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북한의 사회체제를 모르는 나로서는
아래 기사내용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은 모르겠다.
그런데 북한의 화폐개혁 운운할 때의 찌라시들의 보도들을 통해 알려진 바로는.....
북한의 탄광노동자들의 월급(=배급 외 용돈 성격의 생활비)이 가장 많아서....
쉬운 경노동 노동자 월급(평균 2000원) 보다 훨씬 많아서
북한돈 5000원 정도 하는 것으로 안다.
말하자면....
북한의 탄광노동자들 월급이...시군 당간부급 월급과 같다고 한다.
즉, 북한에서 탄광노동자란.....고액 봉급자라는 말이다.
즉, 남한 반공교육에서 지옥같은 "아오지 탄광" 운운은 모두 거짓말이라는 말이다.
탄광노동자들이 중노동이라고 해서 월급도 많고
노동시간도 그만큼 짧으며, 나아가 복지수준도 높다고 한다.
그러니 많은 북한사람들이 기꺼이 탄광노동자들이 되겠다고
자원할 것 같다. 아마도....아래 기사 내용은 그런 내막을
은근히 폭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추측된다.
조선일보 | 강영수 기자
북한의 최대 '명절'인 16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생일에 북한 대부분 지역에서는 초라한 '명절공급'만 주어졌지만, 함경북도 무산광산의 직원들은 푸짐한 특별 '명절공급'을 받아 눈길을 끌고 있다고 탈북자단체인 NK지식인연대가 18일 보도했다. 최근 중국에 대한 철광석 수출이 대폭 늘어나면서 북한 최대 철광산지인 무산광산이 '북한판 신의 직장'이 됐다는 것이다. 이 단체는 북한 내부 통신원을 인용해 "무산광산에서는 2·16 명절공급으로 사탕과 과자 1kg, 된장 1kg, 술 1병, 오리 1마리, 솜동복(중국제 방한복1벌), 치약, 칫솔, 비누5장을 내줬다"면서 "명절 공급 품목에 식량은 없지만 정상배급을 받기 때문에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은 "북한의 다른 공장기업소들에서 식량배급이 중단되고 보위부나 안전부 등 권력기관도 1개월에 보름 식량밖에 못 받는 형편인데 무산광산은 중국과 철광석 무역으로 식량배급이 거의 정상화돼 주위의 부러움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통신원에 따르면 무산 광산직원들은 2인 가족 기준 1개월에 30kg의 식량(옥수수와 쌀 50:50 비율), 4인 가족 기준 1개월에 60kg이상의 식량을 공급받으며 월급은 평균 2000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무산광산은 북한의 군수공장보다도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진의 대표적인 군수공장으로 240mm방사포탄을 생산하는 관모기계공장은 16일 김정일의 생일에 10일분의 옥수수와 술 1병, 간장, 된장을 공급받았지만 고기는 없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한편 양강도 혜산시에서는 '명절공급'으로 된장 1kg, 술 1병, 과자 500g, 단물(쥬스)1병을 공급했을 뿐 식량공급은 없었다고 한다.
http://media.daum.net/politics/north/view.html?cateid=1019&newsid=20110218175506738&p=chosun
그런데....배급제가 원칙인 사회주의 사회인 북한사회에서는
아마도....직업의 귀천이 있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왜냐면.....적어도 금전적으로는 별로 크게 차이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아마도.....무슨 일을 하든 돈을 벌어 축적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따라서 직업선택에 있어서 남한 사람들이 주로
연봉, 월급 등 금액적 측면 즉, 부의 축적 문제로 바라보는데 반하여
북한사람들은 아마도....남한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직업선택을 할 것 같다.
왜냐면 직업에 따른 소득격차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라,
단지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인
유럽선진국들에 있어서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서평방송(통일방송)에서 소개하는 북한영화들에서도
흔히 드러나는 장면들이기는 하지만....
북한사람들은 남한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자신의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들이 있음을 본다.
그에 대해 좋은 예가 서프에 소개되어 있어서
일부만 퍼와 소개하고자 한다.
도로관리원이 된 처녀들
1986년 가을이였다. 평양시 평천구역 새마을중학교 졸업반이였던 박응란양은 대동강유보도를 지나다가 어느 할머니가 길을 쓸고있는것을 보고 마음이 언짢았다. 그래서 이렇게 할머니에게 말을 건넨다.
≪년세가 있으신데 왜 들어가 사회보장을 받으면서 편히 쉬지 않으시고…≫ 그 물음에 대하여 할머니는 이렇게 답하는것이였다.
≪우리 일이 중한걸 아는 젊은이들이 나서기만 하면 나도 걱정을 놓고 마음 편히 들어가 쉬겠는데… 글쎄 우리 일이 다른 일들처럼 사람들의 관심은 크게 끌지 못하지.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구 해서 우리 일이 덜 중한것이겠나. 우리가 관리하는 이 길을 지나 수령님께서와 지도자동지께서 현지지도를 나가시구 인민들이 행복한 모습으로 오가지. 그러니 이 거리를 관리하는 일이 얼마나 중하구 영예로운것이겠나.≫
박응란에게 이같은 할머니의 말은 곧 새 세대들에게 하는 호소같기도 했다.
어느 날 작업을 하던 중의 일이다. 어린이의 손목을 잡고가던 어느 아기엄마가 이렇게 말하는것이 한 성원의 귀전을 때리는것이였다.
≪얘야, 너도 공부 못하면 저런 일 해야 돼!≫
그러나 그 말을 들으며 비질을 하던 성원이야말로 최고점인 10점 최우등생이였던것이다. 또한 어느 성원은 사랑의 아픔도 겪어야 했다. 그중 김홍화처녀에게 마음을 둔 한 총각이 그들의 장래문제를 두고 이렇게 의향을 물었다.
≪…그런데 결혼하면 도로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둘 수 있겠소?≫ 처녀는 이마를 반짝 들고 ≪왜 그러느냐.≫고 되물었다.
≪그 무슨 장한 일이라고 결혼한 후에도 계속 도로에 나와 일하겠소. 남이 물어봐도 그렇고…≫ 그 말을 들은 처녀는 이렇게 랭담하게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동무는 나의 리상을 모르니 더이상 찾아오지 마세요.≫
비바람 사납게 불어도, 감기에 걸리고 몸이 불편해도, 명절날이여도 처녀들은 만사를 뒤로 하고 맡은 구간의 도로를 거두고나서야 각자 개인적인 일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들의 꾸준한 노력과 의지 그리고 인내의 아름다운 소행은 차츰 사회에 알려지고 그 모범은 급속한 속도로 청년들에게 파급되여 먼저 평양시에서만도 9개 지역 각지에서 아릿다운 처녀들이 작업복차림에 비를 들고 거리로 나왔다. 또한 이러한 청년들의 기특한 소행에 대하여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인민들은 적극 그들에게 성원을 보내고 도움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뿐인가. 이들 청년작업반원들의 소행에 대하여 보고를 받으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들 전원에게 도시경영단과대학 도시시설학과에 입학시켜 대학과정을 수료하도록 배려해주시였고 국가적인 행사에 이들로 하여금 주석단에 오르도록 하여 꽃다발을 안겨주고 때로는 높은 국가수훈의 영예를 안겨주기도 했다.
특별히 그중 청년동맹초급단체 위원장인 최장애와 청년도로관리작업의 발기자인 작업반장인 박응란에게는 최고의 영예인 ≪김일성청년영예상≫이 수여되였다. 이제 청년도로관리작업반 처녀들이라면 온 나라에서도 그중 인기좋은 신부감들로 되였다. 숱한 신랑감청년들이 작업장에 나와 처녀들을 고무해주는가 하면 수많은 어머니들이 나와 길을 물어보는척 하며 며느리감들의 선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처녀들의 결혼조건은 확고부동했다.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_2&uid=25677
(평양1중_영어 듣기 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