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통해 온통 버리거나 던질 수 있는 삶의 최고 가치로서 사랑이란 그 이름을, 다가올 날들에 혁명적 방식으로 새롭게 제시할 작가나 본격적으로 구현하는 그런 작품이 등장한다면, 세상은 그야말로 ‘혁명적 사랑’의 패러다임으로 방향을 틀어 급기야는 막아서지 못할 거대한 물살로 휘몰아칠 것이다. 아마....... 아니, 분명.
애써 담지 못할 사유의 편린들에는 미련을 버리자. 언뜻 스쳐 지나치던 그 온전하고 정당한 것들. 그 찰나의 각음(覺音)이여! 그래, 애써 얽매이지도 끌어내지도 말자. 그것은 다시 사유와 망각의 건널목을 지나 명확한 회상으로 안기리니. 그러나 이 안타까움이여 분노여. 납득 못할 존재의 수상한 복기(復碁)의 한계여. 어찌 몽매한 그대와 나를 이토록 처연히 짓밟아 불면의 밤을 더욱 병적으로 내모는 것이냐. 아! 사색의 자유마저, 그 찬란한 기록의 시간마저 앗아가 버린 이 염증일게 하는 징벌의 세월이여, 천형(天刑)의 세월이여.
봄날이어도 가을날이어도 좋다. 그날들의 조용한 산책길이라면 더욱 좋다. 살갗을 두드리며 다가오는 바람과 햇볕이 동행하면 더욱 좋고. 그 속에 섞여있는 가벼운 적막과 고적....... 거기서 멀어지려는 싸늘한 습도와 회색빛 우울은 아주 털어라. 일상의 맥없는 굴절까지. 세상은 무언가 뒤틀렸어도, 생명의 씨앗은 어김없이 곳곳에 내려 고통의 시간을 채운 뒤 싹틀 것이니. 얼음장 물살 밑일지라도. 그러니 어림잡아 두어 시간 신열이 다가와도 산책의 시간을 가져라. 여름날이어도 겨울날이어도 좋다. 그대에게 여유만 있다면.
한 사람의 인품은 여러 요인의 구성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복잡한 구조를 가졌으며 같은 인품도 높은 얼굴과 낮은 얼굴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 높고 낮은 여러가지 얼굴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다가 그가 처하는 상황 변화에 따라서 때로는 착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추악한 얼굴을 보이기도 한다.
어떤 날은 펜을 잡기가 두렵고 책상에 다가서기가 넌더리나는 경우가 있다. 모니터 앞에 앉기도 겁나며, 책장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고통일 때가 있어, 알 수 없는 파괴의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아니 그곳으로의 접근을 한사코 외면한다. 괜한 증오와 환멸에 휩싸여 냉혹한 저항으로 태도가 바뀌지만, 지나고 보면 어느새 자라난 망상의 종양이 기를 쓰고 있었음을 알아차린다. 주제넘게 완벽한 문장을 갈구해, 터무니없이 음산했던 과욕의 그림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