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0년(원종 11) 삼별초의 난 때 장군으로 출전하였으나,
금성(錦城: 羅州)이 7일간 공격을 받았는데도 이를 구하지 않았다 하여,
이듬해 김방경(金方慶)의 탄핵으로 삭직되었다.
1272년 다시 기용되어 안남도호부사(安南都護府使)가 되었으나
삼별초에게 잡히고, 이듬해 돌아와 대장군이 되었다.
1283년(충렬왕 9) 왕명으로 염승익(廉承益)과 함께 현화사(玄花寺)
남계원(南溪院) 왕륜사석탑(王輪寺石塔)을 수리하였다.
후에 밀직사부지사(密直司副知事)에 올랐고,
1284년 성절사(聖節使)로 원(元)나라에 다녀왔으며,
1287년 삼사판사(三司判事)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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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연구소(孔子硏究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