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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사회의 실상

어떤 루마니아 여인과 월북했던 40대 김모씨

작성자떼까치|작성시간14.02.02|조회수1,708 목록 댓글 10
[스크랩] <취재 후기>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의 퍼즐 조각들...|북한사회의 실상
정론직필 | 조회 1502 |추천 27 |2014.01.24. 17:41 http://cafe.daum.net/sisa-1/dtCc/6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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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초유, 나의 남편은 조정호입니다'

제작: 다큐스토리 (docu+story) / 연출: 김덕영

방송: 2004년 6월 23일

 

 

<북한의 전쟁고아들>

- 루마니아 기록필름보관소

 

1950년 한국전쟁은 10만명의 전쟁고아를 낳았다.

전후 어려운 상황은 남과 북이 마찬가지

하지만 전쟁고아 처리 문제에 대해서 남과 북은 서로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남한은 입양을 북한은 위탁교육이란 방식을...

 

이 다큐멘타리는 위탁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조선학교에 부임한

미르초유라는 한 루마니아 여인과 그녀가 37년 동안

만나지 못하고 있는 남편에 초점을 맞췄다.

 

제작과정에서 우리는 북한의 전쟁고아 위탁교육이란

생소한 역사적 사실에 직면했다.

그리고 그 사실의 정확성 여부를 판명하기 위해 루마니아 기록필름보관소를

뒤지기 시작했다.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퍼즐 조각 맞추기가 시작된 것이다.

먼지 낀 기록필름보관소를 뒤지길 6일째,

놀랍게도 당시 상황을 기록한 필름 원본을 찾아냈다.

5분짜리 뉴스필름이었다.

 

   

 <루마니아 전쟁고아 위탁교육 장면> - 루마니아 기록필름보관소

 

루마니아 공산당에서 제작한 이 필름을 보면

북한에서 온 3000명의 전쟁고아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가 잘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3년 후 전원 북한으로 복귀했고

소위 '해외파'로 불려지며 상당수가 북한의 고위직에 진출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루마니아 시레뜨 조선인민학교 교사 학생 기념사진>

- 밑 줄 왼쪽에서 두번째 고개를 좌로 약간 기울인 여성이 미르초유이며

조정호는 중앙 안경을 쓴 남자와 흰 옷을 입은 중년 여성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루마니아 공산당에 보낸 김일성의 감사전문>

 김일성을 Kim Ir Sen으로 기록한 것이 이채롭다.

 

 

<조선학교 부임시 미르초유 여사>

- 그곳은 그녀의 첫번째 부임한 학교였다.

 

북한에서 온 가난하고 헐벗은 아이들을

루마니아 선생님들은 따뜻하게 보살펴 주었다.

야위고 몸이 아팠던 아이들은 하나 둘씩 건강을 회복해 갔다.

 

 

<조선학교 아이들의 겨울>

- 난 개인적으로 이 사진이 참 좋다.

아이들이 타고 있는 오래된 나무 썰매도 그렇고

전체적인 구도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역시 가장 눈이 가는 것은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이다.

 

 

50여년 전 우리와 총부리를 겨누었던 북한이

전쟁고아들을 사회주의 국가에 위탁교육 시켰다는 사실은

입양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했던 우리들에게는

알려질 수 없는 사실 중 하나였다.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해외입양은 지금 현재도 우리들에 많은 아픔을 던져주고 있다.

 

- 미르초유 여사의 한국어 사전 만들기

 

남편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한글을 쓰기 시작했고

한 자 한 자 적어내려가던 그녀의 한글공부는 이제

최초의 루마니아-한국어 사전으로 승화되고 있다.

 

 

- 그녀가 정성껏 만들고 있는 한국어 사전

 

- 미르초유와 조정호 사이에서 태어난 딸 조미란

 

현재 그는 루마니아 EU 대표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교차하면서 그녀에게 KOREA는

원망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취재과정에서 어렵사리 그녀와 인터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녀는 더이상 아버지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조차 거부감을 느낄 정도가 되었다.

가장 안타까웠던 일 중의 하나였다.

 

 - 연애시절 남편과...

 

이 낡은 사진 한장이 닳고 닳도록

매일 미르초유는 남편을 그리워하고 있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것이 요즘 사랑의 세태라지만

그녀의 사랑, 그녀의 사람은

우리 가슴에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부디 사진 속 한 장면처럼

미르초유 여사가 남편과 재회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기원합니다.

 

  -기도하는 미르초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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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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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 14.01.24. 18:53
북한당국은 왜 딸의 치료를 마치고 귀국하려는 미르초유의 입국을 거절 했으며 왜 남편 조정호씨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을까?
 
 
온마루 14.01.24. 19:01
조정호란 분도 참 너무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부의 인연이 소중하고 자식도 소중하거늘
 
아침햇살 14.01.24. 19:13
조정호씨는 잘못없습니다..북한당국이 강제로 부부의 연을 끊어논 것입니다..부인이 외국인이기때문에 그런거같습니다.
 
 
정론직필 14.01.24. 19:07
할머니는 옛 이야기를 하는 도중 목소리를 낮췄다. ‘따님을 좀 만날 수 있느냐’고 기자가 묻자,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대며 ‘쉿!’ 하며 조심스러워 했다. 오래된 집이라 자물쇠가 고장나 문이 자연스레 열리곤 한다. 그녀는 바로 옆방에 있는 딸 미란(47)이 들을까봐 방문을 다시 걸어 잠그곤했다.

“어릴 때 앓은 병도 다 나아 국제기구에 취직했고 루마니아 사람과 결혼까지 했어요. 하지만 딸 아이의 상처가 여전히 깊어요. 공부를 잘했는데도 아버지가 없어 장학금 혜택을 받지 못했고, 늘 차별대우를 받았죠. 저도 지금 연금혜택도 못 받고 있어요.
 
정론직필 14.01.24. 19:11
딸은 요즘도 아버지 이야기, 코리아라는 말만 나오면 그게 남한이든 북한이든 싫어하고 사람이 찾아와도 만나지 않으려 합니다. 너그러이 이해해주세요”

http://nk.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9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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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은 당시 국제결혼에 부정적이었던 루마니아와 북한 정부의 허가를 받아 1957년 4월 12일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트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함께 평양으로 이주해 그 사이에 태어난 딸 미란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http://yanbianforum.com/board.html?include=&mode=view&id=76438&lc=&sc=&mc=&gid=nb&
 
정론직필 14.01.24. 19:21
참, 이상한 일이군요.

북한이나 루마니아나 모두 사회주의 국가들인데....
도대체 왜 외국인과의 결혼을 그토록 꺼려했던 것일까요?

위 내용에 의하면.....그 딸이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로
또는 아마도 아버지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도 당시 외국인 여성들에 대한 배급을 중단해 버렸다는
어떤 게시글이 있더군요. 그래서 딸이 당시 영양실조에 걸리고 구루병에
걸렸다고 하는 것 같네요.
 
아침햇살 14.01.24. 20:26
정론직필 1960년도경 주체사상 도입되면서 북한에서는 외국인 배척운동이 있어났다는군요
 
 
아침햇살 14.01.24. 19:09
북한은 외국인에 대해 참으로 냉정하다는 생각이듭니다.
 
 
아침햇살 14.01.24. 19:10
http://www.rfa.org/korean/temp/Georgeta_Mircioiu-06152009182331.html
 
 
rhdygkstoqur70 14.01.24. 19:40
안타깝고 가슴찡한 글입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아이들을 많이 입양보내고 있다고알고있는데
한가지일을 남북은 정반대로 처리했군요
우리정부는 출산장려운동을 하면서 미혼모들이 낳은아이들을 나라에서 책임지지않고
입양을 보내고있는 현실을보면,,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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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등록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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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억류 케네스 배 기자회견.."석방 원해"(종합)

"조선-서방간 우의 연결하는 다리 희망"…'석방 수순' 여부 촉각

연합뉴스 | 입력 2014.01.20 18:30 | 수정 2014.01.20 19:15

 

댓글69마이피플 트위터 페이스북 공유서비스 더보기 미투데이툴바 메뉴 폰트변경하기 굴림 돋움 바탕 맑은고딕 폰트 크게하기폰트 작게하기 메일로 보내기 인쇄하기스크랩하기 내 블로그로

내 카페로 고객센터 이동 "조선-서방간 우의 연결하는 다리 희망"…'석방 수순' 여부 촉각

 

 

(베이징=연합뉴스) 이준삼 특파원 = 북한에 장기간 억류 상태로 있는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씨가 20일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신화통신이 평양발로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케네스 배씨는 이날 평양 우의병원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조속히 석방되기를 원하며 "조선(북한)에 쓸모있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북한에 장기간 억류 상태로 있는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씨. <<연합뉴스DB, 조선신보>>

배 씨는 특히 "나는 아무 이유도 없이 조선에 억류돼 있는 것이 아니다"며 "조선정부는 나에 대해서 어떤 인권침해도 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수많은 인도주의적인 원조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의 건강상태가 양호하며 이미 병원에서 5개월간에 걸쳐 인도주의적인 치료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배 씨는 "오늘이 모친의 생일이고 내일이 딸아이의 생일로 가족이 함께 있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다"면서 "미국 정부가 조선정부와 밀접하게 협력해서 조기에 석방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조선에 대해서 엄중한 죄를 저지른 사람이지만 동시에 해외동포"라며 "나의 죄를 깊이 인식하고 있고 앞으로 조선과 서방간의 우의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기를 희망하며 조선이 그런 기회를 제공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배 씨는 재작년 11월 북한에서 검거돼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1년 넘게 억류돼 왔다.

js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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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찬양하다가 직접 북한 다녀와보니…"생지옥였다"

기사입력 2014-01-17 11:47:00 기사수정 2014-01-17 15:30:20

 

김씨는 사업 실패 후 노숙자처럼 여기저기를 떠돌거나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자진월북하면 더 좋은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2011년 밀입북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기소됐다.

 

월북 이전의 김씨는 인터넷 정치평론사이트 '서프라이즈'에 김일성·김정일을 찬양하는 글 100여건을 게시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돼 집행유예를 선고받기도 했다.

 

그러다 북한 노동신문에 게재된 기사를 본 뒤 북한이 자신에게 관심과 호의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고 천안함 피격사건·연평도 포격사건이 터진 뒤 '북한에 의해 금방 무력으로 통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서 결국 월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실제 넘어가 본 북한은 김씨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이 판사는 이날 선고에서 "김씨는 북한이 자신을 환영해 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독방에 수감돼 고문까지 받았다"고 밝혔다.

 

이후 북측이 지난해 10월 판문점을 통해 김씨를 포함한 월북자 6명을 우리 측에 강제송환하면서 김씨도 다시 남한으로 내려오게 됐다.

 

결국 남한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김씨는 재판 과정에서 바뀐 생각들을 모두 털어 놓았다.

 

이 판사는 "김씨는 북한을 '생지옥'이라 표현하고 과거 인터넷 게시판에 이적표현물을 게시한 것을 부끄러워하는 등 개전의 정이 현저하고 반성하고 있다"며 김씨를 석방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장성택이 어떻게 처형됐는지를 보는 등 김씨도 여러가지로 많은 것을 깨달았을 것"이라며 "지금 법정에 가족이 와 있는데 가족을 생각하더라도 다시는 이런 범행을 저지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 판사가 김씨에 대해 석방을 명하는 순간 법정에 와 있던 김씨의 노모 등 가족들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서울=뉴스1)

http://news.donga.com/BestClick/3/all/20140117/602288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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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시사맨 | 작성시간 14.02.02 떼까치 님이 글을 올리실 권리가 있다면
    분석관 님이 댓글을 못 다실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게다가 본인이 읽고 싶으면 읽고 아니면 그만이시라고 했던 거 같은데
    안 읽으시면 그만이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 작성자만정 | 작성시간 14.02.02 재판에 영향이 없기를바라면서 쓴다
    김씨는 자기 심장은 이미 일정한 곳에 두고왔다 여기서 나온 이야기는 가짜 이야기 아니
    전술적 표현일수도 있다
    그것은 사람의 의지와 다른문제이다
    그사람은 기공부를 한 사람으로서
    남들을 어떤경우라도 충분하게 속일수 있는 사람이다
    그의 발언은 남이시킨것이아니라
    다른곳에서 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나는그분과 긴 대화를 통하여 느낀것이 있다
  • 작성자만정 | 작성시간 14.02.02 떼까치님의 내공의 한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역시나 사람은 내공이 커야 한다
  • 작성자아놔 키스트 | 작성시간 14.02.02 1956년 8월 종파사건을 통해 구 소련과 중국의 내정간섭음모는

    그 전모를 드러내게 되고 북 지도부는 김일성주의를 내세우며 독자노선을 모색하게됩니다.

    이 과정에서 분노한 북 인민들은 서양인에 대한 극도의 반감을 갖게되고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을

    잠시 갖게되죠.

    이러한 상황속에 이 글의 여인을 비롯한 많은 서양인들이 추방명령을 받은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즉 특정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시대적 상황에따른 신드롬이라고 봐야죠(적절치는 않지만 문화혁명같은)

    그리고 체재안정후 이러한 신드롬은 비판을 통해 급속히 사라집니다.

    즉 혼란한 시대속 개개인들의 상처입은 아픔이라 생각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아놔 키스트 | 작성시간 14.02.02 다만 왜 상봉을 거절하였는지는 알수없을뿐이죠.

    북조선 당국에의해 거절되었을수도 있고

    조정호씨 개인의 일신상의 이유로 상봉을 거절하였을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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