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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흥미돋][역사 속 오늘]72년 전 오늘, 원폭에 희생된 비운의 왕자 '이우' 사망

작성자얼라이브쌩쌩하죠하루가|작성시간23.08.15|조회수3,539 목록 댓글 5


출처: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080714312810361


이우 왕자가 일본군에 복무당시 모습(사진=위키피디아)


1945년 8월7일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실 후예 중 한사람이자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일본군에 복무,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피폭당했던 왕자 이우가 사망한 날이다. 이우는 평생을 일제에 볼모로 잡혀 살다가 끝내 원폭을 맞고 사망한 비극적인 삶으로 유명한 조선의 마지막 황족 중 한사람이다.  

이우는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의친왕 이강은 조선 왕족 중 최후의 의기를 보여준 인물로 유명한 독립운동가로 국내 탈출을 시도, 임시정부로 향하다가 일제 순경에 붙잡혀 돌아오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의 아들답게 어려서부터 상당히 호방한 기질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중략)



8월6일 당일, 이우는 말을 타고 출근하다고 고집을 피워 말을 몰고 참모본부로 가던 도중, 히로시마시 중앙부 후쿠야(福屋) 백화점 부근에서 원자폭탄에 피폭됐다. 이곳은 최초 폭심지역에서 불과 700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치명상은 불가피했다. 피폭 당일 오후가 돼서야 흙투성이로 발견된 그는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이미 화상이 너무 심각한 상황이었고 다음날 새벽에 결국 숨을 거뒀다. 

죽은 후에도 이우는 야스쿠니 신사에 가족 동의없이 강제로 합사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사망시점 일본인이어서 일본을 지킨 신으로 모신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반발해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에서 1970년, '한국인 원폭 의생자 위령비'를 건립하며 그가 피폭 후 발견된 히로시마 아이오이교 부근에 위령비를 세웠다. 위령비 전면에는 '이우공 전하 외 2만여 영위'라는 문구가 적혔다. 이후 히로시마시는 위령비의 평화기념공원 내 이전을 계속 거부하다가 결국 1999년에서야 이전을 허가했다.

이우가 사망한 히로시마 아이오이교 부근에 세워졌던 '한국인 원폭 의생자 위령비'. 1999년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로 이전됐다.(사진=위키피디아)


끝내 일본에 의해 강제로 전쟁에 희생되고 말았지만 생전 그와 가까이 지냈던 일본인들은 그를 매우 의기로운 왕족으로 기억하고 있다. 일본육군사관학교 재직시 동기생이었던 일본 황족인 아사카 다케히코는 "이우는 항상 조선은 독립해야한다는 마음을 새기고 있어 일본인에게 결코 뒤지거나 양보하는 일 없이 무엇이든 앞서려 노력했다"고 기억했다. 운현궁에서 가정교사를 지냈던 가네코란 일본인도 "이우는 조선 독립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어 일본 육군에서 두려워했다"고 증언했다.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한 민족문제연구소에서도 이러한 평가들을 감안해 그를 친일인명사전 명단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전문출처)





오늘이 그날이라니 ㅠㅠㅠㅠ

운현궁 오라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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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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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블랙미러시즌6 | 작성시간 23.08.15 헐 원폭에 희생당하신 줄은 몰랐었네.. 평생 독립을 위해 힘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얼라이브쌩쌩하죠하루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8.15 죽은 후에도 이우는 야스쿠니 신사에 가족 동의없이 강제로 합사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사망시점 일본인이어서 일본을 지킨 신으로 모신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었다.

    쟤네가 어거지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시켜서 오해받은거 아닐까...
  • 작성자녬녬미 | 작성시간 23.08.16 이 사람이 살았으면 달라졌을거라는 얘기도 있더라
  • 작성자치후유와바지 | 작성시간 23.08.16 너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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