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흥미돋]쓸만한 잡지식들 : 서울 경복궁 (2편)

작성자흥미돋는글|작성시간26.08.13|조회수1,104 목록 댓글 1

출처: https://www.fmkorea.com/10173604820

 

이전편

쓸만한 잡지식들 : 서울 경복궁

 

 

경복궁 관련 잡지식 2편을 써보려고 합니다.

 

바로 시작해보죠.

 

 

----------------------------------------

 

 

1. 사정전 권역 관련 잡지식들

 


(앞쪽 가운데 팔작지붕 건물이 사정전)

 

근정전을 다 보셨다면,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근정전 뒤편으로 향하게 되실 겁니다.

 

이곳이 바로 경복궁의 편전인 '사정전'입니다.

 


여기서 조선 궁궐의 기본 배치를 알고 가면 더욱 이해가 쉽습니다.

 

궁궐은 크게 실질 업무와 행사 등이 이루어지는 '외(外)조'

 

생활 및 거주 구역인 '내(內)조'로 나뉩니다.

 

 

위 사진에서 보이다시피, 외조는 빨간 선을 기준으로 궁궐 전면부에,

 

내조는 후면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외조도 여러 구역으로 나뉩니다.

 

경복궁에서 외조는 정말 대충 나누면 크게 다섯 권역으로 나뉘는데,

 

초록색 안쪽은 궁궐의 중심인 정전과 편전 권역,

 

주황색 안쪽은 궁궐 내 관청들인 궐내각사 권역,

 

보라색 안쪽은 세자 관련 구역인 동궁 권역,

 

파란색 안쪽은 중앙군인 오위를 통솔하던 오위도총부 권역,

 

황토색 안쪽은 가마나 말 등을 관리하던 내사복시 권역입니다.

 


물론 현재는 대부분 헐려서 실제로 볼 수 있는 건 얼마 없습니다.

 

정전과 편전 권역은 볼 수 있지만,

 

궐내각사 권역은 수정전만 남았고,

 

동궁 권역은 계조당, 자선당, 비현각만 복원되어 있고,

 

오위도총부 권역은 주차장이 되어 있고,

 

내사복시 권역은 국립고궁박물관이 되었습니다.

 

 


사정전 얘기를 하는데 왜 이렇게 사족이 기냐면,

 

이렇게 많이 사라진 경복궁 외조 건물 중 얼마 없는 '원본'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세월의 흔적이 많이 묻은 만큼,  오래 보시면 좋습니다.

 



1) 사정전이 단층 건물이라 작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보기보다 훨씬 큽니다.

 

 

 

2) 사정전은 회의 등 집무를 보는 편전 건물이기에, 나무로 된 마루가 깔려 있습니다.

 

 

3) 위 사진에서 보이듯 위쪽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운룡도' 즉 구름과 용을 그린 그림입니다.

 

 

4) 위 사진 가운데는 왕이 앉는 공간인 '옥좌'인데, 조선 5대 궁궐의 편전 중

 

저렇게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는 단이 원본으로 남은 유일한 편전이 바로 이곳 사정전입니다.

 

참고로 창덕궁의 편전인 선정전의 단은 2021년 즈음 복원되었고,

 

창경궁의 편전인 문정전은 단이 복원되지 못했으며,

 

경희궁의 편전인 자정전은 마루바닥조차 복원되지 못했습니다.

 



4) 사정전 양옆에는 보조 전각이 있는데, 동쪽에는 만춘전이 있습니다.

 

한자는 봄 춘(春) 자가 맞고, 음양오행에서 봄이 동쪽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5) 서쪽에는 천추전이 있습니다.

 

여기 역시 가을 추(秋) 자가 맞고, 음양오행에서 가을이 서쪽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

 

 

2. 강녕전 권역 관련 잡지식들

 

 

 

1) 강녕전은 왕의 정식 생활공간으로, '침전(잠을 자는 곳)'입니다.

 

그 주위를 부속 생활공산인 경성전, 연생전, 응지당, 연길당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2) 강녕전 앞으로  툭 튀어나온 석축 기단은, 마치 광화문과 같은 '월대'입니다.

 

권위를 드러내기도 하고, 휘장을 치거나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3) 강녕전의 지붕은 특이하게 생겼는데,

 

용마루(지붕 중앙의 제일 높은 부분)가 딱히 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이 사진에서 보이듯 양성바름(석회)으로 용마루와 추녀마루를 연결합니다.

 

강녕전에 양성바름 용마루가 없는 이유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는데,

 

가장 유명한 설은 '하늘 아래 두 마리 용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그냥 속설일 뿐이고, 강녕전 뒤편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도 용마루가 없는 것을 보았을 때

 

(당시 선진국이던) 중국의 건축 기술을 적용했을 확률이 큽니다.

 



<동궐도> 中 창덕궁 대조전의 모습을 보면 여기도 용마루가 없고,

 



중국 베이징 사합원도 용마루가 없는 걸 보면 이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4) 강녕전의 양쪽 측면을 보면, 턱 없이 문이 바로 밖과 연결된 듯한 모습이 보입니다.

 



강녕전 동쪽 연생전을 보면, 여기도 한쪽만 턱 없이 문만 있고,

 



수상할 정도로 강녕전과 옆 건물의 배치가 딱 맞아떨어지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원래 강녕전을 중심으로 주변 4개의 부속 전각이 복도를 통해 전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건 https://blog.naver.com/minsu977/221228016526 이 블로그 참조)

 



그러나 1876년 내전 권역에서 발생한 대화재 당시

 

복도를 타고 불이 빠르게 번지는 사태가 발생했고,

 



화재 후 재건 당시에는 이렇게 간이 복도로 연결했던 것으로 보이나,

 

구한말인지 일제강점기인지 모를 어느 시기에 복도는 사라집니다.

 

그리고 국가유산청이 복원할 때엔 가장 마지막 형태로 복원하게 된 것이죠.

 

직접 가서 보시면 '아 여기에 복도가 있었겠구나' 가 느껴지실 겁니다.

 

 

----------------------------------------

 

 

3. 교태전·아미산 권역 관련 잡지식들

 



1) 강녕전 뒤편의 교태전은 왕후의 공식 생활공간(침전)입니다.

 

강녕전처럼 월대가 있지는 않지만, 여기 역시 용마루가 없습니다.

 



2) 지도를 보면, 교태전은 옆의 부속 전각들과 복도로 전부 이어져 있습니다.

 

왼쪽의 흠경각은 생활 건물이 아닌 천문 관측 건물이라 패스하고,

 

흠경각 바로 위의 함원전은 교태전 권역에 포함된 생활 거주 공간입니다.

 

 

3) 여기가 왕후의 침전이라고 해서,

 

명성황후가 명성/황후가 된 을미사변이 여기서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을미사변은 다음 게시물에서 다룰 '건청궁'에서 발생합니다.

 

 

 

3) 교태전 뒤편에는 왕후의 정원인 '아미산'이 있습니다.

 

2010년대에는 아미산의 유래와 기원을 보통

 

"중국 사천의 명산인 '아미산'의 이름을 따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교태전 뒤의 아미사(蛾眉砂)는 바로 하늘이 만든 것으로, 그 아래에 전각을 세운 데는 깊은 뜻이 있는 듯합니다. 지금 만약 헐고 옮겨 짓는다면 이미 천연적인 지형을 잃게 되고 또 사각(砂角)에 응하여 전각을 세우는 뜻도 아닐 것입니다."

- 승정원일기 고종 12년 3월 29일 기사 -

 

이런 기록을 보았을 때, 아미산은 원래 존재하던 지형이었고, 

 

풍수지리에서 아미사가 '산봉우리 모양이 마치 나방이나 누에의 눈썹처럼 가늘고 아름다운 곡선을 띤 형태'

 

인 것을 보았을 때,

 

어느 순간 아미사로 부르던 곳이 아미산으로 바뀌었으리라 추측합니다.

 



이건 어느 유명 AI 건축 유튜버가 다룬 경회루와 아미산입니다.

 

태종 때 경회루 연지를 조성하며 파낸 흙을 아미산을 만드는 데에 사용하였다는 것인데,

 

이 이야기도 사실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우선 조선 전기 경복궁에서 왕후의 침전은 현재의 교태전 자리가 아니었고,

 

고종 대 <경복궁영건일기>에 경회루에 그동안 쌓인 흙을 파내,

 

아미산을 보강하는데 사용하였다는 기록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A : 아미산의 어원은 중국의 아미산이 아니라 단어 '아미사'였다

B : 아미산은 조선 전기에 만든 인공산이 아니다

 

이 두 가지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3) 아미산에 솟아 있는 이것들은 바로 굴뚝입니다.

 

교태전 근방을 데운 온돌의 연기가 이곳을 빠져나가게 됩니다.

 

 

4) 아미산 굴뚝의 옆면에 그려진 것들은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 입니다.

 

다만, 원조 십장생에 포함되는 구름, 거북 등 일부는 들어가지 않았고

 

대신 박쥐, 매화 등 몇몇이 교체되어 들어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현대의 우리가 '21세기 최고의 축구선수 TOP 10'을 매기면

 

순서나 인원이 왕왕 바뀌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4) 아미산이 유명하긴 하지만, 아미산이 전통 조경 중 기법 자체로 '독보적'인 것은 아닙니다.

 

계단식으로 정원을 만들어 꽃과 나무, 석물을 배치하는 전통 조경 기법인 '화계'의 일종이기 때문입니다.

 



창덕궁 낙선재 뒤편에도 이런 식으로 화계가 조성되어 있고(여기도 굴뚝 있음)

 



민가에서도 규모와 방식은 차이가 있지만,

 

화계 형식으로 정원을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전통조경학회의 <전통정원 표준모델 개발> 보고서를 참조하시면 좋습니다. 

 

 

----------------------------------------

 

 

4. 경복궁은 왜 흙바닥인가요?

 



근정전 마당을 제외하고, 경복궁은 이런 흙바닥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돈이 없어서 돌로 포장하지 못했나" "잔디는 왜 안 깔았을까"

 

같은 말도 간혹 나옵니다.

 

그러나 이는 그냥 흙바닥이 아닙니다.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090605/8740628/1

위 기사는 2009년 육조거리 발굴 당시 드러난 조선시대 도로포장입니다.

 



생각해 보면, 경복궁이나 육조거리 등이 그냥 흙바닥으로 포장했을 리는 없습니다.

 

그냥 흙은 배수가 잘 되지 않고, 주변 건물의 하중까지 견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아래에 뼈나 기와, 토기를 섞어 기초다짐을 한 후,

 

마사토(화강암이 풍화되어 만들어진 흙)로 최종 포장을 했습니다.

 



따라서 궁궐, 왕릉, 도로 등 모든 곳에 이러한 포장기법이 사용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논산 돈암서원)

 

물론, 민간에서도 사용되었죠.

 

 

 

 

 


(전주향교)

따라서, 이렇게 마당에 잔디가 깔려있는 곳이 오히려 고증에 맞지 않습니다.

 

근대 또는 근래에 변형되었을 확률이 큽니다.

 

전통 조경에 대해선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주의*

 

다만, 마사토도 결국 흙이기 때문에 '물'에는 취약합니다.

 

비가 많이 온 다음날에 연인과 경복궁을 가려고 한다?

 

그 계획, 당장 취소하십시오.

 

마사토에 구두굽이 푹푹 빠지는 경험을 하고 난 뒤의 연인은

 

정말 맛있는 저녁을 먹기 전까지는 화가 풀리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절대 경험담은 아닙니다.

 

----------------------------------------

 

 

5. 후일담

 

그.... 글을 쓰고는 있는데

 

계속 쓰다 보니 너무 길어져서,

 

경복궁 얘기를 끝내려면 한 2편 정도는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쉬엄쉬엄 쓰겠습니다..

 

 

댓펌 :

마사토로 포장하는 게 전통적이긴 하나 드론, 위성 촬영 등으로 궁궐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다소 황량해보여서


잔디 깐 게 더 이쁠 것 같긴 함ㅋㅋ

그래서 괜히 미국의 수많은 가정집들이 잔디를 고수하는 게 아닐까싶음

(경복궁 드론 촬영 영상)

맞습니다.

그래서 사실 녹지가 많은 창덕궁이 '생활공간'으로써는 더 적합했던 것 같긴 합니다. 조선 전기 경복궁의 모습을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건물과 건물 사이 녹지 비율이 지금과 비슷했다면 말이죠.

그래서 태종이 창덕궁을 그렇게 좋아했나 싶기도 하고...


맞음 그리고 배치 구조로 봤을 때도 경복궁은 성리학적 질서와 사상을 건축으로 나타내야 했기에 핵심 건물을 중심으로 거대한 일직선의 축이 형성돼있고, 좌우 마저 대칭적인 딱딱한 구조라 매우 권위적이고 사람을 위계질서에 자연히 순응하도록 유도함

마치 자금성과 같은 숨이 턱 막히는 배치 구조라 오래 살면 정신에 문제 생기지 않을까 싶을 정도고, 이와 반대되는 자연친화적이며 변칙적인 배치 구조를 가진 창덕궁이 사람 살기는 훨씬 좋았을 듯 싶음

 

 청 황제들도 자금성보다 옆의 정원(겸 별궁)인 중난하이를 더 선호했던걸 보면, 인간은 다 비슷비슷한가 봅니다 ㅋㅋㅋ

광해군 : 창덕궁, 창경궁, 경덕궁, 인경궁 다 지어.
단, 경복궁은 빼고...


그러고보니 약도 없는 궁궐병에 ㅁㅊ 놈이 경복궁은 왜 나뒀을까? 인경궁만 해도 굉장한 대궐이였다는 데, 그거 지을 자원으로 경복궁이나 짓지

 

인경궁 -> 능선에 계단식
경덕궁 -> 능선에 계단식

인거 보면, 농담 반 진담 반이지만 경복궁이 취향이 아니었을지도...

 

 

 

 

 

다른 이야기도 보러가기

구한말 사진 속 장소를 추정하는데 성공

일제강점기 사진 속 장소를 추정하는데 성공 (이번엔AI와함께..)

의외로 잘 남아있는 북한의 조선시대 문화유산

중국 문화대혁명보다 심각한 현대 한국의 문화재 파괴

 대한제국 시기 건축물들의 흥미로운 특징

쓸만한 잡지식들 : 서울 경복궁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만다리나덕 | 작성시간 26.08.13 new 우와 재밌다 궁 보러 가고싶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