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동의 음악세계
김영동(金永東) 출생 : 1951년 1월 29일 출생 직업 : 현 대금연주가 소속 : 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산행
70년대 이래 활발하게 전개돼 온 국악의 현대화 대중화운동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작곡가 김영동이다. 그는 전통 국악관현악곡 뿐만 아니라 영화 연극 무용음악 등을 끊임없이 내놓으며 대중과 우리 전통음악의 간격을 좁히는데 일익을 담당해왔다.
김영동이 국악가요라는 국악의 현대화 작업을 시작했을 때 그가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했던 탓인지 일각의 국악 진영에서는 그의 노선을 탐탁치 않게 여기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대중에게 재미있고 친근한 국악을 접하게 함으로써 사회화 시켜내었고, 그러면서도 중요한 것은 그의 음악속에는 국악적 전통과 한국음악의 얼과 음악성이 힘있게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음악적 바탕은 온전히 한국적이다.

초원(대금연주)
그는 초기에 국악가요라는 양식과 영화음악, 연극음악등의 분야에서 작업을 시작하였다. 초기의 대표작은 이장호의 '어둠의 자식들'의 주제가였던 '어디로 갈꺼나' 그리고 배창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의 주제가 '조각배' 그리고 연극음악인 '사랑가' '한네의 이별'그리고 TV문학관 '삼포가는 길'의 주제음악 '삼포가는길' 등이다. '어디로 갈꺼나'는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단순한 멜로디와 현대인의 이상향을 노래하므로써 소외된 현대인의 가슴을 파고드는데 성공하였다. 또 대금연주곡 '삼포가는 길'은 대금의 깊고 그윽한 음색이 잘 표현된 곡으로 평가되고 있다.
어디로 갈꺼나
이후에 그는 두개의 한국적 명상음악 음반을 만들었으며 '매굿'과 '단군신화'라는 관현악곡 대작을 만들었다. 이는 서양의 음악형식을 수용하여 한국적 음악 내용을 담아낸 작품으로 곳곳에 아름다운 선율들이 매우 감미로우면서도 전개가 차분하다. 이후에도 많은 주옥같은 훌륭한 곡들을 발표했다. '수제천'을 신디사이져등을 가미해서 현대적으로 멋지게 편곡해내기도 하였다.
천년의 침묵: [대금, 아쟁]
국악의 창작 작업에서 박범훈이 민속악적인 전통을 더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김영동은 아악적인 전통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김영동도 역시 국악의 한국음악화, 현대 한국인의 생활속에서 살아 숨쉬는 국악이 되도록 힘쓰고 있다. 그래서 그는 국악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며 자신이 국악인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은 국악이 기존의 전통유지만을 고집해서는 안되며 현대 한국인의 생활에 맞게 한국대중과 대화하고 현대에 맞게 변화해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사랑가
93년 소리여행 때 발표했던 '개벽'으로 인해 대중과의 거리가 다소 멀어졌다고 보는 시각에 대해서 김영동은 부분에 치우친 해석이라고 비판한다.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전통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국수주의자는 아닙니다. 전통 속에 현대적인 요소가 얼마나 많습니까? 개인의 창작활동은 그 사람의 일생작업을 통해 조명되어야 합니다. 나는 적어도 내가 했던 작업에 대한 이론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있고,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완성된 모습을 머리에 담을 수 있습니다. 대중성을 획득했을지라도 때가 되면 과거의 작업에서 완전히 손을 뗄 수 있는 용기도 있구요"
그가 국악가요를 다시 만들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섭섭한 일이기는 하지만, 만약 그가 한 곳에 머물러 있었다면 '전통의 발전'이란 없었을 것이고 전통에서 찾아내야 할 무한한 가능성들을 묻어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다. 김영동은 국악이 발전하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일 중의 하나가 '민족문화미학'의 발전을 꼽는다. 국악이 토대로 삼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서양음악과 다른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