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거 묘(공주 향토유적 19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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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원거선생 묘역 전경(좌측 묘비에는 안동 권씨만 적혀 있어서 위 봉분에는 선생과 합장 묘로 생각되며...) |
영규대사 묘역 바로 뒷편에 묘역들이 있어서 올라가 보았더니 2기의 묘가 있었으며, 묘역내 상단에 있는 묘인 윤원거선생 묘가 향토문화유적으로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윤원거선생 묘의 봉분 3기가 삼각형 모양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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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원거선생 묘(우측 묘비에는 연일 정씨와 광산 김씨, 두 명의 부인은 부하(祔下) 묘로 표기되어 있어서...) |
파평 윤씨 묘소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윤전의 아들 윤원거(尹元擧, 1606~1672)의 묘소이다. 윤원거는 본관이 파평이고 자는 백호, 호는 용서(龍西)이다. 가정에서 학문을 익히고 25살에 김장생의 문하에 들어가 성리학과 예학을 전습하였으며, 1635년(인조 13)에 성균관 재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주전론을 제기하였으나 아버지인 윤전이 강화도에서 순절하자 재야에 은거,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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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세 분의 부인과 함께 묻히신 것 같습니다. |
윤원거 는 윤전과 마찬가지로 유평리에 은거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유언에 따라 유평리에 묘소를 쓰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파평 윤씨가 어떻게 유평리에 들어왔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파평 윤씨가 오랫도안 세거한 논산시 노성면이 계룡면 남쪽에 있어, 거리상 근접성 때문에 자연스럽게 유평리에 이거한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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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원거선생 봉분 뒤에서 바라 본 모습 |
묘비는 1796년에 세워진 것이며, 전체 높이 224m, 비신 높이 16㎝, 너비 68㎝, 폭 35㎝의 규모이다. 옥개석과 비좌는 오래된 것이지만 비신은 1993년에 새로 세웠다. 윤원거 묘비는 1796년 세워졌으며, 윤광안이 글을 짓고, 조윤형이 글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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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의 묘역 아래에는 어머니 묘가 자리하고 있어... |
▲ 어머니 묘역 우측면에서 바라 본 윤원거선생 묘 |
묘비의 뒤편에는 윤원거가 죽은 지 120여 년이 지났으나 윤원거의 높은 도와 절의를 나타내는 기록이 없어 작은 묘비를 세운다고 기록하고 있다. 옆에는 윤원거의 가계와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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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원거선생 모친인 해평 윤씨(海平 尹氏) 단묘 묘역 전경 |
윤원거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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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충남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 산6-1 화살표 ↑ 위치의 영규대사 묘역 뒷편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