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초유, 나의 남편은 조정호입니다'
제작: 다큐스토리 (docu+story) / 연출: 김덕영
방송: 2004년 6월 23일
<북한의 전쟁고아들>
- 루마니아 기록필름보관소
1950년 한국전쟁은 10만명의 전쟁고아를 낳았다.
전후 어려운 상황은 남과 북이 마찬가지
하지만 전쟁고아 처리 문제에 대해서 남과 북은 서로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남한은 입양을 북한은 위탁교육이란 방식을...
이 다큐멘타리는 위탁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조선학교에 부임한
미르초유라는 한 루마니아 여인과 그녀가 37년 동안
만나지 못하고 있는 남편에 초점을 맞췄다.
제작과정에서 우리는 북한의 전쟁고아 위탁교육이란
생소한 역사적 사실에 직면했다.
그리고 그 사실의 정확성 여부를 판명하기 위해 루마니아 기록필름보관소를
뒤지기 시작했다.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퍼즐 조각 맞추기가 시작된 것이다.
먼지 낀 기록필름보관소를 뒤지길 6일째,
놀랍게도 당시 상황을 기록한 필름 원본을 찾아냈다.
5분짜리 뉴스필름이었다.
<루마니아 전쟁고아 위탁교육 장면> - 루마니아 기록필름보관소
루마니아 공산당에서 제작한 이 필름을 보면
북한에서 온 3000명의 전쟁고아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가 잘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3년 후 전원 북한으로 복귀했고
소위 '해외파'로 불려지며 상당수가 북한의 고위직에 진출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루마니아 시레뜨 조선인민학교 교사 학생 기념사진>
- 밑 줄 왼쪽에서 두번째 고개를 좌로 약간 기울인 여성이 미르초유이며
조정호는 중앙 안경을 쓴 남자와 흰 옷을 입은 중년 여성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김일성을 Kim Ir Sen으로 기록한 것이 이채롭다.
<조선학교 부임시 미르초유 여사>
- 그곳은 그녀의 첫번째 부임한 학교였다.
북한에서 온 가난하고 헐벗은 아이들을
루마니아 선생님들은 따뜻하게 보살펴 주었다.
야위고 몸이 아팠던 아이들은 하나 둘씩 건강을 회복해 갔다.
<조선학교 아이들의 겨울>
- 난 개인적으로 이 사진이 참 좋다.
아이들이 타고 있는 오래된 나무 썰매도 그렇고
전체적인 구도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역시 가장 눈이 가는 것은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이다.
50여년 전 우리와 총부리를 겨누었던 북한이
전쟁고아들을 사회주의 국가에 위탁교육 시켰다는 사실은
입양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했던 우리들에게는
알려질 수 없는 사실 중 하나였다.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해외입양은 지금 현재도 우리들에 많은 아픔을 던져주고 있다.
- 미르초유 여사의 한국어 사전 만들기
남편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한글을 쓰기 시작했고
한 자 한 자 적어내려가던 그녀의 한글공부는 이제
최초의 루마니아-한국어 사전으로 승화되고 있다.
- 그녀가 정성껏 만들고 있는 한국어 사전
- 미르초유와 조정호 사이에서 태어난 딸 조미란
현재 그는 루마니아 EU 대표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교차하면서 그녀에게 KOREA는
원망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취재과정에서 어렵사리 그녀와 인터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녀는 더이상 아버지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조차 거부감을 느낄 정도가 되었다.
가장 안타까웠던 일 중의 하나였다.
이 낡은 사진 한장이 닳고 닳도록
매일 미르초유는 남편을 그리워하고 있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것이 요즘 사랑의 세태라지만
그녀의 사랑, 그녀의 사람은
우리 가슴에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부디 사진 속 한 장면처럼
미르초유 여사가 남편과 재회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기원합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온마루 작성시간 14.01.24 조정호란 분도 참 너무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부의 인연이 소중하고 자식도 소중하거늘 -
작성자정론직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1.24 할머니는 옛 이야기를 하는 도중 목소리를 낮췄다. ‘따님을 좀 만날 수 있느냐’고 기자가 묻자,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대며 ‘쉿!’ 하며 조심스러워 했다. 오래된 집이라 자물쇠가 고장나 문이 자연스레 열리곤 한다. 그녀는 바로 옆방에 있는 딸 미란(47)이 들을까봐 방문을 다시 걸어 잠그곤했다.
“어릴 때 앓은 병도 다 나아 국제기구에 취직했고 루마니아 사람과 결혼까지 했어요. 하지만 딸 아이의 상처가 여전히 깊어요. 공부를 잘했는데도 아버지가 없어 장학금 혜택을 받지 못했고, 늘 차별대우를 받았죠. 저도 지금 연금혜택도 못 받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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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정론직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1.24 딸은 요즘도 아버지 이야기, 코리아라는 말만 나오면 그게 남한이든 북한이든 싫어하고 사람이 찾아와도 만나지 않으려 합니다. 너그러이 이해해주세요”
http://nk.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9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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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은 당시 국제결혼에 부정적이었던 루마니아와 북한 정부의 허가를 받아 1957년 4월 12일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트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함께 평양으로 이주해 그 사이에 태어난 딸 미란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http://yanbianforum.com/board.html?include=&mode=view&id=76438&lc=&sc=&mc=&gid=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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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정론직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1.24 참, 이상한 일이군요.
북한이나 루마니아나 모두 사회주의 국가들인데....
도대체 왜 외국인과의 결혼을 그토록 꺼려했던 것일까요?
위 내용에 의하면.....그 딸이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로
또는 아마도 아버지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도 당시 외국인 여성들에 대한 배급을 중단해 버렸다는
어떤 게시글이 있더군요. 그래서 딸이 당시 영양실조에 걸리고 구루병에
걸렸다고 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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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rhdygkstoqur70 작성시간 14.01.24 안타깝고 가슴찡한 글입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아이들을 많이 입양보내고 있다고알고있는데
한가지일을 남북은 정반대로 처리했군요
우리정부는 출산장려운동을 하면서 미혼모들이 낳은아이들을 나라에서 책임지지않고
입양을 보내고있는 현실을보면,,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