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서원과 표충사 향사의 같은 날자의 문제점과 표충사 원래 집례홀기(執禮笏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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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싣는 순서 ===
1. 서언(序言)
2. 배향(配享) 인물 개요
○「弔 義帝 文」 (점필재 김종직)
○「箚子」 (오졸재 박한주)
○「요약 행장」 (송계 신계성)
※위 내용을 반드시 이해하고 예림서원에 향사해야 합니다.
3. 표충사의 향사 일자 및 배향 인물의 배향 순서를 변경한 사유
4. 예림서원과 표충사의 향사 일자가 같은 날로 인한 문제점
5. 문제점 개선 방안
6. 표충사 삼대사 향사 일자가 중정일(中丁日)로 순서가 바로 적힌 원래부터 사용한 집례홀기
7. 향사(享祀) 일자가 매년 봄(3월)ㆍ가을(9월) 중정일(中丁日)인 증거 문헌
8. 손흥수 선생이 밀양 유림 대표에게 배부한 표충사 향사(享祀) 순서가 바로 적힌 증거 자료
9. 임금이 "밀양 영취산 표충사 향사의 예(例)"에 따라 대흥사 표충사에 향사를 지내라고 지시한 내용 등
10. 표충사 향사 일자 및 향사 순서를 원래대로 복원(변경)을 위한 범(凡) 유림계(儒林系) 연석 회의 제안(案)
가. 범(凡) 유림계 연석회의 참여 대상
①향토사학자
②예림서원
③예림서원 입록 문중 대표 전체
④(사)점필재 김종직 기념사업회
⑤밀양유도회
⑥밀양유도회 입록 문중 대표 전체
⑦밀양향교
⑧밀양향교 입록 문중 대표 전체
⑨표충사(表忠寺)
⑩선산김씨(善山金氏) 문중(예림서원 점필재선생)
⑪밀양박씨 문중(예림서원 오졸재 선생)
⑫평산신씨 문중(예림서원 송계선생)
⑬완산최씨 문중(표충사 서산대사)
⑭풍천임씨(豊川任氏) 문중(표충사 사명대사)
⑮밀양박씨 문중(표충사 기허대사)
⑯성균관(서울 본부)
※풍문에 "표충사 향사 일자와 순서를 변경하는데 조언을 했다" 라는, 말이 있음.
⑰밀양시
⑱밀양시의회
⑲경남도의회 역사문화연구회
⑳예림서원과 추원재(점필재 선생 생가) 소재 마을주민 대표 : 후사포, 전포, 동암, 제대
※예림서원과 추원재에서 행해지는 각종 행사에 인근 마을 주민들을 참여시키는 것은 역사 인물과 가깝게 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나. 연석회의 방법
●공동 주최 : 예림서원, 밀양향교, 밀양유도회
●후원 : 밀양시, 밀양시의회, (사)점필재김종직선생 기념사업회, 표충사, 경남도의회 역사문화연구회
●구체적인 방법
○학술대회 형식으로 진행
○기조 연설
○주제 토론
○종합 토론
○시민 의견 발표(의견을 최대한 청취 및 수렴)
다. 장소 :
●밀양시청 대회의실, 청소년수련원(삼문동), 밀양문화원 대강당 등
라. 밀양에 입향(入鄕)한 모든 문중과 지파 문중 대표 : 유림단체 입록(入錄)한 모든 문중에게 참석 협조 공문 발송
11. 기타
1. 서언(序言)
성리학 [ 性理學:중국 남송(南宋)의 주희(朱熹1130~1200)가 집대성한 유학의 한 파. 이기설(理氣說)과 심성론(心性論)에 입각하여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중시하는 실천 도덕과 인격과 학문의 성취를 역설하였다 ] 은 조선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철학 체계로 도덕적 규범과 인간의 본성을 다루는 학문으로서 고려가 망하면서 불교가 서서이 쇠퇴하고, 조선이 건국하면서 정치는 성리학을 지배 이념으로 삼아 사대부 [ 士大夫:(士지식인)+(大夫관료), 관료(官僚):정치에 영향력을 가지는 고급 관리의 무리 ] 를 근간으로한 중앙집권적인 관료제(官僚制:행정에 필요한 전문 지식을 지닌 공무원이 지휘 체계에 따라 그의 권한에 속하는 사무를 집행하고 정치적 결정에까지 관여하는 관리, 운영의 체계)로서 운영되기 시작했다.
즉, 조선은 전제군주적(專制君主的:이상화된 정부 형태로, 군주가 국가 통치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는 정치 체제, 군주(君主):세습에 의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국가의 최고 통치자)인 국왕이 주권을 행사하는 왕국이었지만 실제 운영은 성리학적 이념에 따른 관료제로 이루어졌고, 성리학이 독점하는 국가 이념의 수립은 이후 조선 내의 성리학 발달과 함께 사림파(士林派)가 형성되는 이념적 배경이 되었다.
○료 僚 : 동료 료(요)
1.동료(同僚)
2.동관(同官: 같은 관청의 같은 계급의 관리)
3.벼슬아치
𠏗(동자), 寮(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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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정치는 성리학 학파와도 깊게 연결되어 있었고 학파의 수장으로서 자리잡은 유학자(儒學者)는 비록 현직 관료로 있지 않더라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시대가 왕정국가에서 민주국가로 바뀌었지만 성리학의 일부는 맥을 이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민주국가의 통치이념으로 더 나은 민주국가 운영을 위해 발전적으로 원용(援用)되고 있으며, 또 도덕적 규범을 실천하고 인간의 본성(本性)을 연구하여 안으로는 인간생활의 최소 단위이자 핵심인 가정 생활을 더욱 돈독(敦篤)하게 하고, 밖으로는 사회질서를 더욱 안전하게 하는데 유용하게 할 수 있어 현대에도 매우 중요하다.
시대적으로 보아서도 예림서원에 배향(配享)된 인물은 표충사에 배향된 인물보다 무려 한 세기(世紀) 이상 앞서는 조선의 큰 역사인물이다.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조선시대 성리학의 영수(領袖)임을 보여주는 조선시대 성리학 계보도(系譜圖)
●(주1)도재국 :
성리학자는 연원(淵源)이 계보(系譜)에 영속(永屬)되어야 한다. 즉, 사제(師弟)의 관계를 생명처럼 중시한다. 비록 사숙(私淑)일지라도 계보에 연결되어야 한다. 계보에 연결되지 않고 독볼장군(獨不將軍) 격(格)의 성리학자(性理學者)는 성리학자가 아니다. 이 말을 적는 이유는 항간(巷間)에 "내가 존경하는 어느 성리학자는 점필재 김종직 선생보다 더 유명하므로 그의 문하(門下:弟者)로 알려지기를 꺼려하거나 파벌(派閥)을 조장(助長)하거나 지역 감정을 유발(誘發)하는 소인배적(小人輩的)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배척(排斥)하기 위함이다.
역사적으로 성리학의 발전을 위해 큰 노력을 한 우리 고장의 역사인물이며, 더 나아가서는 조선시대의 큰 역사 인물인 점필재 김종직 선생을 비롯한 성리학자들의 선양(宣揚)에 더욱 크게 이바지하기 위해서 예림서원과 표충사(表忠祠)의 배향(配享) 인물의 향사(享祀) 날자가 서로 겹쳐서 향사가 봉행(奉行)됨으로 인하여, 점필재 김종직 선생과 오졸재 박한주 선생ㆍ송계 신계성 선생의 선양에 큰 지장을 주는 것을 없애고, 예림서원의 배향 인물 선양을 더 크게 하기 위해서 표충사(表忠祠)의 향사 날자를 변경해야 한다.
즉, 표충사의 향사 날자를 원래 날자로 변경함과 동시에 유림(儒林) 사회에서 생명과 같이 중시하는 삼강오륜(三綱五倫:유교 도덕의 기본 덕목)의 장유유서(長幼有序)ㆍ부위자강(父爲子綱:佛法의 스승과 제자)에도 위배(違背)되고, 사제(師弟)의 도덕율(道德律)에도 위배되며, 또 일반시민과 관광객 등도 많이 참여하고, 또 배우는 어린 학생들에도 본보기가 되어 각계 각층의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대규모 향사에 지금의 표충사 향사 순서를 원래 순서인 서산대사와 사명대사ㆍ기허대사 순서로 바로잡아 표충사의 배향 인물인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ㆍ기허대사 선양도 더욱 크게 떨치기 위해서 이 글을 시작한다.
만약에 표충사 향사 일자를 원래대로 복원(復元:변경)시키지 않으면 위대한 향현(鄕賢)이자 조선의 역사 인물인 점필재 김종직 선생과 오졸재 박한주 선생ㆍ송계 신계성 선생을 욕(辱)되게 할 뿐만 아니라 위대한 역사인물의 빛을 흐리게 할 수 있다.
●관련 글
"영취산 표충사"를 사액(賜額)할 때 향사 일자와 배향 인물의 "위패와 진영의 봉안 순서 및 향사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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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림서원과 표충사의 배향(配享) 인물 개요
가. 예림서원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선생(先生) :
○생몰년 : 1431.6~1492.8.19
○출생지 : 경상도 밀양
○시호 : 문충공
○조선시대 유림의 영수(領袖)
○배향(配享) : 밀양 예림서원(禮林書院)
●관련 글 :
공자(孔子)ㆍ4성(聖)ㆍ10철(哲)ㆍ동방18현(賢)과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되지 못한 안타까운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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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도재국 :
밀양의 유림들은 공자(孔子)와 사성십철(四聖十哲)과 동방십팔현(東方十八賢)에 향사하면서도 조선시대 유림의 영수(領袖)인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향사에도 당연히 많이 참사(參祀)하셔야 한다.
●"동방십팔현"에는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문인(門人:제자)들도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스승이고 유림의 종장(宗匠)인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되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깝다.
●전국의 유림들께서는 "점필재 김종직 선생"을 문묘에 배향토록 협조주시기를 바란다.
●선생의 선양을 위해서 우선 시급한 일인 "표충사 삼대사 향사일"부터 "원래의 날자인 중정일(中丁日)"로 바로잡아 예림서원의 향사와 날자가 서로 겹치지 않도록 밀양의 유림들이 적극적인 노력을 하셔야 한다.
●(주3)도재국
"점필재 김종직 선생"을 논하려면 《弔 義帝 文=義帝를 弔喪하는 글》을 반드시 읽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조 의제 문》을 먼저 올린다.
◈ 조의제문(弔 義帝 文) 원문과 번역문.
1●丁丑十月日, 余自密城道京山, 宿踏溪驛, 夢有神披七章之服, 頎然而來,
정축시월, 여자밀성도경산
1●정축 10월 어느 날에 나는 밀성(密城)으로부터 경산(京山)으로 향하여 답계역(踏溪驛)에서 자는데, 꿈에 신(神)이 칠장(七章)의 의복을 입고 헌칠한 모양으로 와서 스스로 말하기를
2●自言: “楚懷王^孫心爲 西楚霸王所弑, 沈之郴江。” 因忽不見。
자언:초회왕 손심위서초패왕소시, 침지침강. 인홀불견.
○시 弑:윗 사람 죽일 시, 시해하다
2●「나는 초(楚)나라 회왕(懷王) 손심(孫心)인데, 서초패왕(西楚霸王)에게 살해 되어 빈강(郴江)에 잠겼다.」 하고 문득 보이지 아니하였다.
●义帝 :
●楚义帝熊心(?-公元前206年),芈姓,熊氏,名心。楚怀王熊槐的孙子,史书又称其为“楚后怀王”,秦末六国复辟诸侯王之一。
●熊心本是楚国王族,在楚国灭亡后,隐匿民间为人牧羊。项梁起事后,采纳范增的建议,立熊心为楚怀王,以从民望。项梁死后,熊心与诸将定下誓约:先入关中者为王。项羽矫杀 (在古代,矫杀是一项严重的罪行,指的是伪造命令或权威,擅自处决他人,这种行为不仅(bùjǐn뿐만아니라,접속사) 违反了法律,也违背了正义与道德的原则)宋义 [宋义(?—前208年十一月[8]),原为楚国令尹。秦末楚国复辟后,成楚怀王熊心的大将军。章邯攻赵时,宋义奉楚怀王命令,统兵解救위험이나 곤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다因屯兵观望不进,想坐山观虎斗(成語),遭到项羽发动兵变,为其斩杀],在巨鹿之战中大败章邯(秦末至楚汉争霸时期的著名将领),熊心被迫任命项羽为上将军。刘邦先入关中,项羽使人还报熊心。熊心答复:照原约办。项羽因此怨恨熊心,于是假装尊奉熊心为义帝,其后将他迁徙到长沙郡郴县,暗中命令英布等人将其弑杀。[19][20]
《成語》“坐山观虎斗”:原义指坐在山上看老虎相斗,比喻对双方的斗争采取旁观的态度,等到两败俱伤的时候,再从中取利。
●부, 노, 근 仅 : 줄 부, 종 노, 겨우 근
1.(줄 부)
2.주다, 수여하다(授與--)
3.맡기다, 부탁하다(付託--)
付(부)ㆍ奴(노)와 동자(同字). 僅(근)의 간체자(簡體字). 付(동자), 僅(동자), 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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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矫 : 바로잡을 교
1.바로잡다
2.굳세다, 씩씩하다
3.억제하다(抑制--)
矯(교)의 간체자(簡體字). 矯(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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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초나라 왕족이었던 웅심(熊心xióngxīn)은 초나라가 멸망한 뒤 민간에 숨어(隐匿yǐnnì) 양치기 생활을 했다. 项梁(xiàng liáng)이 일어난 후 范增(Fàn Zēng)의 건의를 받아들여 웅심을 초회왕으로 세워 백성의 기대를 모았다. 항량이 죽자 웅심은 여러 장수들과 "먼저 关中(Guānzhōng)에 들어가는 자가 왕"이라는 서약을 했다. 항우는 송의를 무찌르고 거록전에서 장한(張邯·진나라 말기부터 초나라 한나라의 패권을 빼앗은 유명한 장수)을 크게 물리치자 웅심은 어쩔 수 없이 (항우를) 상장군으로 임명했다. 유방이 먼저 관중에 들어가자 항우가 사람을 보내 웅심에게 (자기의 功) 보답토록 요구했다. (그러나) 웅심이는 "원래 약속대로 하라" 했다. 이에 项羽(Xiàng Yǔ)는 웅심을 원망하여 義帝로 추앙하는 척하다가 장사군 郴縣[郴(chēn)州市别称“福城”“林城”[41],位于中国湖南省东南部]으로 옮겨 영포(英布) 등에게 시해를 명했다.
(概述图片来源[21])
全名 : 熊心
别名 : 楚怀王、义帝
所处时代 : 秦末楚汉时期
民族族群 : 华夏族
逝世日期 : 公元前 206年
主要成就 : 在秦末被拥立为楚怀王
●出處 : 百度
3●余覺之, 愕然曰: “懷王南楚之人也, 余則東夷之人也。
여각지, 愕연왈:회왕남초지인야, 여칙동이지인야.
○악 愕:놀랄 악, 경악하다
地之相距, 不啻萬有餘里, 而世之先後, 亦千有餘載
지지상거, 불啻만유여리, 이세지선후, 역천유여재
○시 啻:뿐 시, 다만, 그치지 않다
來感于夢寐, 玆何祥也?
래가우몽寐, 자하상야?
○매 寐:잘 매, 자다, 적적하다
○자 玆:무성할 자/이 자, 검을 현
1.(무성할 자/이 자)
2.(초록이)무성하다(茂盛--)
3.검다, 흐리다
茲(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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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나는 꿈을 깨어 놀라며 생각하기를 「회왕(懷王)은 남초(南楚) 사람이요, 나는 동이(東夷) 사람으로 지역의 거리가 만여 里가 될 뿐이 아니며, 세대의 선후도 역시 천 년이 휠씬 넘는데, 꿈속에 와서 감응하니, 이것이 무슨 상서일까?
4●且考之史, 無沈江之語, 豈羽使人密擊,
且고지사, 무침강지오, 豈우사인밀격,
而投其屍于水歟? 是未可知也。” 遂爲文以弔之。
이투기사우수歟? 시미가지야. "수위문이조지"
○차,저,조 且 : 잠시 且또 차, 공경스러울 저, 도마 조
1.(또 차)
2.또, 또한
3.우선
𠀃(고자), 𠀇(고자), 俎(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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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歟:잠시, 어조사 여
1.어조사(語助辭)
2.편안(便安)한 기운
欤(간체자), 欤(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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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또 역사를 상고해 보아도 강에 잠겼다는 말은 없으니, 정녕 항우(項羽)가 사람을 시켜서 비밀리에 쳐 죽이고 그 시체를 물에 던진 것일까? 이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고, 드디어 문(文)을 지어 조문한다.
5●惟天賦物則以予人兮, 孰不知尊四大與五常? 匪華豐而夷嗇,
유천부물칙이예인혜,
曷古有而今亡? 故吾夷人,
曷고유이금망? 고오동이,
又後千載兮, 恭弔楚之懷王。
우후천재혜, 공조초지회왕.
○여,예,저,予:주다
나 여/줄 여, 미리 예, 임금 이름 저
1.(나 여/줄 여)
2.나(≒余)
3.주다(≒與)
豫(본자), 余(동자), 與(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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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 兮:어조사 혜
1.어조사(語助辭)
2.감탄사(感歎詞)
𠔃(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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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알,할 曷:어찌 갈, 막을 알, 한단 할
1.(어찌 갈)
2.어찌, 어찌하여
3.언제, 어느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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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하늘이 법칙을 마련하여 사람에게 주었으니, 어느 누가 사대(四大) 오상(五常)높일 줄 모르리오. 중화라서 풍부하고 이적이라서 인색한 바 아니거늘, 어찌 옛적에만 있고 지금은 없을손가. 그러기에 나는 이인(夷人)이요 또 천 년을 뒤졌건만, 삼가 초 회왕을 조문하노라.
6●昔祖龍之弄牙角兮, 四海之波, 殷爲衁。
석조룡지弄아각혜, 사해지파, 은위衁.
雖鱣鮪鰍鯢, 曷自保兮, 思網漏而營營。
수鱣鮪鰍鯢, 曷자보혜, 사망루이여영.
時六國之遺祚兮, 沈淪播越, 僅媲夫編氓。
○롱 弄:희롱할 롱(농)
1.희롱하다(戱弄--)
2.놀다, 가지고 놀다
3.(말이나 행동으로)실없이 놀리다
𡱯(속자), 挊(속자), 㺯(속자), 𠧗(동자), 𢌮(동자), 挵(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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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衁:피 황
1.피, 혈액(血液)
2.게의 뱃속에 있는 누른장
3.게장
𧖭(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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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雖:비록
○전, 선 鱣:잉어 전, 드렁허리 선
1.(잉어 전)
2.잉어(잉엇과의 민물고기)
3.철갑상어(鐵甲--: 철갑상엇과의 바닷물고기)
鳣(간체자), 𩽱(고자), 𧖞(동자), 䱳(동자), 鳣(동자), 鱓(동자), 𩼼(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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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鮪:다랑어, 참다랑어 유
1.참다랑어(---魚: 고등엇과의 바닷물고기)
2.강(江)의 이름
鲔(간체자), 鲔(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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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鰍:미꾸라지, 미꾸라지 추
1.미꾸라지(미꾸릿과의 민물고기)
2.큰고래(참고랫과의 고래)
鳅(간체자), 鳅(동자), 𩹤(동자), 鰌(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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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鯢:미꾸라지, 도롱뇽 예
1.도롱뇽(도롱뇽과의 동물)
2.고래의 암컷
3.잔고기
鲵(간체자), 鲵(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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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옛날 조룡(祖龍)이 아각(牙角)을 농(弄)하니, 사해(四海)의 물결이 붉어 피가 되었네. 비록 전유(鱣鮪), 추애(鰌鯢)라도 어찌 보전할손가. 그물을 벗어나기에 급급했느니, 당시 육국(六國)의 후손들은 숨고 도망가서 겨우 편맹(編氓)가 짝이 되었다오.
○조룡(祖龍) : 조룡(祖龍)이 진 시황(秦始皇)의 별칭.
7●梁也南國之將種兮, 踵魚狐而起事。
량야남국지장종혜, 踵어狐이기사
○종 踵:뒤꿈치, 발꿈치 종/이을 종
1.발꿈치
2.행동(行動)이 불편(不便)한 모양
3.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到達--)
㣫(동자), 歱(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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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狐:여우
7-1. 求得王而從民望兮, 存熊繹於不祀。
구득왕이종민망혜, 조능繹어불사.
○역, 석 繹:실 뽑을 역, 풀릴 석
1.(실 뽑을 역)
2.실을 뽑다
3.당기다, 끌어내다
绎(간체자), 𦆎(본자), 绎(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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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握乾符而面陽兮, 天下固無大於芉氏。
握건부이면양혜, 천하고무대어芉씨
○악, 우 握:쥘 악, 악수 우
12획 획순보기
1.(쥘 악)
2.쥐다
3.악착스럽다(齷齪---)
𦥆(고자), 䌂(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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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芉: 볏짚 간
1.볏짚(벼의 낟알을 떨어낸 줄기)
2.율무의 이름
3.풀의 이름
秆(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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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항양(項梁)은 남쪽 나라의 장종(將種)으로, 어호(魚狐)를 종달아서 일을 일으켰네. 왕위를 얻되 백성의 소망에 따름이여! 끊어졌던 웅역(熊繹)의 제사를 보존하였네. 건부(乾符)를 쥐고 남면(南面)을 함이여! 천하엔 진실로 미씨(芈氏)보다 큰 것이 없도다.
8●遣長者而入關兮, 亦有足覩其仁義。
遣장자이입관혜, 역유족覩기인의.
○견 遣:보낼 견
1.보내다, 떠나 보내다
2.파견하다(派遣--)
3.(감정 따위를)풀다, 놓아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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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覩:볼 도
1.보다(≒覩)
2.환히 알다
3.알다, 예견하다(豫見--)
睹(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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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자(長者)를 보내어 관중(關中)에 들어가게 함이여! 또는 족히 그 인의(仁義)를 보겠도다.
8-1. 羊狠狼貪, 擅夷冠軍兮, 胡不收而膏齊斧?
양랑탐, 擅이관군혜, 호불수이膏제부?
○천 擅:멋대로 할 천, 선양할 선
1.(멋대로 할 천)
2.멋대로 하다
3.천단하다(擅斷--: 제 마음대로 처단하다)
𢫔(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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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膏:기름 고
1.기름, 지방(脂肪)
2.살진 고기
3.염통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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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재, 자 齊:가지런할 제, 재계할 재, 옷자락 자, 자를 전
1.(가지런할 제)
2.가지런하다
3.단정하다(端整--)
齐(간체자), 斉(일본자), 𠫼(본자), 亝(고자), 斉(약자), 齐(속자), 𠫱(동자), 𡕓(동자), 斊(동자), 䄢(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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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흔낭탐(羊狠狼貪)이 관군(冠軍)을 마음대로 축임이여!
어찌 잡아다가 제부(齊斧)에 기름칠 아니했는고.
8-2. 嗚呼! 勢有大不然者兮, 吾於王而益懼。
오호! 세유대불연자혜, 오어왕이익권.
아아, 형세가 너무도 그렇지 아니함에 있어, 나는 왕을 위해 더욱 두렵게 여겼네.
반서(反噬)를 당하여 해석(醢腊)이 됨이여,
8-3. 爲醢腊於反噬兮, 果天運之蹠盭。
위醢腊반噬혜, 과천운지蹠盭
○해 醢:어반
1.육장(肉醬: 쇠고기를 잘게 썰어서 간장에 넣고 조린 반찬)
2.젓갈(젓으로 담근 음식)
3.형벌(刑罰)의 이름
𧅽(고자), 酼(와자), 𨡝(와자), 𥂠(동자), 𥂧(동자), 𥂹(동자), 𧆗(동자), 𨡿(동자), 𨢗(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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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랍 腊: 포 석, 섣달 랍(납)/납향 랍(납)
1.(포 석)
2.포(脯), 포육(脯肉: 얇게 저미어서 양념을 하여 말린 고기)
3.주름, 주름살
𦝙(동자), 臘(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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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噬: 씹을 서
1.씹다, 먹다
2.깨물다
3.삼키다, 빼앗다
唑(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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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적 蹠:밟을 척, 뛸 적
1.(밟을 척)
2.밟다
3.뛰다, 도약하다(跳躍--: 몸을 위로 솟구치다)
𨂂(고자), 跖(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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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 렬 盭:어그러질 려(여), 어그러질 렬(열)
1.(어그러질 려(여))
2.어그러지다
3.굽다
𥃁(와자), 𢿐(동자), 𥂕(동자), 𥃍(동자), 𥃏(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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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郴之山磝以觸天兮, 景晻愛以向晏。
침지산磝이觸천혜, 경晻애이향晏.
○오 磝: 성 이름 오
1.성(城)의 이름
2.단단하다
3.돌 많은 산(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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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 觸:건드리다 촉
1.닿다, 접촉하다(接觸--: 서로 맞닿다)
2.찌르다, (뿔로)떠받다(머리나 뿔로 세게 밀어 부딪치다)
3.느끼다, 감각하다(感覺--: 눈, 코, 귀, 혀, 살갗을 통하여 바깥의 어떤 자극을 알아차리다)
触(간체자), 触(일본자), 𧢻(고자), 觕(고자), 触(속자), 𡝈(동자), 𡟌(동자), 𧣈(동자), 𧥘(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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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晻: 어더울 엄
1.(어두울 암)
2.(날이)어둡다
3.음침하다(陰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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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晏:늦을 안
1.늦다, 저물다
2.편안하다(便安--)
3.(하늘이)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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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의 산은 우뚝하여 하늘을 솟음이야! 과연 하늘의 운수가 정상이 아니었구려.
8-5. 郴之水流以日夜兮, 波淫泆而不返。
침지수류이일야혜. 파음泆이불반.
○일 泆:음탕할 일
1.음탕하다(淫蕩--)
2.방탕하다(放蕩--: 주색잡기에 빠져 행실이 좋지 못하다)
3.(물이)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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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해를 가리어 저녁에 가깝고. 빈의 물은 밤낮으로 흐름이여! 물결이 넘실거려 돌아올 줄 모르도다.
9●天長地久, 恨其可旣兮, 魂至今猶飄蕩。
천장지구, 한기가기혜, 혼지금유飄탕.
○표 飄:회오리바람 표
1.회오리바람
2.질풍(疾風)
3.나부끼다
飘(간체자), 𩙞(본자), 𩘞(속자), 𩗏(동자), 飘(동자), 飃(동자)
9-1. 余之心貫于金石兮, 王忽臨乎夢想。
여지심관우금석혜, 왕홀임호몽상.
09●천지도 장구(天長地久)한들 한이 어찌 다하리 넋은 지금도 표탕(飄蕩)하도다. 내 마음이 금석을 꿰뚫음이여! 왕이 문득 꿈속에 임하였네.
10●循紫陽之老筆兮, 思螴蜳以欽欽。
循자양지노필혜, 사螴蜳이흠흠
○순 循: 돌 순
1.돌다, 빙빙 돌다
2.돌아다니다
3.좇다
巡(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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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螴:설렐 진
1.설레다
2.불안(不安)한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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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蜳:아찔할 윤, 아찔할 돈
1.(아찔할 윤)
2.아찔하다
3.초조하다(焦燥--)
𧔫(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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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1. 擧雲罍以酹地兮, 冀英靈之來歆。
거운罍이酹지혜, 기영진래歆.
○뢰. 루 罍:술독 뢰(뇌), 술그릇 루(누)
1.(술독 뢰(뇌))
2.(열 말 들이)술독(술을 담그거나 담는 독)
3.대야(둥글넓적한 그릇)
櫑(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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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뢰 酹:부을 뢰(뇌)
1.붓다(액체나 가루 따위를 다른 곳에 담다)
2.(술을 땅에 붓고 신에게)제사(祭祀)를 지내다
3.강신하다(降神--: 신을 청하여 내리게 하다. 제사를 지내는 절차의 하나)
𤁾(동자), 𩛝(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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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歆:흠향할 흠
1.흠향하다(歆饗--), 제물(祭物)을 받치다
2.부러워하다
3.탐내다(貪--), 탐하다(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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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자양(紫陽)의 노필(老筆)을 따라가자니, 생각이 진돈(螴蜳)하여 흠흠(欽欽)하도다. 술잔을 들어 땅에 부음이어! 바라건대 영령은 와서 흠항하소서.’
●오졸재(迂拙齋) 박한주(朴漢柱) 선생(先生)
○생몰년 : 1459(세조 5)~1504.5.15(참형)
○출생지 : 풍각현 차산촌(車村 :수레뫼)
●제자백가(諸子百家), 지지(地誌), 산경(山經, 山徑?), 노장(老莊), 불교의 학설도 다 탐구하여 궁리의 자료로 삼았다.
●언어와 행동은 한결 같이 예의를 따랐다. 아무리 급할지라도 말을 빠르게 하고 당황하는 기색을 보인 적이 없었다.
●부모를 섬김에는 사랑과 공경을 독실히 하여 잘 보살펴 드리고 기쁜 낯빛으로 받들기를 극진(極盡)하게 하지 않음이 없었다.
○경력 : 창녕현감.성균관 전적.사직서령 겸 춘추관 기주관 지제교, 형조정랑, 평해군수, 예천군수
○차자(箚子)를 올려 임사홍(任士洪) 등의 일을 논박하였는데, 마침내는 이 두 간신의 모함으로 戊午士禍에 미치었다
○갑자년(1504, 연산군10년)에 사류의 禍가 다시 일어났으니 공의 나이 46세였다.
○1506년 中宗이 귀양자 귀환시킴.
○1517(中宗12) 공을 승정원 도승지 겸 경연 참찬관.예문관 직제학 추증.
○1504.9 참형 당함, 함안군 서편 봉산(蓬山) 동쪽 기슭에 장사지냈으니, 바로 부인 친정의 선산이다.
○배향 : 밀양 예림서원(禮林書院)
●(주4)도재국 :
"오졸재 박한주 선생"을 논하려면 《箚子》을 반드시 읽어 보아야 한다. 그래서 《箚子》를 먼저 올린다.
●차자(箚子)
『탐욕스럽고 사악하며 간특하고 흉악한 저 자들은 걸핏하면 꼭 군주(君主)를 속이고 어진 사람을 방해하며 남을 해치고 신하로서 차마 못할 일까지 하게 되니, 옛 사람들은 이를 칼에 비유하고 도적에 비유하였습니다.
두렵지 않겠습니까?
지금 사홍(士洪) 등의 일은 지나간 자취를 살펴보고 앞으로의 해를 미루어 보건데 신은 전하께서 이런 간사한 무리를 우대하심이 어찌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무리가 뜻을 얻으면 전하의 이미 기른 조화로운 기운은 반드시 하루도 안 되어 물러갈 것이요, 전하의 이미 등용한 어진 인재는 반드시 하루도 안 되어 물러갈 것이요, 전하의 이미 평안한 백성은 반드시 하루도 안 되어 병들 것이며, 무릇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제 이치에서 편히 있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도적과 칼날보다 심한 것이 아닙니까?
전하는 깊은 궁중에서 팔짱을 끼고 당장은 편안하게 계셔서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조심하지 않고 다만 알랑거리고 요괴한 무리만 없애고 사홍 등 큰 괴수를 물리치지 않으시면 나라를 이어나감에 굳건하고 널리 복종시킬 계책이 없을 것이니 스스로는 잘된 일이라 생각되십니까?
신은 바라옵건데 공의(公議)를 따라 빨리 허락을 내리시면 종사(宗社)에도 매우 다행한 일리고 백성에게도 매우 다행한 일일 것입니다』
●箚찌를 차
1.(바늘로)찌르다
2.기록하다(記錄--), 적다
3.닿다, 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劄(속자), 剳(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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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箚子 차자 상소문
●(주1)도재국 : 오졸재(迂拙齋) 박한주(朴漢柱) 선생(先生)의 행력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으므로 상세히 소개함.
●송계(松溪) 신계성(申季誠) :
○생몰년 :1499~1562
○端正高潔, 六經 沈潛, 小學 글에 從事
○송당(松堂) 박선생(朴英) 문하(門下)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과 교유(交遊)하면서 사우연원(師友淵源)의 올바름이 있었다.
○재악산(載岳山) 금강암(金剛庵)에 기거(起居)하며 경서(經書)를 즐기며 인간 세상과 교통(交通)하지 않은 지가 십수년이 되었고, 山林宰相으로 불렸다.
○小學으로 들어가 心性을 닦는 근본을 삼게 하고 독실(篤實)하게 실천.
○석계변(石溪邊) 송죽림(松竹林)에 초가(草家)를 지어 석계정사(石溪精舍)라 이름 붙여 거처.
○배향 : 밀양 예림서원(禮林書院), 김해 신산서원(新山書院)
●(주2)도재국 : 오졸재(迂拙齋) 박한주(朴漢柱) 선생(先生)의 행력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으므로 상세히 소개함.
●서산대사(西山大師) :
○생몰년(生沒年) : 1520.3.26~1604. 1.23,
○입적(入寂) : 평안도 영변 묘향산
○존호(尊號) : 보제존자청허당대선사(普濟尊者淸虛堂大禪師)
○법명(法名) : 휴정(休정
○호(號) : 청허, 서산
○별호(別號) : 서산대사
○속성(俗姓) : 완산 崔氏
○공적(功蹟) : 임진왜란 창의 승장(僧將)
○존칭(尊稱) : 국일도대선사 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등계존자(國一都大禪師禪敎都摠攝扶宗樹敎普濟登階尊者)
○제자(弟子) : 유정(사명대사), 처영(뇌묵대사), 영규(기허대사), 의엄
○수충사(酬忠祠) 배향(配享) : 서산대사, 사명대사, 뇌묵대사(처영)
○배향(配享) : 영변 수충사(酬忠祠), 밀양 표충사(表忠祠), 해남 표충사(表忠祠)
●사명대사(泗溟大師) :
○생몰년(生沒年) : 1544~1610
○출생지(出生地) : 경상도 밀양
○존호(尊號) : 慈通弘濟尊者四溟松雲大禪師
○법명(法名) : 유정
○호(號) : 송운
○당호(堂號) : 사명당
○시호(諡號) : 자통홍제존자
○속성(俗姓) : 豊川 任氏(황해도 과일군 풍천)
○입적(入寂) : 합천 해인사
○공적(功蹟) : 임진왜란 창의 승장(僧將)
○배향(配享) : 밀양 표충사(表忠祠), 해남 표충사(表忠祠), 영변 수충사(酬忠祠)
●기허대사(騎虛大師) :
○생몰년(生沒年) : 1537년,
1592.9.23(음8.18, 향년 56세)
○출생(出生地) : 충청도 공주
○전사(戰死) : 충청도 금산성 전투
○존호(尊號) : 福國祐世騎虛堂大師
○법명(法名) : 영규
○속성(俗姓) : 密陽 朴氏
○공적(功蹟) : 임진왜란 창의 승장(僧將), 조헌의 의병과 함께 청주전투와 금산전투에 참전.
○배향(配享) : 밀양 표충사(表忠祠), 금산 종용사(從容祠)
2. 표충사의 향사 일자 및 배향 인물의 배향 순서를 변경한 사유
가. 변경 년도 및 날자 :
나. 변경 당시 밀양 유림 대표
●밀양향교 전교 : 이언한
●밀양유도회 회장 : ○○○
●예림서원 원장 : ○○○
다. 변경에 관여한 사람 :
라. 변경 사유
●향사 날자 변경 사유 :
●배향인물 향사순서 변경사유 :
마. 날자와 순서 변경 직후 表忠祠 삼헌관 직위 및 성명 :
●초헌관 : ○○○
●아헌관 : ○○○
●종헌관 : ○○○
바. 2024년 현재 밀양 유림 대표
●밀양향교 전교 : 김대국
●밀양유도회 회장 : 박대병
●예림서원 원장 : 이태범
●(사)점필재 김종직선생 기념사업회 회장 : 이재기
3. 향사 일자가 같은 날로 인한 문제점
●조정에서 밀양 표충사 향사 일자를 중정일로 정해서 공문으로 지시하였기에 수백 년 동안 중정일에 향사를 지내던 것을 10여 년 전에 갑자기 상정일로 바꾼 것은 대단히 잘못되었기에 원래 날자대로 향사를 지내야 한다.
●예림서원은 원래 상정일에 향사를 지내왔으며, 표충사는 원래 중정일에 지내왔다.
●그런데 밀양 표충사는 임금이 지시한 중정일을 변경하여 상정일 오전 10:00에 지낸다.
●예림서원 향사는 밀양 표충사와 같은 날 오전 9:00에 지낸다.
●예림서원과 표충사가 무려 80리나 떨어져 있다.
●향사 날자가 같은 날이므로, 밀양의 유림들 극소수가 예림서원의 향사에 참석하고, 밀양의 대부분의 유림들은 표충사 향사에 참석하므로, 예림서원 향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해마다 극소수인 50명 정도에 불과하다.
●위와 같은 상황으로 인해서 밀양 표충사 향사에 참석하는 사람은 무려 1,000여 명이나 되어 참석자들이 넘쳐난다.
●즉, 두 향사의 날자가 같고, 향사 시간이 비슷하고, 또 예림서원과 표충사간의 거리가 무려 80리나 떨어져 있어, 조선시대 역사적으로 유명한 세 인물(점필재ㆍ오졸재ㆍ송계 선생)을 선양하는데 매우 불리한 실정으로, 점필재 김종직 선생 등 세 분의 선양과 밀양 유교문화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나라 민족 유교문화 발전에도 막대한 손실이다.
3. 문제점 개선 방안
예림서원과 밀양향교ㆍ밀양유도회가 협의하여, 표충사 향사 일자를 원래의 날자인 중정일로 변경해야 한다.
4. 표충사(表忠祠) 삼대사(三大師) 향사(享祀) 일자가 중정일로 순서가 바로 적힌 원래부터 사용한 집례홀기
아래 홀기는 밀양 表忠祠에서 원래부터 사용하던 바른 집례홀기이다. 즉, 향사 순서가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대사 순서로 집례홀기가 작성되어 있다.
이 집례홀기는 무이당거부 큰스님이 表忠寺에 주석하실 때에 表忠祠 향사에 참석하시면서 사용하던 집례홀기를 복사한 것이다.
●표충사 집례홀기
=== 奠幣禮(전폐례) ===
●奠幣禮(전폐례)
●奠幣禮(전폐례)
●奠幣禮(전폐례)
●奠幣禮(전폐례)
●奠幣禮(전폐례)
●奠幣禮(전폐례)
●奠幣禮(전폐례)
=== 初獻禮(초헌례) ===
●初獻禮(초헌례)
●初獻禮(초헌례)
●初獻禮(초헌례)
●初獻禮(초헌례)
●初獻禮(초헌례)
●初獻禮(초헌례)
●初獻禮(초헌례)
●初獻禮(초헌례)
=== 亞獻禮(아헌례) ===
●亞獻禮(아헌례)
●亞獻禮(아헌례)
●亞獻禮(아헌례)
●亞獻禮(아헌례)
●亞獻禮(아헌례)
●亞獻禮(아헌례)
●亞獻禮(아헌례)
●亞獻禮(아헌례)
=== 終獻禮(종헌례) ===
●終獻禮(종헌례)
●終獻禮(종헌례)
●終獻禮(종헌례)
●終獻禮(종헌례)
●終獻禮(종헌례)
●終獻禮(종헌례)
●終獻禮(종헌례)
●終獻禮(종헌례)
=== 飮福受胙(음복수조) ===
●飮福受胙(음복수조)
●飮福受胙(음복수조)
●飮福受胙(음복수조)
=== 撤籩豆(철변두) ===
=== 行望瘞禮(행망예례) ===
=== 置于坑(치우갱) ===
=== 諸釋出(제석출) ===
5. 향사(享祀) 일자가 매년 봄(3월)ㆍ가을(9월) 중정일(中丁日)인 증거 문헌 :
●표지
●간행사
●간행사
●목차
●간기
●312~313 페이지 완문 :
●314~315 페이지 완문 :
완문 무오년 9월 일
예조에서 완문을 작성하여 지급하는 일
●316~317 페이지 完文
●일.제향 일자는 봄ㆍ가을로 중정일(中丁日)에 설행(說行)하오되, 제물을 받들어 모시는 것은 거사(居士)가 담당한다.
※조정에서 공문으로 향사 일자를 정해서 지사하였기에 수백 년 동안 중정일에 향사를 지낸 것을 10여 년 전에 갑자기 상정일로 바꾼 것은 대단히 잘못되었기에 원래 날자대로 향사를 지내야 한다.
6. 손흥수 선생이 밀양 유림 대표에게 배부한 표충사 향사(享祀) 순서가 바로 적힌 증거 자료 :
●수충사(酬忠祠)에는 서산대사(西山大師:烋靜)ㆍ사명대사(泗溟大師:惟政)ㆍ뇌묵대사(雷黙大師:處英)를 배향(配享)하고 있다.
●"泗溟堂芳啣帖"에는 해남
1. 표충사 원내에 전하는 기록(海南 表忠祠院 中 留傳錄)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승대장 사명 송운대선사 직첩방함(僧大將 泗溟 松雲 大禪師 職帖芳啣) (531 P)
●교지(敎旨) (532 P)
●봉안할 때 축문(奉安時祝文) (535 P)
●봄ㆍ가을 제향할 때 축문(春秋祭享時祝文) (536 P)
●판상의 시에 삼가 차운함(謹次板上韻) (538 P)
●침계루 시에 삼가 차운함(謹次沈溪樓韻)
●사 泗 : 물 이름 사
1.물의 이름
2.콧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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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바르게 작성한 봉안축문
●위는 봉안할 때 축문(奉安時祝文) (535 P)
●위는 바르게 작성한 봉안축문과 향사축문
●위는 봄ㆍ가을 제향할 때 축문(春秋祭享時祝文) (536 P)
●잘못 작성한 향사축문 : 삼대사 순서는 바로 작성되어 있으나, 내용이 잘못되었다. 십여 년전까지 이 축문을 사용하다가, 현재는 아래의 축문을 사용하는데, 아래의 향사축문도 잘못되었다.
●잘못 작성한 향사축문 : 삼대사 순서도 잘못되었고, 내용도 잘못되었다. 현재 삼대사 향사 때 이 향사축문을 사용하고 있다.
7. 삼대사 향사를 서산ㆍ사명ㆍ기허대사 순서로 지내는 증거 등이 있는 문헌
□위 36 페이지
●29페이지
惟政은 광해군 2년(1620년)에 입적
●30페이지
유정이 생전에 지은 白霞庵은 고려말 인도僧 指空화상(1300~1363)에 의해 창건된 白霞庵이라는 암자가 있었던 곳에 자리 잡았다
●35페이지
完文에는 임진년(1712년) 봄 府使 金公이 스님의 충훈을 추모하여 山人들을 불러 모연해서 암자를 짓도록 하고 표충사라 현판을 걸었다.(주50)
白霞庵이라 불러왔던 암자를 유정의 祠堂을 지은 후 表忠庵이라 바꾸어 불렀다는 사실을 이 기록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다.
表忠庵을 건립하고 表忠祠를 세운 이후 처음은 惟政만 향사했다.
●36 페이지
유정이 해인사에서 입적하자, 밀양에서는 유정이 탄생지 부근에 중창한 백하암에서 官의 祭需를 받아 춘추로 향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때 향사는 아마 풍천 임씨 문중 중심으로 한 지역 士林에서 암자의 승려와 함께 조촐하게 지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다 병자호란(1636년)으로 승려들이 흩어지고 건물도 허물어져 향사를 지내지 못하고 있었다.
임진년(1712년) 봄 충효사를 지어면서 밀양 유림들은 유정을 기리는 사당을 지을 것을 논의하고, 갑오년(1714년) 3월에 지역 유림에서는 사당 건립을 요청하는 사림장(士林狀)을 내었다.
충효사가 지어진 갑오년(1714년) 겨울에 김창석은 山人들에게 모연하여 유정의 사당을 지을 것을 지시했다.
이듬해(1715년)에는 우선 사당을 짓고 표충사의 현판을 걸고 향사를 지냈으니 表忠祠가 이때 창건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영정을 모시고 제수를 받아 춘추로 제향을 지낸 것은 신축년(1721년) 봄이었다(주55)
□위 38페이지
●영조 14년(1738년 무오년) 2월 29일 우의정 송인명의 노력으로 조정으로부터 위전 5결을 지원받으면서
●영조 19년(계해 1743년) 사액서원이 됨(大東地志 밀양 사원條)
「人名, 중요 기록」
●39페이지
유정의 5세 법손인 남붕이 서울로 와서 유정의 스승인 보제존자 휴정과 그 동문인 기허당 영규를 유정의 例에 의해 함께 향사하는 일을 승상으로 하여금 임금께 고하도록 했다. 임금께서 허가하시고 밀양 영취산 삼강동에 소위 표충사를 건립하도록 하고 3대사의 영정을 걸고 堂號를 홍제라 했으니 홍제ㆍ보제란 모두 선조께서 내린 호이다(주64)
●(주64) : 「趙載浩 嶺南密陽府靈鷲山表忠祠弘濟堂記」 『韓佛全』 8冊 p110 下 :
《惟政五世法孫南鵬 踰南嶺至京師》
《以惟政之師普濟尊者休靜》
《及其同門闍梨騎虛堂靈奎》
《一體享祀 因相臣白于上蒙可》
《乃重建其所謂表忠祠又密州靈鷲山三綱洞》
《將以奉三大師遺像 揭堂額曰弘濟普濟》
《皆宣廟御賜號》.
●闍梨(도리) :
闍(망루 도) 梨(배나무 리(이))
1. 제자(弟子)를 가르치고 제자(弟子)의 행위(行爲)를 바르게 지도(指導)하여 그 모범(模範)이 될 수 있는 승려(僧侶).
2. 고려(高麗) 시대(時代)에, 귀(貴)한 집 아들로서 절에 들어가 승려(僧侶)가 된 총각(總角)을 대접(待接)하여 이르던 말.
○연관 단어
○유의어 : 阿闍梨(아사리)
○출처 : ㈜오픈마인드인포테인먼트
●(주1)도재국 : 위 (주64)는 영취산 表忠祠가 惟政만을 위해 건립되고, 惟政만을 賜額했으므로, 밀양시 단장면 表忠祠에서 惟政을 먼저 享祀해야 한다는 이유라면 그것을 배척하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위 43페이지
7. 임금이 밀양 영취산 표충사 향사의 예(例)에 따라 대흥사 표충사에 향사를 지내라고 지시한 내용 등
494~495
496~497
●"泗溟堂芳啣帖"에는 해남
1. 표충사 원내에 전하는 기록(海南 表忠祠院 中 留傳錄)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승대장 사명 송운대선사 직첩방함(僧大將 泗溟 松雲 大禪師 職帖芳啣) (531 P)
498~499
500~501
50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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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507
508~509
510~511
512~513
530~531
532~533
●교지(敎旨) (532 P)
534~535
●봉안할 때 축문(奉安時祝文) (535 P)
536~537
●봄ㆍ가을 제향할 때 축문(春秋祭享時祝文) (536 P)
538~539
●판상의 시에 삼가 차운함(謹次板上韻) (538 P)
●침계루 시에 삼가 차운함(謹次沈溪樓韻)
540
10. 표충사 향사 일자 및 향사순서를 원래로 복원(변경)을 위한 범(凡) 유림계 연석 회의 제안
가. 범(凡) 유림계 연석회의 참여 대상
①향토사학자
②예림서원
③예림서원 입록 문중 대표 전체
④(사)점필재 김종직 기념사업회
⑤밀양유도회
⑥밀양유도회 입록 문중 대표 전체
⑦밀양향교
⑧밀양향교 입록 문중 대표 전체
⑨표충사(表忠寺)
⑩선산김씨(善山金氏) 문중(예림서원 점필재선생)
⑪밀양박씨 문중(예림서원 오졸재 선생)
⑫평산신씨 문중(예림서원 송계선생)
⑬완산최씨 문중(표충사 서산대사)
⑭풍천임씨(豊川任氏) 문중(표충사 사명대사)
⑮밀양박씨 문중(표충사 기허대사)
⑯성균관(서울 본부)
※풍문에 "표충사 향사 일자와 순서를 변경하는데 조언을 했다" 라는, 말이 있음.
⑰밀양시
⑱밀양시의회
⑲경남도의회 역사문화연구회
⑳예림서원과 추원재(점필재 선생 생가) 소재 마을주민 대표 : 후사포, 전포, 동암, 제대
※예림서원과 추원재에서 행해지는 각종 행사에 인근 마을 주민들을 참여시키는 것은 역사 인물과 가깝게 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나. 연석회의 방법
●공동 주최 : 예림서원, 밀양향교, 밀양유도회
●후원 : 밀양시, 밀양시의회, (사)점필재김종직선생 기념사업회, 표충사, 경남도의회 역사문화연구회
●구체적인 방법
○학술대회 형식으로 진행
○기조 연설
○주제 토론
○종합 토론
○시민 의견 발표(의견을 최대한 청취 및 수렴)
다. 장소 :
●밀양시청, 대강당, 청소년수련원(삼문동), 밀양문화원 대강당 등
라. 밀양에 입향(入鄕)한 모든 문중과 지파 문중 대표, 유림단체 입록(入錄)한 모든 문중에게도 참석 협조 공문 발송
11. 기타
●관련 글 1
전통과 현대의 만남 "경상남도 유교선비문화 정책 세미나(점필재 김종직 선생 관련)" 개최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4518?svc=cafeapp
●관련 글 2
공자(孔子)ㆍ4성(聖)ㆍ10철(哲)ㆍ동방18현(賢)과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되지 못한 안타까운 상황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4446?svc=cafeapp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11.25 ●朱熹의 大學章句序(6) :
曲禮, 小儀, 內則, 弟子職등 諸篇(책) 같은 것은 본래가 小學의 支流와 餘裔같은 것이고, 이 大學은 곧 소학의 成就에 근거하여 太學의 밝은 법도를 밝힌 것이니, 밖으로는 태학의 규모의 큼이 極해 있으며, 안으로는 태학의 節目의 상세함이 다해 있는 것이다.
삼천 명이나 되는 門徒들 중 대학에 관한 설명을 듣지 않은 이가 없었으나 曾子의 傳만이 홀로 그 正統을 유지하였다.
그리하여 해설을 지어서 孔子의 뜻을 천명하였던 것이다.
孟子가 돌아가시자 그 傳承이 없어져버렸으니, 그 曾子의 책은 비록 있다고 하나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때부터 속된 선비들이 經傳을 암송(暗誦)하고 詩文을 짓고 하는 습관은 그 노력을 小學에서보다 倍나 더 썼으나 쓸데가 없었고 異端的인 道家와 佛敎의 가르침은 그 高踏함이 대학보다 더하였으나 실속이 없었다. -
작성자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11.25 ●朱熹의 大學章句序(7) :
그밖의 權謀術數인 모든 공적과 명예를 추구하는 說과 온갖 사상가와 여러 재주군들은 세상을 매혹케하고 백성들을 속이는 장본인들이니, 이와같이 仁과 義를 막아버리는 것들이 그 사에에서 섞여 나와 위의 군자들로 하여금 불행히도 道의 요체(要諦살피다 체)를 들을 수 없게 하였고, 낮은 소인들은 불행히도 이상적인 정치의 혜택을 입을 수 없게 하였다. -
작성자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11.25 ●朱熹의 大學章句序(8) :
캄캄하게 어둡고 답답하게 막히어 깊은 고질이 되풀이 되었는데 五代의 쇠약기에 이르러서는 파괴와 혼란이 극도에 달했었다.
하늘의 운수는 순화하는 것이어서 갔다가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 있다.
宋나라의 德業이 융성하여 정치와 교육이 아름답고도 밝았으며 이에 河南의 땅에 程氏의 두 선생님이 나오셔서 孟子의 道統을 잇게 되었으니, 실로 처음으로 大學의 編次를 제대로 정리하여 그 취지를 밝혀놓으시니, 이 뒤로 옛날 太學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던 법과 聖人의 經文과 賢人의 傳文의 뜻이 찬연히 다시 세상에 밝혀지게 된 것이다. -
작성자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11.25 ●朱熹의 大學章句序(9) :
비록 나는 불민하지마는 다행이도 私淑하여 그분께 가르침을 들은 바가 있다.
그러나 후일 돌이켜 보니 그책은 산란하여져 있었다. 그래서 나의 고루(固陋)함도 잊고 산란한 것을 찾아 모았으며, 간단히 또 사사로운 나의 뜻을 첨가하여 그 빠지고 간략한 점을 보충하여 뒤에 오는 군자들의 비판을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외람되게 분수에 넘치는 짓이다.
죄를 모면할 길이 없음을 잘 알고는 있으나 그러나 국가의 백성들을 교화하여 좋은 좋은 풍속을 이룩하자는 뜻과 학자들이 자기의 덕을 닦고 백성들을 다스리는 방도에 있어서는 작은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순희(淳熙) 기유년 이월 갑자일 친안(親安)의 주희가 序(서)함.
●國史大事典, 百萬社,1974년, 편저자 이홍직(李弘稙) : 淳熙 己酉年은 南宋 孝宗 淳熙 16년이며, 金 世宗 大定 2년에 해당하며, 1189년 명종 19년에 해당함. 1월 西北面 兵馬使가 金帝(世宗)의 죽음을 알림. 3월 奉尉使를 金나라에 보냄. 3월 金나라 告喪使 보내옴. 5월 鄭守剛ㆍ李奎報(1169~1241) 등을 試取. 9월 文克謙 죽음. -
작성자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11.25 ●四書 : 大學ㆍ中庸ㆍ論語ㆍ孟子
●五經 : 詩經ㆍ書經ㆍ周易ㆍ禮記ㆍ春秋左氏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