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서사를 좋아한다죠. 이건 비단 한국인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그런 면에서 전설적인 서사를 반복하거나 그것과 비교하는 것으로 현재의 흐름을 인식하려 시도하는 경향들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최소한 그런 사람들은 있죠. 사실 이건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얻어낸 통찰로 현재를 판단한다는 점에서 프로세스는 유사할지 모르겠습니다. 동시에 그런 서사에 등장하는 영웅적 인물들을 하나의 상징으로 바라보고 아이콘으로 삼기도 하죠. 이상한 것도 아니고 틀린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개개인에게 크고 작은 책임을 가지는 국민주권의 국가에서 영웅주의는 결집의 역할을 넘어 메시아의 역할을 수행할 때 위협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입니다.작성자Khrome작성시간22.12.24
'...어떤 정의관이 옳은가? 그것은 말할 수 없다. 수직적 정의관과 수평적 정의관은 세계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관점이지, 근거 제시와 토론을 통해 논박되는 사안이 아니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행위는 무의미하지는 않겠지만, 매우 소모 적인 일이다.
나의 세계관과 타인의 세계관이 다름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결코 소통하지 못할 것임을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다. 반대로 소통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소통의 시작은 내가 타인의 세계관을 논박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때, 다시 말해서 타인이 나와는 정말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
수직적 정의관과 수평적 정의관은 본질적으로 서로 타협 가능한 것일까요? 이것은 정반합으로 더 나은 결론이 나올 수 있는 주제일까요? 약자의 현실과 규율의 보전은 둘 다 중요하겠습니다만..작성자Khrome작성시간22.12.22
'...물론 16세기에 들어서서도 공과 사적 영역간의 구별이 엄격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물론 중세 후반에 가서는 공과 사의 구별이 근대적 행정관료제를 만들어 나가는데 선행조건이 된다는 의식이 싹트고 자라기 시작하며 이로 인한 정치적 이념변화가 수반되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오래된 글이긴 하지만, 공적 영역에서의 공사구분은 서구에서 수백년전부터 시작된 인식이고, 이에 대한 인식이 선진국 사회의 지배적 인식이 되었다는 건 흥미로운 일입니다. 우리 사회는 공사구분을 잘 하고 있는 걸까요? 근대는 전근대와 현대 사이의 괴리감을 줄이는 충분한 소화시간이라고 보는 편이기에 우리의 근대는 너무 짧았습니다.작성자Khrome작성시간22.12.21
과학적 지식은 그 영역에서만 머무는 게 아니라 인문학에도 여러 착상과 의미를 제공해주기도 하죠. 벌레를 먹는 문화와 벌레를 혐오하는 문화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는 과학적인 연구의 결과지만 문화에 대한 차이와 이해라는 인문학적 관점으로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있습니다.작성자Khrome작성시간22.12.20
...'이기적 유전자 가설'은 이런 '폭력적인 이타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는 가설이라고 봅니다. 이기적 유전자 가설 하에선 게임에 참여하는 각 개체들은 '협력'과 '배반에 대한 보복'을 통해 '상호 이타주의'를 유지합니다(이에 대해서 자세히 쓰긴 힘들겠습니다..ㅎㅎ;; 자세한 내용은 로버트 액설로드의 <협력의 진화>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지도자 개체'도 게임에서 예외가 되진 않습니다. 지도자 개체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룰을 바꿈으로써 다른 참여자들에게 손실을 안겨줄 경우, 다른 참여자들은 룰 조정자에게 보복을 하거나, 협력을 끊을 수 있습니다. 단편만 바라보면, 이런 보복행위들은 자신의 손실에 대해 보복을 하는 '이기적 행동'이지만, 이런 이기적 행동들은 결국 전체적인 면에선 '상호 이타주의'를 유지시키는 토대가 됩니다...작성자Khrome작성시간22.12.19
드디어 완전한 인간이 탄생했다. 자신의 수업 권리를 침해한 청소노동자를 형사 고소하고 민사소송까지 제기한 학생들이 나타났다. 이 학생들이야 말로, 한국 사회가 한 목소리로, 국민이 갖춰야 할 덕성으로 칭송하는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실제로 체화한 인물이다. (중략) 표면적 자유주의이념의 저류에 흐르는 공동체의 윤리를 망각하기 시작할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몰락을 경험할 수도 있다.
통치원리나 이념이 과연 공동체와 무관할 수 있을까요?작성자이름짓기귀찮아작성시간22.12.16
낭객의 신년 만필: 신채호, 1926년 원문: https://ko.wikisource.org/wiki/%EB%82%AD%EA%B0%9D%EC%9D%98_%EC%8B%A0%EB%85%84_%EB%A7%8C%ED%95%84 1장: 종교의 현지화 과정에서 주객전도가 일어나는 현상을 비판합니다. 2장: 이해타산에 사로잡혀 대업을 그르치지 말자고 말합니다. 3장: 그 동안 나타난 한국사의 개혁 세력이 외적/내적 이유로 좌절된 현실을 비판하면서, 무력투쟁의 필요성을 주장합니다. 4장: 유산계급이 된다 해도 압제자의 주구가 된다면 무산자보다 못하다고 말합니다. 6장: 형식화와 무사안일주의를 비판합니다. 7장과 8장: 예술이 현실을 도피하는 수단이 되어선 안 되며 현실에도 관심을 가지자고 말합니다.
신채호의 말년 저작물은 조선상고사와 용과 용의 대격전, 일목대왕의 철퇴(이건 미완성)가 유명한데 무정부주의는 덜 유명합니다. 따라서 낭객의 신년 만필은 신채호의 후기 사상에 대해 대략 파악할 수 있는 글입니다. 예수 비판을 넣은 짤이 예전에 퍼졌지만, 신채호는 적어도 이 글에선 기독교를 언급하지 않고 용과 용의 대격전에서 예수를 악역인 종교인 진영으로 넣었습니다.작성자견환작성시간22.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