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정문에서 우측으로 돌아간 산기슭에 호국영령들을 위한 호국지장사가 있다.
이 호국지장사는 일주문이 없다. 양쪽에서 시찰영역을 지켜주는 두 개의 돌기둥이 일주문인 셈이다.
왼쪽 석주에는 호국지장사(護國地藏寺) 오른쪽 석주에는 남무지장보살(南無地藏菩薩) 이렇게 쓰여졌다.
이 절에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천왕문이다. 좌우에서 사천왕이 사찰영역을 굳게 지키고 있다.
이 절은 일주문이 그렇듯 천왕문 역시 일반 문의 형식을 갖춘 문(門)을 따로 두지않았다. 해탈문도 따로 없다.
저 계단을 오르기 전까지는 천왕문이고 그 계단을 올라서는 그 순간의 공간이 해탈문의 기능을 하지 않나 한다.
해탈문(?)을 지나 그 공간에 들어서면 지장보살을 만난다. 이 절에는 지장전이 따로 없다.
지장보살상을 중심으로 2500 여좌의 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여러모로 특이한 절이다.
이 절의 역사를 전하는 사적이다.
"고려 말엽(640여년 전) 보인대사가 초창하시다. 선조대왕 강희 2년 창빈묘소를 봉안하고
새로 중수하여 대왕의 원당으로 봉안하고 조포사찰로 지정하였다. 동치 원년 8월 16일
경해대사가 상추문을 봉행하였다. -1972년 일 화장사-
"만일 절집이 아니라면 내가 이곳에 묻히고 싶은 땅이다."
일찍이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에 들렀다가 감탄한 말이다. 그만큼 명당이라는 것이다.
호국지장사는 신라시대 말 도선국사가 창건한 갈궁사(葛弓寺)에서 기원한 천년고찰이다.
도선국사가 북쪽으로 만행을 하다 한강 언덕에 이르러 둘러보니 상서러운 기운이 퍼져 나오는 곳이 있어
가보니 칡넝쿨이 엉켜 있고 약물이 샘솟는 명당이 있어 토굴을 짓고 갈궁사라고 칭했다고 전해져 온다.
이후 폐허가 되다시피한 갈궁사를 고려 공민왕 때 보인스님이 화장암(華藏庵)으로 중창했다.
한국전쟁 직후 사찰 땅 36만평(119만㎡)을 국군묘지 부지로 내어준다.43만평 규모의 국군묘지(현 국립서울현충원)가
조성되는데 일조했다.
금빛찬란한 대웅전 아미타3존불이다.
대웅전 불단에는 태국에서 가져온 금동석가불이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거느리며 3존불을 이루고 있다.
원래는 아미타불이 중심에 있었으나 석가불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으며, 뒤에는 나무로 조각해
도금을 입힌 후불탱화가 든든하게 그들을 받쳐주고 있다. 금색 투성이라 눈이 너무 부셔 눈에 너무 많은 부담을 준다.
이 철불좌상에 대한 전설은...
옛날 한강에 사는 한 어부가 꿈에 불상이 나타나 빛을 보게 해 달라고 하며, 그의 꿈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혹시나 하여 가봤더니, 녹슨 불상이 그곳에 있었다.
어부는 깨끗이 닦아 집에 모셨으나, 그후론 고기도 잡히지 않고 나쁜 일만 거듭 생겨서
어부는 화장사로 이 불상을 옮겼다고 전한다. 불상이 자기 거할 곳을 어부 손을 거쳐 정해간 모양이다..
조선 중기 재상으로 이름 높았던 오성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이 소년시절 머물면서 공부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예로부터 호국지장사에서 기도하거나 공부를 해서 과거에 급제하거나 각종 고시에 합격했다는 일화가 적지 않게 전해지고 있다.
1960년대에는 해마다 2~3명씩 사법시험 합격자를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고시생 합격 수기집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에도
호국지장사에서 공부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한 한 은행원의 일화가 담겨져 있을 정도다.