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타당하고 논리적으로 합리적인 두가지 이상의 도덕적 관점이 충돌했을 때 더 좋은 도덕적 선택을 하는 프로세스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요즘 해봅니다. 아니, 사실 정확히는 어려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것이다보니 시작조차 제대로 못했죠. 다만 한가지 아는 것은 그러한 프로세스가 더 좋은 도덕적 선택지를 고를 수는 있겠지만, 그 프로세스 자체가 도덕적이지만은 않을 거라는 거죠.작성자Khrome작성시간20.08.21
교회에 대해 쏟아지는 광의적인 분노는 자제되어야 한다. 크리스천이란 이유로 손가락질할수록 사태는 더 악화된다. 속에서 천불나지만 그들이 다시 사회에 합류해서 기여할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물론 교인들도 일부가 그렇다는식으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자꾸 빠져나가고 엇나가고 삐대면 안된다. 근데 전씨랑 그 일파들은 좀 매운맛을 봐야하겠는데. 연희동 전씨랑 같이.. 작성자Equus작성시간20.08.18
유명인이 죽든 말든, 거기에 대중들이 무슨 반응을 보이든 말든, 일면식도 없는 지나가던 일반인들의 사소한 토로에 비하면 별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언급을 해도, 대중들의 반응은 또 어쩔 수 없이 '유명인 얘기들'로 덮이는군요. 이라는 말을 했다. 필자 역시도 저 글의 전문을 읽으면서 '점점 더 계속해서 작아져서, 아예 이 세상에 사라지고 싶다'라는 소소한 말에 공감이 하고 기억하고 있었다. 나 역시도 지금 돌아가신 박원순 시장님보다는 저렇게 흔들리는 맨탈을 가진 일반인의 감정에 더 공감을 느꼈기 때문에..... 작성자purge human작성시간20.07.12
예전에 제가 20대 초반이었던 시절 매주 최소 2시간, 최대 5시간을 투자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게임을 하거나 친구들과 같이 놀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저는 그것을 계속 했습니다. 사람들의 호응은 적어도 늘 같이 해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꿋꿋이 했습니다. 물론 호응이 적은 건 큰 고민이었기에 방식도 한번 바꿔보았지만 똑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저는 혼자 남았습니다. 이제 그것에 시간을 투자하기가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버려졌습니다. 버려진 후에는 저와 그 사람이 만들어놓은 것을 아무도 찾지 않더군요. 호응이 적었던 것은 알고 있었지만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작성자Historius작성시간20.07.11
내가 한창 빨간맛나던(?) 시절의 일이다. 고 박원순 시장이 과거 희망제작소였던가 뭐였던가 하던 시절에 잠깐 만난 적이 있었다. 생긴건 건설현장에서 한 25년 구른 욕쟁이 십장 같아보였는데(넷에서 붙인 그의 별명 다들 아시리라) 외모와는 딴판으로 큰 비전과 날카로운 영민함을 갖추고 있었다. 자리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학교 선배와 그에 대해 평하며 "앞으로 큰 자리에 갈 사람이다" 라는 결론에 합의했던 적이 있었다. 그랬던 사람인지라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럴만하다 싶었다. 선거에서 당선되기를 기대했었고, 기대대로 당선되어서 여러모로 신선한 시정을 보여줬었지.작성자_Arondite_작성시간20.07.10
옛날에 김호라는 축구인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주먹구구가 아닌 최초로 계약을 형태로 국가대표 감독직을 역임하기도 했던, 넘버원은 아니더라도 한때는 박수받고 선망받던 감독이었다. 아름답게 사라졌다면 지금도 많은 축구팬들의 기억속에서 명장으로 남아있었을테지만 말년에 이르러 현자의 모습도 그저 욕심쟁이 노인네의 추한 모습으로 변해버렸고 그가 평생에 걸쳐 쌓았던 모든 업적들을 길지 않은 시간에 제손으로 다 허물어버리고 말았다.작성자Equus작성시간20.07.10이미지 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