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바탕에 금빛 왕관을 쓴 흰수리가 폴란드의 국장으로 채택된 것은 1295년, 국왕으로 즉위한 프셰미수 2세 시절입니다. 피아스트 가문은 4백년 넘게 폴란드를 통치했지만, 국왕으로 인정받는 인물은 단 6명 뿐. 그의 가계를 따라가면 카지미에시 2세 스프라비에들리비의 형제인 미에슈코 3세 스타리가 나옵니다. 볼레스와프 3세 크시보우스티의 다섯 아들들 중 둘째와 넷째는 후손이 끊겼고, 첫째의 후손들은 몽골에 맞서 싸우다 전사했으며, 셋째의 후손들은 흰수리 문장을 공식 국장으로 격상시키고, 막내의 후손들은 최후의 승자가 되어 '대왕'을 배출하고 화려하게 피아스트 왕조의 문을 닫았습니다.작성자크킹삼치작성시간26.08.19
여성의 몸을 입은 채, 오래 전에는 남성에게 요구되던 일을 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에겐 낯설게 받아들여지며, 그 반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잊기 쉬운 사실은, 어떤 몸을 가졌고 어떤 생각을 하든 우리 모두는 사람이란 거죠. 사람에게는 좀 더 끌리는 것을 향해 손을 뻗을 자유가 있습니다.작성자크킹삼치작성시간26.08.18
헝가리 국장에 사용된 이중십자가가 국가의 공식 상징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2세기 말, 벨러 3세(Béla III, 재위 1172~1196) 때부터입니다.
벨러 3세는 젊은 시절 비잔티움 제국 궁정에서 자라며 비잔티움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던 이중십자가 문양을 접했습니다. 헝가리 국왕으로 즉위한 후인 1190년경부터 왕실 인장, 은화 동전, 깃발에 이중십자가를 새겨 사용하면서 헝가리 왕권의 대표적 상징으로 정착했습니다. 이후 이중십자가는 헝가리의 첫 국왕인 성 이슈트반 1세가 교황 실베스테르 2세로부터 받은 '사도적 십자가'라는 전설과 결합하며, 단순한 국왕 개인의 문양을 넘어 국가적·종교적 정통성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리투아니아의 요가일라가 폴란드 국왕이 되면서 브와디스와프로 개명하고, 어렵게 얻은 아들의 이름을 카지미에시라 한 데는 이유가 있다. 피아스트 왕조 최후의 불꽃이 저 두 부자였기 때문. 심지어 헝가리 왕위를 잠깐 먹었다가 뱉은 비텔스바흐의 오토도 벨러라는 왕호를 썼던 걸 보면, 똑같은 이름 돌려 쓰는 게 뭐가 대수냐... 라는 생각을 확실히 덜 하게 된다. 몽골에게 박살난 헝가리에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게 '할아버지 벨러 3세의 거룩한 기억'을 되살리려고 한 벨러 4세라서.작성자크킹삼치작성시간26.08.16
비즐라(Vizsla)는 헝가리의 토종견입니다. 약 1,000년 전 마자르족이 지금의 헝가리에 정착했을 때부터 키우던 개로, 이름의 어원은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몸을 숨길 곳이 없는 평원에서 사냥감에 접근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또한 적절한 교육을 받으면 아이들과도 잘 지낼 만큼 온순하며, 가능한 한 주인과 가까이 있고 싶어하여 밤에는 주인의 침대에서 이불을 덮고 자려는 행동이 흔히 관찰됩니다.작성자크킹삼치작성시간26.08.15이미지 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