달 - 성길 - 석 ㅡ 용 - 개손 - 인백 - 승원 - 정록 -
    내용이 다름니다
    근거없는 글은 자제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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