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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감상실

[詩]동그란 것들은 다 착하다 / 김정미

작성자박오은(소교)|작성시간25.02.06|조회수21 목록 댓글 0

동그란 것들은 다 착하다

 

                                                                김정미

 

조금의 내리막만 옆에 갖다 놓아도

동그란 것들은 움직인다

 

목쉰 소리가 날 때까지

종일 굴러가도 하루란 경로를 이탈하는 법이 없다

목적지는 있지만 도착지가 없는

아마 도형(圖形)들 중에서

가장 가진 것이 없는 처지일 것이다

 

괴로운 것은득점이든 실점이든 다 그물망에 걸린다는 사실

지루한 공방을 이어가다가도

어느 쪽에서 내리막을 붙여놓으면

그쪽의 득점이 되는 것이다

 

동그라미 하나로 혼자가 될 수 있는 힘!

 

꽃 지고 난 뒤의 원점 하나로 모여드는 부피들

동그란 것은동그란 것들이 받아준 일이어서

넓은 주변을 두고도 사과들은

정해진 크기만큼만 자란다

더 이상 발끈해지지 않는 빨강의 둘레엔

차마 굴러가지 못한 이름들이 있다

 

회전에 머물고 공방(攻防)에 빌려주고

온갖 구기종목의 규칙을 굴러다니거나 포물선을 풀어놓는

동그란 것들은 다 착하다

착해서 담대하다

 

풍향과 해류와 온갖 내리막길들이 있는 지구에선

제자리가 없는 처지들이 많으므로

뜨는 해에다 빨래를 널러 간 아이와

지는 해에서 웅크려야 하는 자세를 얻어 온 아이가

같은 아이라는 사실

 

어디서든지 굴러가고 싶은 곳으로 굴러가는

그걸추락을 길어 올리는 달이라 불러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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