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 / rhetoric / 2011-03-17)
(1)헬기 투입할 때 이미 상황은 끝난거다
(2)일본의 미래와 우리 상황
자연계에서 발화한 모든 물질은 시간이 지나면 꺼진다.
산소를 차단하면 즉시 꺼지고, 인간의 힘으로 진압이 불가능해 보이는
정유공장의 어마어마한 기름 불길도 지구를 태워버릴 것 같은 거대 산불도
기름이 다 타고, 온 산을 꺼멓게 태우고 나서 더 이상 태울 것이 없으면
며칠 안에 꺼진다.
그런데 지구상에서 가장 무거운 원자인 우라늄은 좀 다르다.
우라늄235와 그의 아들 플루토늄239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핵반응을
일으키는 순간 유치한 개념으로 ‘불이 붙는다’.
그런데 이 우라늄과 플루토늄은 식힐 수는 있지만 산소를 차단해도
꺼지지 않는다.
더 이상 핵분열을 멈추고 열을 발산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생명주기 보다
훨씬 더 길게 방사능을 내뿜는데 그걸 어떻게 꺼졌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오로지 현재 인류가 가진 처리 방식으로는 어마어마한 콘크리트에
파 묻는 수밖에 없다.
며칠 안에 전력을 복구하고 냉각장치를 재가동하여 원자로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일본의 선택은 하나밖에 없다.
간 총리는 비장하고 침통한 목소리로 후쿠시마 원전의 포기를 선언하고,
동북지방 인구를 최단시간 내에 남쪽지방으로 소개한다고 발표하는 것이다.
이후 자위대의 모든 헬기를 동원해 원자로 위로 붕산을 들이 붓고
동시에 동일본의 모든 레미콘 트럭과 시멘트를 총동원하여 6개의 원자로를
콘크리트 석관으로 봉인하는 방법이다.
며칠이 걸릴 지 몇 달이 걸릴 지 모르지만 이 작업이 수행되는 동안 원자로가
체르노빌처럼 폭발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게 체르노빌과는 좀 다르다.
체르노빌은 아예 원자로 자체가 폭발하고 거대한 방사능 재가 공기중으로
다량 방출되고 나서 콘크리트 석관 작업이 시작되었다.
작업 초기에 원자로와 녹아내린 우라늄 노심을 덮기 위해 비행한
헬기 조종사의 피해가 극심했지만, 작업이 진행될 수록 방사능 준위가
조금씩 낮아지기 시작했고 이미 부서진 구조물 위로 콘크리트를 무지막지하게
쏘아 올려 덮는 작업인 반면에,
후쿠시마는 아직은 원자로가 폭발하지 않고 방사능만 누출되는 수준의
상태이며 갈수록 준위는 올라가고 있다. 원자로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콘크리트 타설을 해야 하는 작업인 것이다.
게다가 봉인해야할 원자로가 1개가 아니라 무려 6개이다.
수백 수천명이 방사능을 뒤집어 쓰면서 교대로 작업하는 도중에 옆
원자로가 폭발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관리의 효율을 위해 모아놓은 원자로의 이율배반이 참으로 무섭다.
더군다나 체르노빌은 구 소련제 헬기 특유의 반전 로터를 달은
거대한 이륙중량의 대형헬기를 다수 보유한 소련군의 지원과
방사능의 위험성에 무지하도록 교육받은 또는 사회주의 소련 정부의
강제적 지시에 따른 작업자들의 어마어마한 희생이 있었다.
지진으로 정상적인 사회기반 시설이 망가진 일본 도카이 지방에서
콘크리트와 시멘트, 그리고 레미콘 차량 포크레인 등을 최단시간 내에
투입할 수 있을 지, 방사능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일본인 중
그 위험한 작업에 자진해서 뛰어들 많은 인원을 소집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이 거대한 불행 중 다행하게도 원자로의 폭발 이전에 후쿠시마에
6개의 거대한 콘크리트 산을 쌓아올리는 봉인 작업에 성공한다면,
일본은 동경과 수도권을 살릴 수 있어 보인다.
동북지방을 한 세대 이상 지도에서 지워야 하고, 물가에 엄마 무덤 만든
개구리 마냥 비만 오면 노심초사하고, 조그만 지진과 매일 바뀌는
풍향/풍속에도 벌벌 떨고 살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정도는 덜하겠지만 우리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듯 싶다.
하지만 작업 완료 전에 원자로가 폭발하거나, 방사능 누출이 극심해져
콘크리트 석관 작업이 불가능할 경우 일본의 고민은 깊어진다.
원자로는 가장 손상이 심한 것부터 폭발을 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1호기가 폭발하고 곧바로 그 영향으로 2,3호기가 연쇄 폭발할 지,
나머지들은 6개월을 버티고 섰다가 여름에 태풍 상륙과 함께 동북아시아를
방사능 낙진으로 휘감으며 터질 지, 아니면 몇 년간 무지막지하게 방사능만
내뿜으며 서 있을 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며, 예측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자로 하나가 폭발하는 최악의 상황 이후에도 체르노빌 식의
수습은 어렵다는 얘기다.
주식시장도 그렇듯 불확실성이라는 발목잡기는 차라리 악재가 다 터져 나오는
것만 못하니… 240km 위 머리 맡에 언제 폭발할 지도 모르고 매초 방사능을
쏟아내는 후쿠시마 원전을 두고는 도쿄는 더이상 수도의 기능을 할 수 없을 터.
혼슈 중/북부와 홋카이도를 포기하고 일본은 큐슈와 시코쿠 혼슈 남부로
만족해야 할 지도 모르며 수도는 도쿄에서 오사카로,
일왕은 142년만에 다시 교토로 돌아가야 할 지도 모른다.
제발 빠른 시간 내에 전력을 복구하고 냉각시스템을 가동하여 지금의 지옥 문이
열린 것과 같은 상황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나는 앞으로 남은 평생을 나와 내 가족이 먹는 음식과 물을 놓고 농약 잔류물이나
첨가제 정도가 아니라 방사능을 걱정하며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를 들이대고
살고 싶지 않을 뿐더러, 매일 아침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방사능 수치에 따라
하루하루를 고민하며 살고 싶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아들이 혹여 백혈병이나 갑상선 암에 걸릴까 두려움에
떨며 살고 싶지도 않고, 미래의 일이지만 건강한 손자 손녀도 보고 싶다.
이제 편서풍으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보아도 기본적으로는 맞는 얘기다.
특히 원자로가 모두 폭발을 일으킨다면 하늘 높이 솟아오른 방사능 낙진의
대부분은 서쪽으로 1200km 이상 떨어진 한반도 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편서풍을 타고 북태평양을 넘어 사흘이 지나면 미국 서해안에 내려앉을 것이다.
기상청 말대로 지구 자전 방향이 바뀌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하늘로 솟아오른 방사능 낙진은 서쪽으로
2600km나 떨어진 영국에서 검출되었다.
당장에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수준이라 해도 말이다.
일본, 우리나라, 우크라이나, 영국 모두 같은 편서풍 지대에 위치한다.
그리고 86년 봄을 나는 기억한다.
오후 들어 갑자기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 날, 하교하는 길에 같은 재단
고등학교 형들은 아시안 게임 개막행사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보다 더 멀리 떨어진 일본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었다고
보도가 나오고 정부에서는 단지 당분간 비를 안 맞도록 하는 게 좋다라고 했단다.
지금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여자들에게서 다른 연령대와 달리 유의미하게
갑상선암이 늘었다는 사실, 그녀들이 86년도에 사춘기 소녀였다는 것과
무관치 않음을 아는 사람은 안다.
우리 국민들 최근 몇 년 사이에 정말 똑똑해졌다. 줄기세포도 잘 알고,
광우병과 SRM도 알고, 잠수함과 어뢰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다.
그뿐이랴 이제는 방사능과 시버트도 좀 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절대 숨기지 말라는 것이다.
이건 너희들 탓이 아니니 솔직해도 된다.
여태껏 솔직해 본 적이 없으니 솔직해도 되는 지금 상황이 당황스러울까
싶어 노파심에서 하는 얘기다.
그리고 혹여 여유가 된다면 매뉴얼을 좀 만들어 보길 바란다.
어디를 기준으로 얼마 이상의 방사능이 검출되면, 검출 수치 별로 정부는
이러저러한 조치를 취하고 국민들은 이렇게 행동한다.
이런 것 말이다.
어렵겠지? 힘들면 지난 정부에서 만들어 놓은 거 있나 찾아보고,
혹시 있으면 표지와 날짜만 바꿔도 된다.
아니면 미국 매뉴얼 좀 빌려 오던가.
마음 같아선 울릉도 주민들의 양해 아래 긴급 소개조치 및 동해상에서
인공강우 작전 계획 수립도 좀 권하고 싶은데… 역시 무리겠지?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44370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rain 작성시간 11.03.19 정부발표를 믿었다,어리석게도.일본의 서쪽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98프로쯤 일본의 핵폭발에서 자유로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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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미네르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3.22 "나는 앞으로 남은 평생을 나와 내 가족이 먹는 음식과 물을 놓고 농약 잔류물이나
첨가제 정도가 아니라 방사능을 걱정하며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를 들이대고
살고 싶지 않을 뿐더러, 매일 아침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방사능 수치에 따라
하루하루를 고민하며 살고 싶지 않다. " <<---- 요 말이 가장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