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6일 9시 국립서울현충원에서는 60년만에 아우 이천우 이등중사의 유해를 형님 이만우 상사의
묘 곁에 안장하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이대통령 내외 등이 호국의 형제에게 묵념을 하고 있다.
이명박대통령이 안장식에서 이들 형제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이날 이명박대통령은 추념사를 통해서 이들 형제의 넋을 위로하였다.
"조금 전 아우는 형 곁에서, 편안한 잠을 청했습니다.
죽음과 세월도 사랑하는 홀어머니를 뒤로한 채 정든 고향집을 떠났던 두 형제의 애틋한 우애를 갈라놓지 못했습니다.
오늘 어머니와 두 아들은 하늘나라에서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오늘 두 분을 '호국의 형제'로 이름하고자 합니다. 조국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정부는 또한 아직도 남과 북의 산야에 잠들어 있을 13만 호국용사들을 잊지 않고,
마지막 유해 한 구를 찾는 그날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이 두 호국형제는 6·25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자원 입대한 육군 제1보병사단 소속의 이만우 하사와
육군 제7보병사단 소속의 이천우 이등중사이다. 각각 육군 1사단과 7사단 소속으로 서울 수복작전과 평양 탈환작전 등
주요 전투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운 형제는 이듬해인 1951년 5월 7일 고양전투에서 형이 전사하고, 같은해 9월 25일
동생마저 꽃다운 나이 19세에 양구 백석산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하게 된다.
각각 1사단과 7사단 소속으로 서울 수복작전에이어 북진의 선봉에 서서 평양탈환작전 등 주요 전투에 참가하여 혁혁한 무공을
세운 형제는 안타깝게도 이듬해인 1951년 5월 7일 고양지구전투에서 형 이만우하사가 전사 (화랑무공훈장 수훈)하고
같은 해 9월 25일 동생 이천우 이등중사마저 19세 꽃다운 나이에 강원도 양구의 백석산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
(화랑무공훈장 2회 수훈)하였고, 1년 남짓 참전기간 중 이들이 군화신고 걸었던 장정은 약 9천리 (3,400km)에 달했다.
다행히 형 이만우하사는 1960년 5월 이 곳 현충원 묘역에 모셨다. 아쉽게도 동생은 당시 긴박했던 전투상황에서 미처
수습되지 못한 채 긴 세월을 이름 몰ㄹ 들꽃과 함께 전투현장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2010년 10월 뒤늦게나마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의해 동생 이천우이등중사의 유해가 발굴되어 신원이 확인되고
형 이만우하사 곁에 안장됨으로써 비로소 함께 형제애를 나누며 영면할 수 있게 되었다.
1958년 3월 육군 제7282부대가 세운 전적비 앞면에는 白石山地區戰鬪戰蹟碑 라고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아래와 같이 새겨져 있다다.
"산혈하를 넘고 건너 승리의 기빨을 드높이 꼿던 평화의 사도들이 지금 넋이 되어 여기에 영원히 잠들어 있다.
단기 4284년 9월 23일부터 29일에 긍하여 백전백승을 자랑하는 우리 보병 제7사단 용사들은 양구 북방 901고지 및 883고지와
백석산 일대에 완강히 항하는 북한괴뢰군 제12사단 및 32사단을 완전히 섬멸시킴으로서, 백석산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동년 9월30일부터 10월10일까지에 걸쳐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제8사단은 미 제7사단 용사들과 함께 계속하여 백석산 북방 1220고지 일대에서 인해전술로 파장공격을 가하여오던 괴뢰군 제12사단에 대하여 치명적인 반격을 가함으로써 불리하던 전세를 만회하고
중동부 일대를 확보하는데 발군의 공을 세웠다. 이들 전 장병의 영웅적인 감투정신을 높이 찬양하고 이 지구에서 애석하게도
호국의 신으로 산화한 장병들의 명복을 두 손 모아 빌며 자손만대에 길이 그 위훈을 전하고자 여기에 전적비를 세워 기념하노라.
단기 4291년 3월 15일 육군 제3군단 세움
국군 호국 형제 이천우 이등중사의 유해를 60년만에 백석산에서 발굴하였다.
이천우 이등중사의 유품과 국방부장관의 이름으로 발행한 전사자신원확인서이다.
1951년 9월 24일부터 10월 1일까지 최고 해발 1142m 높이 일대 백석산 산봉우리에서 남북 장병들의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두 달 동안 고지를 뺏고 뺏기기를 6차례, 결국 미군과 중공군까지 가세하며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살아남는 것이 기적이라고 할 만큼의 치열했던 전투가 펼쳐졌던 곳이다.
이렇게 두 달 동안 일대 산맥을 포연으로 매웠던 백석산 전투는 결국 2000여 명의 전사자를 남긴 채 막을 내렸다.
한 치의 땅도 적에게 내어줄 수 없다는 각오로 포연 속으로 사라져 간 호국영령들, 이렇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호국영령들이 아직까지도 깜깜한 흙 속에 누워 있다.
60여 년이 흘렀지만 그들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마음에 새기며
하루빨리 호국영령들이 양지 바른 곳에서 편히 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