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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된 이야기를 마치며

작성자창강|작성시간10.01.24|조회수76 목록 댓글 0

[승자는 구름속의 태양을 보고 패자는 빗방울을 봅니다.

항상 승자가 되는 길을 찾아 한 번쯤, 꼭 한번쯤은

인생에 승부를 거는 도박같은 도전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실패해도 자신의 실력은 어느덧 정상에 있을테니까요...01.10.29]

 

고통의 세월!

10월의 끝자락에 어머님이 상경하셨다.

여느 때처럼 술을 한잔 걸치니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고교 동창 녀석들과 내기당구를 치고 어머님의 불호령이 무서워 서둘러 귀가했다.

나이 50 넘은 아들을 걱정하시며 혼을 내시는 모습이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다.

병약하셔서 혼내지도 못한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릴까?

 

“헤헤! 어머니!

넉살을 부리니 금방 풀어지신다.

모처럼 만의 큰 아들집 나들이가 마치 손님인양 불편해 하실까 싶어

신경을 쓰며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향했다.

주차를 시키려니 불현듯 이태 전에 아버님과 두 분이서 상경하셨던 생각이 떠올랐다.

 

방정맞게도 불길한 생각이 든다.

서울 나들이를 싫어하시는 아버님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홀연히 나타나셔서

3일간을 며느리 밥 얻어 드시고 하늘나라로 가셨던 것이다.

 

“어머니! 나 오늘 회에 술 양껏 마시고 잘라요!”

애써 방정맞은 생각을 지우며 밑도 끝도 없는 소리를 하자 선선히 승낙을 하신다.

‘술 조금만 마셔라! 일찍 오너라!‘

잔소리 같은 말씀만 하시는 어머니의 넓은 가슴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포근하다.

 

혹시 당신도 오늘밤에 기술사 합격자 발표가 있다는 걸 알고 계실까?

“까짓거 기술사가 대수야? 안되면 어때? 다시 한번 도전 해보지!“

소주 한 병 사들고 들어와 애써 마음을 다스려 보지만 지난여름 쏟아 부었던

열정이 너무 아까워 가슴이 저려온다.

또다시 도전하여 인고의 길을 걷는다는 건 만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서라! 이제 그만해라! 건강이 더 중요하지 않나?“

누군가의 염려스런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며 빠져나갈 줄 모른다.

”술을 마시자고 하는 사람 있으면 뺨다귀를 올려붙이세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언해주던 말을 떠올리며 억지로 끌려가 술 한잔 마신 날

나른한 몸으로 독서실로 갔다가 바닥에 널브러져 아침을 맞은 기억이 아프게 되살아났다.

 

깊은 여름 밤!

가방을 들고 집으로 향하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소리!

나의 귀가 시간까지 잠 못 이루며 기다리는 가족들!

새벽 1:00에 독서실을 나서며 공부했던 것을 정리하려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그때마다 머리 속은 오히려 하얗게 탈색 되어왔고 무모한 도전에 대해

적잖이 후회하곤 했다..

 

끈적거리는 땀에 젖은 그 여름!

오르지 못할 나무를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쳐다보다가

마음을 다지고 시작한 기술사 준비에 투자한 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5월 어린이날 연휴를 맞아 독서실에 들어가기 시작한지 만 4개월 4일이라는 시간들!

나에겐 고통의 순간들이었다.

과연 내가 왜 이 길을 택했을까?

기술사가 되면 뭐가 달라질까?

아카시아 꽃이 지고 밤꽃의 진한 향내가 5월 내내 나를 유혹했다.

 

승자의 주머니 속에는 꿈이 있고 패자의 주머니 속에는 욕심이 있다는데 꿈인가 욕심인가?

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언하듯 대학원 졸업 논문 준비한다며

위장을 하고 담을 쌓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성당의 모든 단체에서 탈퇴하고 좋아하는 당구도 뒤로하고

직장 동료들과의 만남을 포기해야만 했던 형극의 시간들!

 

난 어차피 새로운 세계를 모험하듯 가 보겠노라고 차표 한 장을 손에 쥔 채

수없이 망설이며 걸어왔던 험한 길!

암기력이 떨어지고 돋보기를 써야하는 악조건에서 나이 어린 경쟁자들은 차치하고라도

나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해쳐나간다는 것은 형극이었다.

 

발표일이 하루하루 다가오며 목줄을 죄어 오더니 오늘 급기야 어머니까지 상경하셨는데

혹시 알고 올라온 건 아니실까?

 

10.29일 00:00!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 등 뒤에서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긴장의 순간을 술에 취해 비켜보자고 저녁 뉴스도 끝나기 전 애써 잠을 청했더니

아내도 어머님도 잠든 체 하신다.

 

23:44분!

인터넷으로 합격자 발표를 열어보니 알 수 없는 메시지가 화면에 떴다.

불합격!

가슴이 철렁하고 앞이 깜깜했다.

거실로 나와 담배를 붙여 물고 창문을 열자 감나무 검은 잎이 달빛에 잎을 반짝인다.

몇 번을 확인해도 인터넷은 똑같은 메시지만 보내고 있다.

 

11:55분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 번호를 눌렀다.

자동응답 안내 메시지가 아직 합격자 발표를 안했음을 알려준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거실로 나와 또다시 담배 한 대를 피워 무니

시계의 초침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귀청을 울린다.

 

00:01분!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의 버튼을 눌렀다.

수험번호 확인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따라 또박 또박 수험번호를 입력하니

느닷없는 음악이 울려 나왔다.

순간 환청이 되어 음악이 귓가에서 돌아나간다.

 

재빨리 인터넷을 확인했다.

‘합격을 축하 합니다!’

꿈인가 생시인가?

”어머니 합격했어!“

안방에서 주무시는 어머니와 아내에게 달려가 외쳤다.

당신과 아내는 짐짓 잠든 체 하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 부둥켜안고 엉엉 울어버린다.

괜히 코가 시큰거려 온다.

 

‘아가! 고상했다!“

얼굴을 만져주는 어머니의 손바닥이 까칠하다.

건너 방에 자고 있던 애들이 우르르 몰려 눈시울을 붉힌다.

승자의 길이 이런 건가?

뜬눈으로 지샌 아침 그 동안 서랍 속에 빼두었던 묵주 반지를 끼고 나니

정말 주님이 은총을 주신 거라 믿어진다.

[‘01.10 기술사 합격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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