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2680849289
보통의 범죄들은 행위를 함으로써 발생함으로
굳이 따질 필요없이 그것이 범죄임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 범죄가 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될 수 있습니다.
앞서 얘기한 '행위를 함'을 법률용어로는 '작위'라고 하고,
'행위를 하지 않음'을 법률용어로는 '부작위'라고 합니다.
따라서 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일반적인 범죄는 '작위범',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 성립하는 범죄는 '부작위범'이라고
합니다.
고로 이번 주제는 부작위범에 대한 내용입니다.
우리의 찰 장군님입니다.
찰 장군님은 작위범의 예시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이 라인을 넘을 때까지 공은 안 건드리고
선수들을 이리저리 때리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찰 장군님의 경우 폭행하는 적극적 행위(작위 행위)로
파울을 많이 만들곤 합니다.
이런 반칙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보통의 파울입니다.
2018 아시안 게임의 조현우 선수는 아무것도 안 했지만
경고를 받습니다.
찰 장군님처럼 누굴 치거나 핸들링 반칙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경고를 받았을까요?
유리한 상황에서 시간 지연을 하기 위해
가만히 있는 소극적 행위(부작위 행위)로
경고를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축구선수는 경기 시간 내에 경기를 진행해야지
고의로 지연하는 건 다른 선수를 치거나 핸들링한 것처럼
경고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가 부작위범에 대한 예시가 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보지 않습니다만,
이렇듯 특수한 몇몇 경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잘못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현우 선수의 반칙처럼 아무것도 안 했는데 처벌하려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잘못이어야 합니다.
축구에서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경기를 진행해야 하는데
이를 하지 않으면 반칙이 되죠.
현실에 대입해 얘기하자면 범죄가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특정 행위를 하여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작위의무'가 있다고 합니다.
축구의 경우에는 선수는 경기를 진행해야 하는
작위의무가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고의로 시간을 지연시키면 처벌받는 것입니다.
현실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노숙인 비하가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보통 역 주변에는 노숙인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역은 노숙인의 노숙 장소로 만들어진 곳은
아니기 때문에 관리인이 노숙인들에게 퇴거를 요구한다면
노숙인은 관리인에게 대항할 권리가 있다고 보기 힘듭니다.
그러나 노숙인이 이를 무시하고 버틴다면 어떨까요?
이는 형법 제319조 주거침입, 퇴거불응으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노숙인이 역이 문을 닫았음에도 몰래 불법적으로
들어가는 건 작위 행위로 주거침입이 성립할 수 있고,
낮에 합법적으로 역에 들어가 주거침입은 아니라도
밤이 되어 역을 닫기 위해 퇴거하라는 지시에 응하지 않고
버티는 건 부작위 행위로 퇴거불응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거침입은 작위범이고
퇴거불응은 부작위범입니다.
그리고 역에서 점유의 권리가 없는 자는 정당한 퇴거요구에
응해 퇴거를 해야할 작위의무가 있고,
그 의무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안 한다면 죄가 됩니다.
이러한 부작위범은 '퇴거불응'이라는
형법상 처벌규정이 성문화되어 있기 때문에
처벌이 가능한 것입니다.
만약 국회에서 형법의 개정으로 '퇴거불응'의 부분을
삭제한다면 무단점거하는 사람을 형법상으로
처벌할 근거가 없어집니다.
(그렇다고 해도 되는 건 아닙니다. 민법상 불법행위이고, 철도안전법에 금지되어 있는 등 다른 법들에 의해서도 직간접적으로 금지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작위범은 이렇게 형법에 정해진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을까요?
다른 예시를 보겠습니다.
지난 '미필적 고의란 무엇인가요?'에서 예시로 쓰인
세월호 참사입니다.
이준석 선장은 침몰하는 세월호를 구호조치 없이
대기하라는 선내방송만 듣고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했고 구조된 후 쏟아지는 비판과 재판에서
자신은 살인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유는 이준석 선장이 승객들을 직접 죽인 게 아니라
선박 사고로 인한 사망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을 물 속에서 죽게 한 이준석 선장이지만
근거없는 주장을 한 건 아닙니다.
왜냐면 이준석 선장 측의 주장대로 승객을 죽이려고
승객을 직접 바다에 밀어넣었거나
일부로 세월호를 침몰시키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종 결과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부작위 살인'으로 판결했습니다.
살인의 작위 행위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살인죄로 처벌했을까요?
퇴거불응죄는 사람의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등에서
퇴거요구를 받고도 응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라고
명시해놨습니다만,
살인죄에는 침몰하는 배에 승객을 버리고 탈출을 하면
살인이라고 정해놓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바로 부작위 행위가 마치 직접 사람을 죽인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살인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선장'이라는 선박의 총괄을 맡는 직책상 위급상황 발생시
승객 구조를 해야할 의무(작위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혀 하지 않고(부작위) 탈출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구호조치를 하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출했다는 건 승객이 죽든지 말든지
상관없다는 미필적 고의에 해당하며
실제로 바닷물에 밀어넣지(작위 행위) 않았다 뿐이지
방치한 행위(부작위 행위)가 밀어넣은 것과 실질적으로
다름없기 때문에 마치 작위 행위를 한 것처럼
살인으로 본 것입니다.
(이를 행위정형의 동가치성이라고 합니다.)
특히 선장이라는 가장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무책임하게 탈출한 승무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살인죄를
인정하고 무기징역의 형을 받았습니다.
(1등 항해사와 2등 항해사는 유기치사상, 직접 운항을 하고 있던 3등 항해사는 업무상 과실치사상로 처벌받았습니다.)
사람을 죽이기는커녕 손 하나 대지 않아도
살인죄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작위범은 두 가지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퇴거불응죄처럼 처음부터 법률에서 범죄로 정한
특정 부작위 행위를 '진정부작위범'이라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이준석 선장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처럼
법률에 부작위에 대한 범죄로 정하지 않았어도
부작위의 결과가 작위 행위로 범죄를 저지른 것과
다름없을 때 작위범과 동일하게 간주하는 죄를
'부진정부작위범'이라고 합니다.
진정부작위범과 부진정부작위범은 특성 때문에
생기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저와 이준석 선장을 비교해보겠습니다.
저와 이준석 선장 둘 다 정당한 퇴거 요구에 불응하면
둘 다 퇴거불응범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세월호의 승객이었고
이준석 선장처럼 누구도 구하지 않고 내 목숨만을 위해
탈출했다고 가정한다면
이준석 선장은 살인범이지만 저는 아닙니다.
왜냐면 저는 선장도 아닐 뿐더러 승무원조차 아니므로
제가 승객을 구조해야할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정부작위범(퇴거불응죄)은
누구라도 저지를 수 있지만 범죄지만,
부진정부작위범(이준석 선장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은
사람에 따라 적용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정부작위범은 애시당초 법률로 특정 부작위 행위를
금지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 부작위 행위를 하면
처벌받을 수 있지만
부진정부작위범은 직책이나 관계에 따라
작위의무가 있다면 처벌받고,
작위의무가 없다면 처벌받지 않기 때문에
작위의무가 있는 특정 사람만 범죄가 되는 신분범입니다.
(이런 작위의무가 있는 사람을 보증인지위에 있다고 합니다.)
이해가 어려운 분들을 위해 축구로 설명하겠습니다.
선수가 심판의 경기 속행의 요구에도 시간을 끄는
부작위 행위는 경고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선수뿐만 아니라 감독이라도 공을 달라는 요구를
무시하고(부작위 행위) 경기 진행을 방해하면
주심으로부터 경고나 퇴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누구든 경기를 방해하면 심판은
경고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부작위범)
하지만 경기 중 아무것도 안 하는 행위는 다릅니다.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 2차전에서 토트넘을 상대로
무승부만하면 결승전으로 올라갈 수 있었던 아약스.
아약스의 골키퍼 오나나 선수는 후반전 추가시간 5분 경
골킥을 차지 않고 시간을 끌어 옐로카드를 받습니다.
(부진정부작위범)
하지만 감독은 경기에서 지시든, 선수 교체든, 어필이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어떠한 카드도 받지 않습니다.
이렇게 선수와 감독이 똑같이 아무것도 안 해도
선수는 처벌받고, 감독은 처벌받지 않습니다.
선수가 아무것도 안 하면 경기 자체가 진행이 안 되지만
감독은 아무것도 안 해도 경기 진행에 영향을 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선수는 반드시 경기를 뛰어야 하는
작위의무가 있는 것이고
감독은 경기 진행 중 작위의무가 있는 건 아닙니다.
이는 선수와 감독의 신분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진정부작위범은 누구라도 될 수 있지만
부진정부작위범은 신분에 따라 범죄가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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