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문학 감상실

[詩]나무의 이상형 / 김숙영

작성자박오은(소교)|작성시간25.01.07|조회수41 목록 댓글 0

 

나무의 이상형

                                                                                                       김숙영 

콧대가 높아요 늘 꼿꼿해서 직립을 고집해요

 

하하 호호 발랄한 이상형을 찾고 있나 봐요 목각 인형처럼 연기하더니 이상형을 만나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비나봐요 종일 우뚝 서서 너머의 너머를 바라보며 어느 지점에서 마침표를 찍고 반환점을 돌아 새가 날아오는 상상을 할 것만 같아요

 

바람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구름이라는 닉네임을 덤으로 주었는데도 발목이 간질거려 추락을 떠올리는 것 같아요 달빛이 닿지 않는 발끝에서 알 수 없는 진한 향을 발산하고 있어요 고도를 사는 나무는 바람이 힘든 게 아니라 바람을 껴안는 거라고 암시해 주는 것 같아요

 

어느 민족은 태양과 달을 숭배하며 세상을 지배한다고 믿고 있는데 바람을 숭배하는 나무는 어떤 의식을 치르는 걸까요

 

시선은 더 높은 곳을 향하고 벌어진 입에선 가쁜 숨을 연이어 뿜어내도 새와 나무와 바람은 분리되지 않아요 서로 다른 방향이 하나가 되어 여기를 증명하는 몸짓들, 그런데도 생각만은 사방으로 뻗어가서 건조한 몸에 소멸이라는 문구는 어울리지 않아요

 

만약 나무에게 전생과 후생이 있다면 장작이거나 종이거나 숯이거나 가구이거나 관이거나 집이거나 했겠지만, 지금 하염없이 새를 연기하는 이 나무의 이상형은 수천 년 된 파피루스일 것만 같아요

 

날아갈 수 없는 건 숙명이라지만 외로움이 썩는 건 결코 견딜 수 없어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