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뫼가 여는 아침窓] 5월에 다시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
- 입력 2021.05.13 16:09
- 수정 2021.05.13 17:35
김영훈 대전문인총연합회 명예회장
[금강일보] 가정의 달 5월이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부간의 정을 돈독히 하며 그 어느 때보다 자녀 사랑에 마음을 쓰는 5월이다. 우리에게 가족보다 소중한 이들은 없다. 피붙이 사랑이 제일이다.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간의 사랑이 삶의 바탕을 이루기 때문이다. 가정은 이성지합(二姓之合)에서 비롯되고 오랜 동안 부계(父系) 중심으로 유지돼 결혼 후 자녀를 출산하면 의당 아버지 성(姓)을 따랐다. 그동안 고금동서(古今東西)를 막론하고 오래도록 그래왔다.
그런데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자녀가 태어나면 출생신고 때 어머니 성을 따를 수 있도록 법을 바꾼단다. 지난달 27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보면 오는 2025년까지 부성(父姓) 우선 원칙을 폐기하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가족제도에 관한 통상적 개념을 통째로 흔들 만큼 충격적인 법 개정 소식이다. 김대중 정부 때 남성 위주의 호적등·초본이 사라진 후 가족관계증명서가 상용화되는 요즘이지만 우리 사회의 남녀평등에 관한 또 한 번의 획기적인 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웃 일본이나 서양 여러 나라에선 여자가 시집을 가면 아예 자기 성을 버리고 남편 성을 따르는 제도가 자리를 잡았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남성 우위의 전통적 유교사회에도 혼인 후 여자가 자기 성을 유지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는 여권이 분명히 존재했던 나라였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이제는 자녀 성마저도 아버지 편이 아닌 어머니 쪽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되는 세상이 온다.
그뿐만이 아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살거나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비혼동거인도 ‘배우자’로 인정하게 되며, 그동안 미혼부의 자녀 출생신고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도 간소화한단다.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가족법이 탄생하는 셈이다.
그러잖아도 요즘 젊은이들은 혼인을 기피한다. 비혼주의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로, 결혼을 한다 해도 자녀 출산을 선호하지 않는다. 결혼 연령도 40대 이후로 늦어져 가임기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낳는다 해도 아들이든 딸이든 하나만 낳고 만족하는 세상이 됐다. 그 바람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출산율 0.75로 최하위이고, 세계적으로도 170위를 기록하고 있다. 앞으로 30~40년 후 우리나라 인구 추이가 어떤 위기로 빠져들지 모르는 암담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 ‘부성 우선’ 가족법이 사라지고 부성이든 모성이든 택일을 하는 세상이 되면 어떤 세상이 올지 필자는 얼른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러잖아도 신모권사회가 도래하는 중이라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만큼 가정에서의 여권 신장은 물론 국가나 사회에서의 여성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여성이 생명의 근원임엔 틀림이 없다. 사랑하는 두 성이 만나 여체에 씨를 뿌리고 자궁에서 잉태한 후 열 달 동안 성장해 세상에 나오는 이치를 우리는 신의 섭리로, 신의 선물로 엄숙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제 첨단과학의 발달로 임신과 출산은 완전히 사람의 영역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부부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에게 패륜을 저지르는 일이 툭 하면 언론에 보도돼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이혼이 이제 일상이 돼 가고 있는데, 부성 우선이 사라지는 가족법 시행 후 어떤 세상이 올지 그게 걱정이다.
성인(聖人)도 세속을 따른다고 한다. 그동안 시대는 꾸준히 변해왔다. 그때마다 인간은 변화하는 시대에 잘 적응하며 살아왔다. 괜한 노파심으로 필자 혼자 가슴을 졸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자녀가 하나뿐일 경우 그 자녀를 부성을 따르게 하느냐, 모성을 따르게 하느냐는 문제로 가정의 갈등이 고조될 세상을, 그날의 혼란을 염려하며 이 5월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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