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무덤서 두개골 확인…"백제인 모습 복원"
도굴되지 않은 굴식돌방무덤서 발견…공동연구 통해 성별과 사망시점 등 분석

충남 부여군 초촌면 응평리 산1-6번지 도굴되지 않은 백제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에서 두개골 등이 발견돼 백제인의 옛 모습을 복원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굿모닝충청=김갑수 기자)
[굿모닝충청 부여=김갑수 기자] 충남 부여군 초촌면 응평리 산1-6번지 도굴되지 않은 백제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에서 두개골 등이 발견돼 백제인의 옛 모습을 복원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황인호, 연구소)는 지난 6월부터 긴급발굴조사를 시행한 결과 인골 2개(두개골)와 금동 귀걸이 등을 확인했다고 2일 밝혔다.
연구소에 따르면 응평리 일원은 백제 사비기 고분이 다수 분포하고 있어 도성의 동쪽 외곽 거점지역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발견된 고분은 토지 경지 정리 과정에서 천장석이 일부 훼손되면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문화재청, 부여군, 토지소유자간 긴밀한 협의를 거쳐 긴급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됐다는 게 연구소의 설명이다.

내부에는 인골(두개골)과 금동제 귀걸이 1개, 관고리 등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었고, 도굴의 흔적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내부에는 인골(두개골)과 금동제 귀걸이 1개, 관고리 등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었고, 도굴의 흔적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고분은 현실(玄室: 시신을 안치한 방)과 연도(羨道: 고분의 입구에서 시신을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길), 묘도(墓道: 무덤의 입구에서부터 시신을 두는 방까지 이르는 길)로 이루어졌으며, 현실의 오른쪽에 연도가 위치한 모양새로 확인됐다.
현실의 규모는 길이 220cm, 너비 110cm, 높이 115cm이고 단면 형태는 육각형인데, 이러한 양상은 백제 사비기에 유행했던 전형적인 석실묘의 형태다. 고분은 잘 다듬은 대형의 쪼갠 돌(판석, 板石)을 이용해 축조됐다.
금동제 귀걸이는 피장자의 위계와 신분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귀족무덤으로 추정되는 부여 능안골고분군과 염창리고분군 등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2개체의 인골과 묘도부 토층에서 확인된 두 차례의 굴광 흔적은 당시 매장풍습인 추가장(追加葬: 한 번 매장한 이후 추가로 매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현실의 규모는 길이 220cm, 너비 110cm, 높이 115cm이고 단면 형태는 육각형인데, 이러한 양상은 백제 사비기에 유행했던 전형적인 석실묘의 형태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수습된 인골에 대해서는 고고학, 법의인류학, 유전학, 생화학 등 관련 전문가와 공동연구를 진행, 성별과 나이, 사망시점 등을 분석하고, 백제시대 사람의 모습을 복원하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또한 출토된 부속구를 기반으로 목관을 복원화고, 입관과 운구 등 매장습속도 규명할 방침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앞으로도 부여군과 함께 중요 유적뿐만 아니라 비정기적으로 발견되는 매장문화재에 대한 협업체계를 구축, 국민이 빠르게 체감할 수 있는 문화재 긴급조사를 수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도굴되지 않은 굴식돌방무덤서 발견…공동연구 통해 성별과 사망시점 등 분석
- 김갑수 기자
- 승인 2021.07.0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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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군 초촌면 응평리 산1-6번지 도굴되지 않은 백제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에서 두개골 등이 발견돼 백제인의 옛 모습을 복원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굿모닝충청=김갑수 기자)
[굿모닝충청 부여=김갑수 기자] 충남 부여군 초촌면 응평리 산1-6번지 도굴되지 않은 백제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에서 두개골 등이 발견돼 백제인의 옛 모습을 복원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황인호, 연구소)는 지난 6월부터 긴급발굴조사를 시행한 결과 인골 2개(두개골)와 금동 귀걸이 등을 확인했다고 2일 밝혔다.
연구소에 따르면 응평리 일원은 백제 사비기 고분이 다수 분포하고 있어 도성의 동쪽 외곽 거점지역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발견된 고분은 토지 경지 정리 과정에서 천장석이 일부 훼손되면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문화재청, 부여군, 토지소유자간 긴밀한 협의를 거쳐 긴급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됐다는 게 연구소의 설명이다.

내부에는 인골(두개골)과 금동제 귀걸이 1개, 관고리 등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었고, 도굴의 흔적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내부에는 인골(두개골)과 금동제 귀걸이 1개, 관고리 등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었고, 도굴의 흔적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고분은 현실(玄室: 시신을 안치한 방)과 연도(羨道: 고분의 입구에서 시신을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길), 묘도(墓道: 무덤의 입구에서부터 시신을 두는 방까지 이르는 길)로 이루어졌으며, 현실의 오른쪽에 연도가 위치한 모양새로 확인됐다.
현실의 규모는 길이 220cm, 너비 110cm, 높이 115cm이고 단면 형태는 육각형인데, 이러한 양상은 백제 사비기에 유행했던 전형적인 석실묘의 형태다. 고분은 잘 다듬은 대형의 쪼갠 돌(판석, 板石)을 이용해 축조됐다.
금동제 귀걸이는 피장자의 위계와 신분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귀족무덤으로 추정되는 부여 능안골고분군과 염창리고분군 등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2개체의 인골과 묘도부 토층에서 확인된 두 차례의 굴광 흔적은 당시 매장풍습인 추가장(追加葬: 한 번 매장한 이후 추가로 매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현실의 규모는 길이 220cm, 너비 110cm, 높이 115cm이고 단면 형태는 육각형인데, 이러한 양상은 백제 사비기에 유행했던 전형적인 석실묘의 형태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수습된 인골에 대해서는 고고학, 법의인류학, 유전학, 생화학 등 관련 전문가와 공동연구를 진행, 성별과 나이, 사망시점 등을 분석하고, 백제시대 사람의 모습을 복원하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또한 출토된 부속구를 기반으로 목관을 복원화고, 입관과 운구 등 매장습속도 규명할 방침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앞으로도 부여군과 함께 중요 유적뿐만 아니라 비정기적으로 발견되는 매장문화재에 대한 협업체계를 구축, 국민이 빠르게 체감할 수 있는 문화재 긴급조사를 수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김갑수 기자
- 승인 2021.07.0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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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부여=김갑수 기자] 충남 부여군 초촌면 응평리 산1-6번지 도굴되지 않은 백제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에서 두개골 등이 발견돼 백제인의 옛 모습을 복원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황인호, 연구소)는 지난 6월부터 긴급발굴조사를 시행한 결과 인골 2개(두개골)와 금동 귀걸이 등을 확인했다고 2일 밝혔다.
연구소에 따르면 응평리 일원은 백제 사비기 고분이 다수 분포하고 있어 도성의 동쪽 외곽 거점지역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발견된 고분은 토지 경지 정리 과정에서 천장석이 일부 훼손되면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문화재청, 부여군, 토지소유자간 긴밀한 협의를 거쳐 긴급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됐다는 게 연구소의 설명이다.

내부에는 인골(두개골)과 금동제 귀걸이 1개, 관고리 등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었고, 도굴의 흔적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내부에는 인골(두개골)과 금동제 귀걸이 1개, 관고리 등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었고, 도굴의 흔적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고분은 현실(玄室: 시신을 안치한 방)과 연도(羨道: 고분의 입구에서 시신을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길), 묘도(墓道: 무덤의 입구에서부터 시신을 두는 방까지 이르는 길)로 이루어졌으며, 현실의 오른쪽에 연도가 위치한 모양새로 확인됐다.
현실의 규모는 길이 220cm, 너비 110cm, 높이 115cm이고 단면 형태는 육각형인데, 이러한 양상은 백제 사비기에 유행했던 전형적인 석실묘의 형태다. 고분은 잘 다듬은 대형의 쪼갠 돌(판석, 板石)을 이용해 축조됐다.
금동제 귀걸이는 피장자의 위계와 신분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귀족무덤으로 추정되는 부여 능안골고분군과 염창리고분군 등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2개체의 인골과 묘도부 토층에서 확인된 두 차례의 굴광 흔적은 당시 매장풍습인 추가장(追加葬: 한 번 매장한 이후 추가로 매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현실의 규모는 길이 220cm, 너비 110cm, 높이 115cm이고 단면 형태는 육각형인데, 이러한 양상은 백제 사비기에 유행했던 전형적인 석실묘의 형태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수습된 인골에 대해서는 고고학, 법의인류학, 유전학, 생화학 등 관련 전문가와 공동연구를 진행, 성별과 나이, 사망시점 등을 분석하고, 백제시대 사람의 모습을 복원하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또한 출토된 부속구를 기반으로 목관을 복원화고, 입관과 운구 등 매장습속도 규명할 방침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앞으로도 부여군과 함께 중요 유적뿐만 아니라 비정기적으로 발견되는 매장문화재에 대한 협업체계를 구축, 국민이 빠르게 체감할 수 있는 문화재 긴급조사를 수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